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다음날 소송 시작’…중재 자문 중요성 커지는 M&A 시장
입력 19.04.04 07:00|수정 19.04.05 09:54
거래 관계 복잡해지면서 분쟁 가능성도 커져
분쟁 시 중재하기로 정하기도…신속·저렴 장점
M&A 후속 업무 성격…탐나지만 육성 어려워
해외선 ‘산업적’ 매력 집중…이미지 제고 효과도
  •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갈수록 '중재'(仲裁ㆍArbitration) 자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거래 당사자의 국적이나 양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관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은 강해지는 추세다. M&A 후에도 갈등 가능성이 큰데 재판보다는 중재의 이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중재를 먹거리로 키우려는 법률자문 시장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중재는 당사자들의 합의에 따라 분쟁을 법원이 아닌 중재인의 판정으로 해결하는 제도다. 최근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들이 신창재 회장을 대상으로 풋옵션 행사 관련 중재를 신청하면서 주목 받았다. 최근 사례가 늘고 있는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도 중재의 한 예다.

    ◇투자 늘고 내용도 복잡…애초 중재 예정하기도

    기업들은 국내외 M&A 때는 물론 투자금 조달을 위해서도 FI를 유치하곤 한다. 자기 부담을 줄이면서 투자 위험도 낮추려는 의도다. 해외 기업들의 자금을 받기도 하지만 국내외 사모펀드(PEF)가 상대방인 경우가 많다.

    PEF 입장에선 단순 투자 수익률을 보장받는 경우든, 경영권을 인수한 경우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운용사(GP)들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우선 고려하기도 했지만 점차 선관 의무를 지키는 데 힘을 쏟는 분위기다. 글로벌 GP들은 그 기준이 더 높고 깐깐하다. 진술보장(W&I, Warranty and Indemnity)에 담기지 않은 내용을 공략해야 수익성을 높일 가능성도 커진다.

    정부는 지난해 옵션부투자 규제를 없앤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회색 영역에서의 옵션부투자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더 많고 다양한 형태의 옵션 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분쟁 가능성은 그만큼 커졌고, 그 해결 방식으로 중재를 정해두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법무법인 M&A 전문 변호사는 “해외에선 M&A 계약 다음날 소장이 날아온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라며 “갈등 조정을 위한 중재 사례가 앞으로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재의 이점…신속·저렴·공정·비공개

    IMM PE 등 FI들은 2015년 11월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갔는데 일러야 올해 안에 판결이 날 전망이다. 해결까지 짧아도 4년은 걸리는 셈이다. PEF 만기를 고려하는 입장에선 짧지 않은 시간이다.

    중재는 단심제로 재판보다 일찍 결론이 난다. 대한상사중재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중재는 182일, 국제 중재는 308일, 평균적으로는 204일이 소요됐다. 교보생명 중재라면 올 가을께 결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기간이 짧은 만큼 비용도 덜 든다.

  •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는 재판과 달리 중재는 비공개다. 과거 현대중공업과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 간 현대오일뱅크 경영권 중재는 법원의 조력을 받아 판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공개됐었다. 보통은 영업비밀 등 민감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툼에 임할 수 있다. 중재인들은 판사에 비해 특정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도 강점이다.

    M&A는 양 당사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진행된다. 국경간 거래에서도 어느 한 쪽으로 힘이 기울지 않는다. 그런데 분쟁 시 한 당사자가 속한 국가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면 균형이 깨질 수 있다. 당사자 합의에 따라 제3 국가에 있는 중재기관을 찾는다면 공정성을 보장받게 된다.

    ◇법무법인 관심 높지만…육성 쉽지 않은 영역

    중재는 사실상 M&A 후속 업무 성격을 가진다. 중재를 할 수 있어야 기업 설립-투자 유치-M&A-후속 분쟁 자문 등 기업 자문을 원스탑으로 수행할 수 있다. 부가 수입도 얻을 수 있다 보니 M&A에 강점이 있는 대형 법무법인들의 관심이 높다.

    중재 팀을 제대로 꾸리는 것은 쉽지 않다. 중재를 맡기 위해선 일반적인 소송 절차에 대한 이해는 물론 M&A 전반의 경험도 많이 쌓여야 한다. 대형 법무법인에서 십 수년간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중재 분야로 나가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보니 기존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각 법무법인의 파트너들은 국내외 중재 기관의 요직을 빈번히 오가기도 한다. 새로운 기수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태평양은 현대오일뱅크 주주간 분쟁에 관한 국제 중재에서 이겼고, 론스타와의 ISD에선 정부를 대리하고 있다. 김갑유 변호사가 이끄는 중재 팀은 글로벌 로펌 조력 없이 단독으로 승리한 경험도 여러 차례다.

    김앤장법률사무소도 국제 중재에서 빈번히 존재들 드러내고 있다. 서울국제중재센터 사무총장을 지낸 윤병철 변호사,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부원장 박은영 변호사가 국제중재·소송그룹을 이끌고 있다.

    광장은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제기한 ISD에서 모두 정부 쪽을 대리하고 있다. 임성우 변호사가 중재 분야의 핵심이다.

    부티끄 로펌 중에선 KL파트너스가 두각을 나타낸다. 2015년 세종 출신 중재 전문가(김범수·김준민·이은녕)를 주축으로 설립됐다. 엘리엇과 메이슨 측 ISD 대리인이다.

    ◇중재, 산업적 매력도…각국 정부 전폭 지원

    중재는 국가적 차원의 먹거리로 성장할 여지가 있다. 중재가 많이 이뤄지는 곳은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공정성’이 높다는 인식도 얻을 수 있다.

    ICC(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LCIA(런던국제중재법원), SIAC(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 HKIAC(홍콩국제중재센터) 등은 사설기관이다. 중재 판정이 당사국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공적 효력을 인정받긴 하지만 사설기관인 만큼 영리 목적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신청인들이 내는 수수료가 핵심 수익원이다. 건수가 많아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기관들의 중재 수주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가 나서 중재 산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중재는 서면으로 대부분 절차가 진행되지만 막판 대면심리(hearing) 과정엔 각국의 당사자들이 모이게 된다. 대면심리는 통상 1회만 진행되지만, 마찬가지로 건수가 많을수록 체제 비용이 늘고 소재지의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한 대형 법무법인 국제중재 담당 변호사는 “대면심리 과정에선 각국에서 모인 중재인, 변호사, 당사자, 증인 등이 수 주간 다투면서 비용을 쓰게 된다”며 “사건이 많아지면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국가적 명성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