‘전문경영인’ 박삼구 회장이 떠나보낸 것들
입력 19.04.01 07:00|수정 19.04.04 09:48
재계 순위 한 때 7위에서 28위로 추락
‘전문경영인’ 타이틀 무색
“그룹 소유 및 경영 의지 강해”
재기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해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다시 한번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한 때 재계 7위까지 올라갔던 그룹은 주력사 아시아나항공까지 흔들리며 이제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다.

    박삼구 회장은 그동안 그룹의 소유와 경영에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시장에선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 측근 전문경영인을 통한 간접적인 경영 참여는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경영 재기를 노릴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박삼구 회장은 1967년 금호타이어(옛 삼양타이어)에 입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금호, 아시아나항공 사장을 거쳐 2002년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잇따라 인수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한때 재계 순위 7위까지 끌어올렸다.

    그 때부터 그룹은 흔들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둔화로 대우건설의 기업가치가 떨어졌다. 재무적투자자(FI)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그룹 전체에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것도 이 때쯤이다. 2009년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스스로 그룹 회장에서도 사임했다. 당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박삼구 회장은 2010년 채권단의 요구에 ‘전문경영인’으로 회장직에 복귀했다. 그 때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팔고, 팔고, 또 팔았다.

    비싼 가격을 치른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매각했다. 금호렌터카는 KT를 거쳐 롯데 품에 안겼다. 금호생명은 산업은행 자회사로 들어가면서 KDB생명으로, 금호종합금융은 우리금융그룹의 우리종합금융으로 바뀌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신세계로, 금호타이어는 중국 더블스타로 넘어갔다.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금호석유화학은 형제의 난으로 완전 계열분리가 됐다.

    정들었던 사옥도 떠나 보냈다. 2008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대우건설 사옥(당시 서울 신문로 금호생명빌딩)을 내놨고 지난해엔 금호아시아나 본관 사옥을 매각했다.

    그 과정에서 그룹이 20년간 일궈놓은 문화적 유형자산도 잃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대우건설 사옥의 3층을 공연장으로 활용해 왔는데 이 빌딩의 소유주인 도이치자산운용과 임차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금호아트홀이 오는 5월 문을 닫기로 했다. 고 박성용 회장이 각별히 아꼈던 금호아트홀은 국내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고향’으로,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선 ‘클래식 성지’로 불린다.

    박삼구 회장에 대한 평가는 ‘승부사’와 ‘마이너스의 손’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2010년 이후 박 회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러 번 ‘승부수’를 던졌다. 특히 2015년 12월에는 산업은행에 인수대금 7228억원을 완납하고 금호산업을 인수,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권을 확보했다. 박 회장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들 박세창 사장과 함께 보유했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지분을 팔았고, CJ, 효성, LG화학 등을 백기사로 유치하는 능력도 보여줬다.

    그 승부수는 그룹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체력은 계속 약해졌고 신용등급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여러 사건으로 그룹 이미지 악화도 더해졌다. ‘전문경영인’으로 경영에 복귀한 것치고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는 평가다.

    박삼구 회장은 최근 불거진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회계 논란을 책임지기 위해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등 2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금호고속의 사내이사직도 내려놨다. 박 회장의 공백은 당분간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 비상경영위원회가 메우게 된다. 그룹은 빠른 시일 내 박 회장 후임을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명망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겠다는 방침인데, 전문경영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 일찌감치 박세창 사장 등판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전문경영인을 앞세워 간접적인 경영 참여는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금호고속 최대주주로서 여전히 그룹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로 이어진다. 금호고속은 박 회장이 지분 31.1%를, 박 회장 부인인 이경열씨가 3.1%, 박세창 사장이 21%, 딸인 박세진 금호리조트 상무가 1.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율만 57%에 달한다. 금호산업은 최대주주인 금호고속이 45.3%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산업이 33.47%를 보유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전문경영인 인사부터 박삼구 회장의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밖에 투자나 인수합병(M&A), 계열사 상장 등 주요 사안에서 그룹 최대주주인 박 회장의 ‘사인’이 없이는 진행되기 사실상 어려운 구조”라며 “아시아나항공 대표로 대내외 모두 인정하는 전문경영인이 와서 그룹 지원 가능성을 불식시킨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보이진 않는다”고 전했다. 한진그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의 그룹 소유와 경영에 대한 의지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데 경영권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100% 믿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선 10년 전처럼 본인이 직접 다시 경영 일선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