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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 매입에 나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백기사'로 자리잡았다.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조 회장 측은 일단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평가다. 미래에셋대우에 이은 우호지분 증가로 조 회장 일가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델타항공은 20일 자사 홈페이지에 대한항공 지분 4.3%를 매입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델타항공은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은 뒤 한진칼 지분을 10%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델타항공은 JV 관계 강화를 목적으로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아니라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산 점을 고려하면 한진그룹의 백기사로 이해해도 무리 없다는 평가다.
에드워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대한항공과 맺은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V)를 통해 고객들에게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미국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최상의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이번 투자로 JV 가치를 기반으로 한 대한항공과의 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은 고(故) 조양호 회장 시절부터 협력 관계를 맺어 왔고 2000년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을 출범시킨 창립멤버다. 지난해 5월에는 JV를 설립해 한ㆍ미 직항노선과 아시아 80개 및 290개 노선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한준 KTB증권 연구원은 “델타항공의 타 항공사 지분 투자는 새롭지 않은 일”이라며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지분 교환 정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델타항공은 2017년 스카이팀 멤버이자 JV 관계인 에어프랑스 지분을 10% 취득했고 이사진에 취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2015년에는 협력 관계인 중국동방항공의 지분을 3.5% 취득했고 브라질의 GOL항공사 지분 9.5%도 취득하고 있다.
델타항공이 한진칼의 지분을 획득한 경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대한항공 측은 “델타항공의 지분 취득 방법에 대해선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델타항공의 주요 주주로서 법적인 지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 10%를 보유하는 데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며 “법적인 해석이 열려있긴 하지만 규정상 지분이 50% 이상이거나 사업을 지배하는 경우를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진그룹의 백기사로 나선 것은 델타항공 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한진그룹 우호지분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단 미래에셋대우는 한진그룹의 승계 컨설팅을 맡으며 우군으로 전면에 나섰다. 미래에셋대우는 KCGI에 주식담보대출 200억원의 만기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하기도 했다. 7월 만기 대출 역시 연장을 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증권사들도 다양한 경로와 조건으로 한진그룹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조원태 회장 체제에 한진그룹이 제시 할 비전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에 보유 부동산 가치 극대화 때문에 부동산팀도 불려갈 정도로 IB 차원에서 한진그룹 계획 수립에 집중하고 있다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한진그룹의 백기사 요청에 우군들이 결집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항공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조양호 회장 사후 한진 일가 갑질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며 “이제는 한진그룹을 도와줘도 여론의 눈치를 덜 봐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한다.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해온 KCGI는 셈법이 한층 복잡해지게 됐다는 평가다. 만약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을 10%까지 매입하면 한진그룹 오너가 지분 28.93%를 포함, 우호지분이 38.93%에 달하게 된다. 현재 한진칼 지분 15.98%를 보유하고 있는 KCGI 측은 지분 싸움에서 크게 밀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KCGI와 경영권 분쟁에서 한진그룹이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면서도 “동시에 한진그룹도 백기사 모으기 위해서 회사에 불리한 조건들이 생길텐데 실적에 악영향 끼칠 수 있고 백기사가 돌변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매입 소식이 전해진 이후 21일 오전 한진칼 주가는 8%이상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주가 상승의 동력이었던 경영권 분쟁이 사그라들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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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21일 11:30 게재]
국내에서도 한진그룹 우호지분 늘어나는 추세
"고(故) 조양호 회장 사후 분위기 반전...백기사들의 돌변은 우려"
"고(故) 조양호 회장 사후 분위기 반전...백기사들의 돌변은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