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국가'를 위해 대우조선을 떠안았다?
입력 19.06.03 07:00|수정 19.06.04 10:12
현대중공업 '수고'로 해석하기에는 오너 일가 이익 너무 커
노조 반발 예상했어야 … 정부가 '선물' 안겨줘도 소화 못해
필요성 불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처럼 평가 받을지도
  •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을 위한 주주총회가 노조의 반대로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이 때 현대중공업이 취해온 듯한 '스탠스'가 있다. "현대중공업은 국가와 산업의 미래를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번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훼방만 놓고 있다".

    이런 입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현대중공업은 (원하지 않았지만) 정부가 요구해서 대우조선을 인수 중이고, 회사 분할도 이를 위한 작업이다", "이번 거래로 딱히 현대중공업이 얻을 이익이 별로 없다". 이래야 노조가 반대해서도 안되고, 정부ㆍ민간 모두 현대중공업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현대중공업이 '손해 보는' 장사고, 오너 일가와 무관하다?

    그러나... "국가와 미래를 위해 어려움을 감내하고 발벗고 나섰다"라고 표현하기에는 현대중공업과 정몽준 이사장ㆍ정기선 부사장  일가가 얻는 이익이 너무 크다.

    첫째, 아무리 대우조선이 예년만 못해도....지금 시가만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현대중공업에 공짜로 준다. '현물출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대우조선을 위한 유상증자에 참여해도 4000억원 규모고 이 돈조차 회사에 그대로 남는다. 현대중공업의 실제 자금부담은 거의 없다. <산은, 대우조선 지분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시가'로 넘긴다 (2019.02.07)>

    둘째, 다른 어느 대기업도 이런 인수 기회를 제안받지 못했다. 삼성중공업은 논의 자체에 초청받지 못했다. 방안을 다 발표한후에 "참여하고 싶으면 하든가"라는 수준의 통보만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부 심기를 거스릴 이유가 없었다. <뒤늦은 대우조선 인수 제안에 이도저도 못하는 삼성중공업 (2019.02.12)>

    이번처럼 '선물'로 대우조선 주식을 주는 형태였다면 다른 대기업도 환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만 제안이 갔다. <대우조선 매각, 이런 구조라면 다른 인수후보도 가능? (2019.02.01)> 심지어 기획재정부와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을 위해 현행법(국가계약법) 위반 소지가 있는 법해석까지 내렸다. "대우조선 매각은 '매각'이 아니다"가 주된 논리다. <그때 그때 다른 국가계약법…기재부·산은 "대우조선 경영권 매각 아냐"(2019.02.11)> 이번 매각으로 현대중공업은 재계 7위까지 오른다.

    셋째, 대우조선 M&A와 현대중공업 물적분할ㆍ중간지주사 설립이 결합되면 정기선 부사장이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일단 배당에서 유리하다. 이번에 마련될 <오너일가→현대중공업지주→중간지주사→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ㆍ삼호중공업ㆍ미포조선>이란 지배구조는 그룹내 각 조선사가 벌어들인 현금을 배당으로 오너 일가에게 그대로 올려줄 최적의 구조로, 투자업계 애널리스트들은 일찌감치 결론 내린 내용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작년 무려 3000억원에 달한 배당을 진행했다.

    이러다보니 현대중공업 주주들은 이번 분할을 찬성하는 이들도 많았다. '배당주'가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 배당으로 확보되는 자금은 정기선 부사장이 낼 증여세 '재원'이 된다.

    아울러 정기선 부사장이 대표인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선박 A/S'로 돈을 버는 회사로, 그룹 내에서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커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11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내놓으며 오너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지 않았더라도 오너 지분율이 20% 이상인 회사의 100%자회사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삼도록 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오너일가 30% →현대중공업지주 100% →현대글로벌서비스>여서 딱 여기에 포함된다. 그렇다고 내부거래 비중을 줄일 방안도 없다. 그러니 지분 대부분을 외부에 매각해야 하는 골치아플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현대중공업 지주'와 '현대글로벌서비스' 사이에 중간지주사(한국조선해양)를 넣으면 이 문제가 곧바로 해결된다. 심지어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 이외에 대우조선이라는 더 큰 '일감 창구'도 확보하게 된다. 매출과 이익 성장은 이어지고 정기선 부사장은 본인이 대표이사인 회사를 키웠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 승계에 이용될 대우조선 M&A (2019.03.07)>

    상황이 이런데도 "정기선 부사장이 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을 직접 갖고 있지는 않다"라는 말로 "오너일가와 전혀 무관한 거래"라고 해명해본들 설득력이 없다.

    넷째, 행여 대우조선 인수가 EUㆍ일본 등 글로벌 기업결합심사 벽을 못넘어 실패하더라도. 현대중공업은 잃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남는 장사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를 위해 물적분할과 중간지주사 설립을 단행했는데 안된다면 어쩔수 없죠"라며 현재의 지배구조 개편을 정당화 할 수 있다. 매각 실패 책임은 일처리를 제대로 못한 산업은행이 전부 지게 된다. 이런 풍파를 겪는 사이, 대우조선은 엉망진창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수를 못해도 현대중공업은 경쟁사의 쇠락을 통한 이익을 누리면 된다.

    이 정도면 현대중공업에 대한 '선물' 정도가 아니라 '특혜'로 봐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정부와 산업은행은 이런 비판을 모두 무시하고 거래를 밀어붙였다. 그러니 남은 과제는 현대중공업이 받은 선물을 현실화하는 일 정도였다.

    그런데 당연히 있을 것으로 예상된 노조와 지역사회 반발을 다루지 못해 논란이 다시 불거지게 만들었다.

    ◆'선물' 줘도 소화 못한 현대重 경영진…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도 그땐 '옳은 일'

    사실 주총장을 점거하고 폭력시위 위험까지 보여준 노조의 대응은 거칠었다.

    그러나 '본사 이전'은 제조업을 하는 기업이라면 누구나 엄청난 '노조 반발'을 예상해야 할 이슈다.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ㆍ유럽 제조업체 상당수가 본사 이전 이슈에서 노동조합과 혈투를 겪은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현대중공업은 어느 대기업보다도 '지역 사회' (울산)와 명운을 같이 해온 역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회사를 분할하고, 본사를 이전하고, 남겨놓는 회사(신설 '현대중공업')에 부채를 고스란히 넘긴다. 노조와 지역사회의 엄청난 반발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다.

    당연히 현대중공업은 이를 대비, 미리미리 노조와 직원을 설득하고 지역사회를 달래면서 합당한 수준의 이익공유 방책을 고민하고 준비했어야 했다. 이는 이제 중간지주사 CEO가 되는 권오갑 부회장과 그를 위시한 현대중공업 경영진이 엄연히 담당했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모습이라고는 장밋빛 미래를 설파하고, 울산시장을 면담하고, 노조에는 법적인 잣대만 먼저 들이미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 결국 뒷수습을 못해 '번갯불에 콩 볶듯' 주주총회를 통과시키고, 모든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이러고서는 "왜 정부가 더 나서주지 않느냐", "왜 노조는 회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하느냐"라고 남탓만 한다면. 결론은 하나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부가 '특혜시비'까지 무릅쓰고 선물을 안겨줘도 현대중공업은 이를 소화할 '능력'조차 부족하다는 것.

    사실 ▲대우조선을 이끌어갈 새 주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현대중공업은 가장 효과적인 인수후보라는 점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는 좀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현대중공업도, 산업은행도 끊임없이 이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별개 문제다.

    일례로 201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도 당시에는 '옳은 일'이란 평가를 받았다. 즉 ▲두 회사 합병은 '필요한 거래'였고 ▲현행법을 최대한 준수했으며 ▲재계 1위 삼성그룹 지배구조 안정화를 통해 국가경제와 산업경쟁력 강화에도 일조하리라는 점은 분명했다. 이에 대한 반대는 산업과 국가경쟁력을 훼손시키는 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평가에서 비롯,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은 지금까지도 엄청난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찬성표를 낸 국민연금은 물론, 이재용 부회장 신변에까지 영향을 주는 사안으로 불거졌다.

    명분은 뚜렷했지만 소액주주 권리 침해에서부터 형평성의 상실,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한 거래라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의도'와 '목적'이 명확하더라도 '과정'의 논리를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동일한 잣대로 수년뒤 현대중공업-대우조선 인수합병이 이런 냉혹한 평가에서 자유로울지는 미지수다.

    ◆"누가 먼저 제안했다고 말하기 곤란합니다"…뒤늦게 시장반응 조사는 왜? 

    이번 거래에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던 질의 중 하나는 "이런 창의적인 거래를 누가 먼저 제안했는가"였다.

    인베스트조선 취재과정에서 얻은 종합평가는 "1년 가까이 양측의 논의가 이뤄졌다", "최초에 현대중공업이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를 위해 마련해 산업은행에 제안했다", "산업은행이 처음에는 형평성 이슈, 특혜 시비를 우려해 거절했다가 이후 이동걸 회장 취임 후 분위기가 변했다" 등의 언급이 이어졌다. 거래에 접근성이 있는 관계자들의 얘기다.

    개연성만 놓고 봐도 현대중공업 오너 일가에 가장 유리한 구조인데다, 실패 위험성을 제로베이스까지 떨어뜨린 구조이니 현대중공업이 먼저 창안한 아이디어로 볼 여지가 높다. 권오갑 부회장-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만남이 자주 계기로 거론되는데, 권 부회장이 오너 일가를 대리해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양측에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하지만 어느 한 곳도 "누가 먼저 제안했다"라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구조조정이란 '한 뜻'을 가지고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동일한 시기에, 동시에 협의를 시작했다. 다만 누가 먼저 이 거래를 제안하고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가 공식입장이라고 밝혔다.

    본인들이 당사자면서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모르겠다'는게 말이 되는가 싶어 다시 문의하자 "양측 필요에 협의를 시작했으며 더 밝히기 어렵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대중공업이 제안했다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산업은행이나 정부가 먼저 사라고 제안했다라고 하지도 않았다.

    산업은행은 더 애매모호했다. "양측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협의하고 이뤄낸 결과에 불과하다"라는 답을 매번 되풀이 했고 이번에도 동일했다. 또 이 같은 답변을 문서로 제공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최근 투자업계에는 흥미로운 언급이 다시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 매각을 거침없이 추진하고 대의명분을 설파했던 산업은행이 최근 갑자기 대우조선 M&A에 대한 '의견 청취'를 위해 주요 애널리스트들을 접촉 중이다. 사실 여론 청취라면 딜 구조가 마련되고 공식화되기 이전인 작년 하반기나 올 초에 이뤄져야 했다. 오히려 지금은 활시위가 당겨진 상황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 노조 반발로 논란이 재점화되자 갑자기 여론을 살피고 조선업과 전혀 무관한 애널들에게도 접촉이 이어지고 있다. 혹시 이제서야 '미래의 평가'를 걱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