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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소강 상태였던 한일간 경제전쟁은 언제든 재점화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대통령의 광복절 메시지는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런 움직임으로 갈등 봉합의 단초가 마련될지, 아니면 오히려 더 확전될지 여부는 오는 28일 일본의 수출규제 시행일 이후 향방에 달려 있다.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반도체 필수 소재인 EUV용 포토레지스트다. 일본이 세계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대체 가능성도 어렵다는 평가다. 삼성전자가 벨기에로부터 포토레지스트를 조달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발 보도를 둘러싼 설왕설래는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일본이 D램 1위인 삼성전자를 공격할 표면적 이유는 없다. 결국 타깃은 비메모리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면서 비메모리 시장에서의 경쟁의사를 밝혔다. 우리 정부도 발맞춰 ‘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미래 성장을 위한 기술투자가 확대되는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투자를 막을 방법은 중간재 수출 규제뿐이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양국은 경쟁관계가 됐다. 일본 소니가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이미지센서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1억화소 돌파 제품을 내놓으며 추격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목적은 자국 기업이 우위인 분야로 삼성전자가 진출하는 것을 막고, 동시에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와의 치킨게임을 유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경제전쟁은 기업간의 문제가 아닌, 양국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발생했다. 글로벌 밸류체인상 비정상적이지만,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가 소재와 관련해 ‘100% 탈(脫)일본’ 하는 것은 쉽지 않고 또 바람직한 방향도 아니지만 소재 국산화와 소싱 다변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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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와 금융계는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 삼성전자의 친미(親美) 전략과 실행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로컬 기업이 아닌,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으로서 미국 산업계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다면 국가간 무역 갈등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전략이다. 지난 6월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미국에 와 주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비 미국 이전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게 되면 관련 부품 인프라 역시 모두 미국으로 옮겨가야 한다.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무역 갈등이라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면 그 정도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일본이 미국에 의존적인 만큼 삼성전자가 미국 산업계에 녹아든다면 각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는 미국의 주요 IT 기업들과 끈끈하고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 세계 2위인 AMD와 그래픽IP(설계자산)에 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최근 2분기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AMD의 그래픽 기술을 2년 뒤 나올 제품에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D램 모듈 등 메모리 분야에서도 AMD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각각의 강점을 바탕으로 ▲생산성 ▲클라우드 ▲혁신 등 3개 분야에서 확대할 계획이다. 갤럭시노트10 언팩 행사에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가 깜짝 등장해 “MS와 삼성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에 있어 혁신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양사의 협력은 또 다른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소프트파워가 IT업계 경쟁력의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서 이미 삼성전자의 핵심 전략은 대부분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며 “미국 IT업계에서도 삼성전자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확실한 시장 구성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위기탈출 플랜에서 변수는 다시 이재용 부회장이다.
지난 7월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책을 논의할 때 이재용 부회장은 일본으로 향했다. 수출규제 타격을 받는 당사자인만큼 실질적인 대응책이 필요했고, 이 부회장이 리스크 관리에 직접 나섰다.
귀국 후 이 부회장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영진과 긴급 사장단 회의를 갖고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 계획)’ 마련을 주문했다. 이달 들어 삼성전자 사장단 긴급회의에선 "일본 수출 규제 사태와 관련해 긴장은 하되 두려워 말고 위기를 극복하자"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삼성전자 온양캠퍼스 방문을 시작으로 현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 내 강경한 분위기를 느끼고 소재 탈일본 결심을 최종적으로 내렸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심지어 ‘일본에 대항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는 언급까지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단순히 한일 갈등뿐 아니라 미중 분쟁으로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한 현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이재용 부회장의 존재감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삼성전자의 전략적 판단은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고 미국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강화나 인수합병(M&A)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또 다시 삼성전자의 불확실성과 이어진다.
일본 정부와 날이 서 있는 우리 정부 입장에선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과 보폭을 맞추는 것이 절실하다. 하지만 레임덕 최소화와 내년 총선을 생각하면 정부 출범 이후 보여줬던 재벌 개혁의 기치를 한 순간에 내려놓기도 쉽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의 행보와 대응에 박수를 보내더라도 국정농단 사건 3심을 앞둔 그에게 찬사만을 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이재용 부회장으로 인해 발생할 삼성전자의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 3기 개각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취임식에서 "시장 교란 반칙행위 등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 추호의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조심스럽게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단 이 부회장의 상고심 선고는 다음달 이후로 미뤄지면서 불확실성이 유예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와 관련해 최근 새로운 검사들이 수사팀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삼바 수사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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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20일 07:00 게재]
소재 국산화 및 조달루트 다변화 필수
美 산업계서 주요 일원될 노력도 필요
MS·AMD 등 협력강화 잇따라 발표
이재용 부회장 ‘위기탈출’ 경영 주목
3심 앞두고 靑인사에 불확실성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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