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규제 화살 꺼낸 일본, 정조준 목표는 삼성·정부의 '비메모리 2030'
입력 19.07.04 07:00|수정 19.07.05 09:42
'현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업계 '의아하다' 반응
삼성·정부 미래먹거리 '비메모리' 목줄 쥔 일본
파운드리, 사실상 민·관 프로젝트…핵심소재 일본 의존
업계 "전면전 확대는 오히려 독" 지적도
  •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안을 기습적으로 발표하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안을 파악 중인 업계에선 일본 정부가 선정한 소재들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세 가지 품목 모두 외견상 당장 국내 업체들의 실적에 큰 타격을 주는 소재와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일본이 겨냥한 마지막 과녁이 삼성전자 그리고 한국 정부의 미래 먹거리로 꼽힌 비메모리 반도체를 정확히 겨누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조치가 생산 차질로 이어지게되면 그간 공격적으로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해온 삼성전자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뿐 아니라, 비메모리를 기반으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내세운 한국 정부의 청사진에도 차질을 줄 것이란 지적이다.

    ◇수많은 무기들 두고…일본은 왜 당장 '타격' 없는 물품을 골랐을까?

    지난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비롯한 반도체와 TV 디스플레이 핵심재료 세 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4일부터 단행한다고 밝혔다. 그간 각 품목들의 한국 수출은 ‘포괄적 수출 허가대상’에 포함됐지만, 규제 도입 이후부턴 개별적으로 수출 허가신청을 요구해 심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규제안이 시행되면 수출 허가까지 90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경제산업성이 이번 조치 배경을 "(양국 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면서다. 사실상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외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허가를 미루는 등 '금수'조치에 준하는 보복을 취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곧바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해당 규제가 미칠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규제 품목이 점차 구체화 될수록 업계의 의문은 커지고 있다. 일본이 즉각적으로 국내 업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핵심 소재와 장비가 있음에도 불구, 이를 대신해 당장은 타격이 미미한 품목들을 선정한 점 때문이다.

  • 예를들어 TV·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패널의 핵심 재료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 업계에선 크게 원료 투입 비중에 따라 '불산계'와 '초산계'로 분류한다. 이번 규제에 포함된 소재는 불산계로 알ㅇ려졌는데, IT분야에선 접는(Foldable)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소재로 주로 쓰인다. 일본 스미토모가 독점적으로 삼성전자에 공급하고 있다.

    정작 완제품인 폴더블 스마트폰은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독점적으로 양산을 결정했는데(갤럭시 폴드), 고동진 사장이 직접 고백했듯 “무리해서 출시했다”는 자체 평가가 나왔다. 애초 100만대 규모 판매를 기대했지만 품질 문제 등으로 잡음이 있었던 만큼 30~40만대 수준 틈새시장 공략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더군다나 갤럭시 폴드가 이미 시판을 앞둔 만큼, 해당 모델에 공급될 필수 소재는 이미 확보해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실적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란 시각이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국내 업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려 했으면 오히려 더 광범위 하고 범용 제품에도 두루 쓰이는 플렉서블(휘는) 디스플레이용 ‘초산계 PI’를 규제하는 방안을 꺼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웨이퍼의 세정 및 식각 공정에 쓰이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도 국내 소재사들이 일정정도 공급망(Value chain)을 갖춰둬 대응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여전히 원천기술 측면에서 일본업체의 경쟁력이 압도적이지만 이미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등 국내 소재사도 일본 모리타화학 등과 조인트벤처(JV)를 맺어 설비 가동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포성' 대비 정작 여파는 적은 탓에 업계 일각에선 단기적인 해프닝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반전 카드로 꺼낸 '위협구' 정도에 그칠 것이란 평가다.

    ◇핵심 과녁은 삼성전자 'EUV' …일본, "2030년 비메모리 1위" 민·관 프로젝트 '겨냥'

    해석이 갈리는 소재는 반도체 기판에 쓰이는 포토 레지스트(감광액)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이 이번 제재에 포함한 품목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용 레지스트가 아닌 차세대 노광장비(EUV)용으로 알려졌다. 앞서 두 소재와 마찬가지로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점유율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와 사실상 무관한 품목이다. 역시 현재 반도체 실적과 업황에 미칠 영향도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D램에서 주로 사용하는 리지스트는 ArF 이머전 노광장비용이고 3D낸드 공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레지스트는 KrF 노광장비용인데 ArF 빛의 파장은 193nm이고 KrF 파장은 248nm"이라며 "일본 정부는 193nm 미만 파장의 빛에 최적화한 레지스트만 규제하기로 했으니 이 둘은 규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타깃을 삼성전자의 미래먹거리인 '비메모리'로 좁히면 해석은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TSMC·글로벌파운드리 등 선두권 업체들을 위협할 정도로 빠르게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비록 삼성전자가 유일하게 자체 물량을 자사의 파운드리 수주로 집계하다보니 '통계의 함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최근에도 퀄컴 ·AMD·인텔 등 글로벌 선두 업체들의 물량을 수주하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경쟁사 글로벌파운드리가 막대한 투자비 부담으로 공정 미세화(7나노 이하) 경쟁에서 사실상 낙오하면서, 선두 TSMC와 미세공정을 둔 기술 경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 핵심에 EUV 설비가 있다.

  • 업계에선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삼성전자가 EUV를 활용한 파운드리 양산 채비를 갖추고 글로벌 고객사에 본격적인 '성과'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고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한 ‘반도체 비전 2030’의 첫 시험대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이번 일본의 제재로 예기치 못한 생산 차질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는 EUV 용 레지스트를 일본의 JSR, TOK 등에서 대부분 납품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화학사인 다우케미칼 등도 일부 생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EUV용 분야에선 일본업체의 기술력이 절대적이란 평가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이재용 부회장은 물론 정부 차원의 핵심 육성사업이기도 하다. 그간 "메모리반도체 편중을 극복해야 한다"고 '훈수'해온 정부 입장에선 삼성전자가 때맞춰 발표한 대규모 투자 및 채용 계획이 반가운 상황이었다. 특히 대법원 최종 선고를 앞둔 이재용 부회장의 특수 상황에도 불구, 문재인 대통령이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독려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계획에도 비메모리 반도체가 핵심에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선 이번 조치로 사실상 국내 '민·관' 핵심 프로젝트인 비메모리 사업에 예기치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는 셈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나머지 품목들이 '구색 맞추기'로 보일 정도로 일본이 'EUV' 레지스트를 겨냥한 점은 국내 정부와 삼성전자 모두에 치명적으로 보인다"라며 "JSR, TOK 입장에서도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협상력에서 우위를 가져가면 장기적으로 나쁠 것이 없다는 판단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정부와 여당 차원에서 이번 조치의 WTO 제소 여부를 거론하는 등 확전 양상을 띄고 있지만, 국내 업체들엔 오히려 독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이 지금은 3개 소재에 한정돼 있지만, 범용 소재로 확대되거나 핵심 장비로까지 옮겨지면 국내 업체들의 미칠 영향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일본 캐논 도끼(Tokki)사의 증착설비 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OLED 디스플레이 양산은 사실상 중단될 정도로 여파가 크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정부간 외교전으로 비화하는 등 사태가 커지는 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면서 "정부는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삼성전자 차원에서 일본 업체와 물밑 협상을 통해 우선 올해 물량이라도 따내는 등 민간 차원에서 총력을 다 하는게 가장 합리적인 해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