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후보 일가의 PEF 운용법, 대기업 승계 고민 해결 지침서?
입력 19.09.06 07:00|수정 19.09.09 09:15
  • “그래서 저에게 10년 전에 싫다는 데도 회사 세우게 하신건가요?”

    “그래. 일감 몰아주는데는 이 물류만한게 없거든. 작은 회사지만 일감 몰아주기를 해서 매출 키우고 지주사 전환하면 너는 핵심 계열사 지분 하나도 안 가지고 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돼. 지금은 회사가 작지만 인수합병 하면 되니까. 부족한 자금은 최대주주 네 엄마 지분 21% 중 5%만 떼서 팔면 되니 설득해봐.”(KBS드라마 '태양의 계절')

    일일 드라마의 한 대목이다. 이제 재벌 일가를 다루는 드라마라도 '출생의 비밀' 정도로는 화제를 끌 수 없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승계 과정의 디테일 정도는 가미돼야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그간 내로라한 대기업들의 승계 과정이 드라마 대사와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밀실에서 이뤄져야할 논의가 이제 주말 드라마에서까지 풍자되는 건 이 방식이 수명이 다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후계자를 키우기 위해 온 계열사가 필요했던 시대는, 삼형제로 유명한 한 그룹의 승계가 마무리되면 사실상 끝날 분위기다.

    이후 이를 대체할 수많은 우회로들이 고심됐지만 큰 대세를 이루진 못했다. 누가봐도 고속 성장이 뻔히 보였던 반도체 소재 회사 지분을 오너일가가 파생상품을 활용해 인수했던 그룹은 곧장 ‘기회 유용’의 논란에 섰다. 중국의 굴기를 막으려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항변했지만 반응은 차갑다.

    이런 법조문과 현실 사이 간극이 안타까웠던 걸까.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선임과정에서 화제가 된 '코링크PE' 투자구조를 지켜보며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공정위원회와 여당의 ‘일감몰아주기’ 공세로 숨통이 막힌 대기업집단에도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예를 들어보자. 승계과정에서 막대한 상속·증여세 고민에 잠을 설쳐온 '용그룹' 오너 일가들은 가족회의를 열어 재원 마련 방안을 고심 중이다. 마침 그간 교류는 뜸했지만 주식 투자에 소질을 지닌 친·인척(5촌보다 더 멀 수록 좋다)이 요즘 화제인 ‘블라인드 PEF’를 활용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며칠 뒤 이 친·인척이 자신이 직접 '운용사' (정확히는 업무집행사원ㆍGP)를 맡겠다며 '개천PE 설립 제안서'를 내밀었다. 용그룹 후계자들과 아내 등 일가들이 앞다퉈 이 펀드에 출자한다. 다만 오너 본인에겐 어쩐일인지 전혀 통지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이제부터 개천 PE는 유망한 중소기업 '가재'의 경영권 인수를 결정하고, '가재제1호밸류업펀드‘를 조성해 첫 투자를 단행한다. 가재는 용그룹의 주력사업과 관련해 소재를 만드는 회사다. 물론 개천PE로서는 용그룹과 관계를 내세우지 않고 "어디까지나 시장에 나온 여러 매물을 검토하던 중 하나임에 불과하다"라고 '해명'할 수 있다.

    용그룹 오너 가족펀드가 경영권 인수한 '가재'는 이때부터 용그룹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우수 협력 기업’에 선정된다. 그리고 ‘우연히도’ 일감이 몰리기 시작한다. 사세가 급격히 커지고 연관 소재회사들을 하나둘 추가 인수(Bolt-on)해 규모를 키운다.

    때마침 '죽창' 논란과 함께 한·일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정부 차원의 ‘소재 국산화’ 기조와 맞물려 용그룹도 대응방안을 고심한다. 용그룹 내 계열사의 M&A부서가 유망한 소재 회사를 인수해 직접 그룹이 육성하는 방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올린다.

    용그룹으로부터 물밑에서 인수 의사를 통보받은 개천PE는 즉각 IB를 한 곳 선임, '가재'에 대한 공개매각을 진행한다. 국내외 유력 PEF들이 참여한 옥션딜 형태로 진행되고 몇 번의 가격경쟁 끝에 용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높게 지급한 탓에 시장에선 일부 불만이 나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용그룹은 내재화가 장기적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하에 인수한 것이라 설명한다. 계약서 사인과 함께 개천PE는 성공적으로 청산을 거치고, LP들은 어느날 예고받지 못한 깜짝 투자 수익을 전해 받는다.

    결국 개천PE에 돈을 댄 용그룹 오너의 후계자와 아내 등은 큰 돈을 건네받고, 이제부터 이를 활용해 그룹 지주사 지분을 차곡차곡 사 모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에 기반한 상상이다. 하지만 조국 후보의 사모펀드 투자케이스를 적용하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우선 자본시장법(제249조의18)에선 업무집행사원(GP)의 이해관계 여부 등은 엄격한 기준을 두고 보지만, LP에 대해선 자율에 맡기고 있다. 실무상으로도 펀드 설립보고시 정관을 첨부해 금융감독원 전산에 올리는 과정에서도 LP의 명단은 모두 삭제하도록 돼있다. 용그룹 오너의 아내와 자녀들이 투자했다는 사실에 대한 '입막음'만 잘하면 된다.

    투자 제한요건이 있기는 하나 피해갈 수 있다.

    개천PE가 용그룹의 '계열사' 혹은 '금융회사'에만 투자하지 않으면 된다. 현행법에서는 PEF 내 출자비율이 30%이상인 LP가 존재할 경우에는 이 펀드로 LP의 계열사 주식은 5% 이상 취득할 수 없다. 즉 가족펀드인 개천PE가 용그룹 계열사 인수는 어렵다. 또 '금융회사'는 대주주 적격성 판단을 거쳐야 하다보니 LP 구성까지 다 공개되고 감독당국에서 꼼꼼히 따지는터라 단념해야 한다.

    하지만 위 사례처럼 용그룹의 '계열사'도 아니고, '금융회사'가 아닌 단순한 협력업체라면 법적으로 피해갈 방법이 생긴다. LP 중 누군가가 공직사회에 진출하려는 욕망만 접는다면 투자자 명단이 공개될 일도 사실상 없다.

    이런 시도도 실제로 있었다. 실제 그룹 오너일가가 신탁계좌를 만들어 PEF의 LP로 참여했고, 이 PEF가 협력업체를 인수하려는 과정에서 금감원이 행정지도를 통해 저지한 사례도 업계에서는 회자된 바 있다.

    다행히도 현실은 엄격해서 현재로서는 '가능성'에 기반한 시나리오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등 규제 당국의 검사·조사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여론의 비난이라는 '장애물'도 남아있다. 오너일가의 이런 비상식적인 투자가 알려질 경우…여론의 질타와 이로인해 그룹 경영의 미칠 후폭풍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렇지만 행여 이런 투자행위가 들통난다고 해도 용그룹 오너들로서는 변명거리가 있다.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적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 "용그룹 계열사 주주들에게 일부 피해를 준 점은 송구하다…다만 우리가 가로등같은 국책 사업에 뛰어든 것도 아니고"라며 적반하장 격인 대응에 나설 지도 모를 일이다.

    사모펀드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PEF 운용사들에 대해 '수익률에만 목매는 집단'이라는 선입견이 많았다. 하지만 웬만한 규모가 있는 PEF 운용사들은 이런 위험한 투자를 꺼려왔다. 이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자정작용'으로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평판’에 누구보다 민감한 PEF업계에서 이런식의 ‘파킹 거래’는 사실상 금기시되기도 했다.

    이는 PEF 운용사 사이에서도 같은 수익률을 올려도 이른바 '노는 물'이 나뉘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유니레버에 화장품 회사를 매각해 조단위 수익을 올린 PEF와 '대기업 고민 해결사'로 알려진 PEF 운용사간 위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법무부장관 후보, 더 나아가 금융당국과 여당까지 직접 나서서 "사모펀드는 알아서 투자해 달라고 하는 '블라인드'다. 얼마나 가까운 사람끼리 하냐면 아버지의 돈을 아들이 (운용)하기도 한다.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규제가 거의 없다"(최종구 금융위원장), "사모펀드는 블라인드 펀드로 알려졌는데 운용사가 결정하는 데 투자자가 결정에 관여할 수 없다"(기동민 민주당 의원) 명확히 규정해 준 상황이다.

    그간 “금감원 등쌀에 못살겠다”던 PEF 운용사들은, 연일 여당과 당국에서 "글로벌 수준의 PEF 규제 완화" 의지를 밝히자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민정수석이자 법무부장관 후보가 직접 블라인드 PEF내 GP와 LP간 독립성을 손수 증명했고 여당이 적극 엄호했는데, 당국이 그 순수성을 침해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운용사들이 스스로 조심했던 대기업 오너들과의 은밀한 거래를 선보여도 이를 '파킹'이라 폄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러다보니 업계에선 그동안 말라가는 일감에 고심하는 IB·컨설팅사들이 구조를 좀 더 가다듬으면 새 먹거리 창출 기회로도 각광받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이른바 '조국식 투자 구조'(Minister Cho's Practice)로 널리 마케팅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