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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올해 들어 '역대급' 금융사고들이 터지고 있는 것일까. 불과 1년 새 수천억원이 손실 확정되고 조 단위 자금이 펀드에 묶이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성장에 목멘 대형 금융그룹의 탐욕이 꼽힌다.
최근 4~5년간 금융지주들은 본격적인 외형 경쟁에 나서며 주요 계열사에 '매년 순이익 20% 성장' 등 무리한 목표를 할당해왔다. 여기에 역사적인 저금리와 그에 따른 위험투자선호(Risk on) 현상, 단기간에 크게 늘어난 글로벌 변동성, 금융에 대한 정부의 방관 등이 합쳐지자 단기간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시장 신뢰가 무너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올해 리스크 관리 실패로 벌어진 주요 금융사고의 총 피해액은 굵직한 사안만 모아봐도 2조원을 훌쩍 넘는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 8200억여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연기 1조3000억여원, 독일 헤리티지재단 부지개발 관련 파생상품 4600억여원 등 개인투자자들이 쌈짓돈을 투자한 상품에서 사고가 터진 것만 이 정도다. 여기에 6000억원이 들어간 뉴욕 20타임스스퀘어 개발사업, KB증권의 호주부동산개발 사업 등 기관 자금이 투입된 금융상품의 잠재 부실까지 합치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란 평가다.
현재 시장의 시선은 해외금리연게 파생결합상품을 판매한 하나은행·우리은행에 주로 쏠려있지만, 주요 금융사고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형 금융그룹 중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한은행·신한금융투자는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가장 열심히 팔던 판매사다. NH투자증권은 헤리티지재단 파생상품 4600억원 중 3000억원을 담당했다. KB증권은 총수익스왑(TRS) 방식으로 라임자산운용과 코스닥 상장사 '파킹거래'를 했다는 정황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고객 신뢰'를 먹고 산다는 대형 금융그룹들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금융권에서는 최근 극에 달한 외형 성장 경쟁을 배경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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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금융그룹들은 2015년 하나은행-외환은행 합병, KB금융의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인수 등을 기점으로 외형 성장 경쟁에 나섰다. 인수합병(M&A)을 위한 자본 마련을 위해서라도 내부성장(Organic growth)는 필수였다. 순이자마진(NIM)이 1%대로 떨어지고 대출 관련 규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초점은 '비이자이익'에 맞춰졌다. 비은행 계열사와 금융상품 판매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도 이 무렵이다.
지주는 계열사에 목표를 부여하고 그 결과물로 평점을 매긴다. 평점은 해당 계열사 대표의 연임, 그리고 임직원들의 보너스를 좌우한다. 목표 수익·자산·고객군 확충 등이 주요 평가지표(KPI)다. 최근 4~5년간은 특히 수익에 대한 지주의 압박이 심했다는 것이 복수의 금융 계열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례로 NH투자증권은 2015년 이후 매년 '당기순이익 20% 성장'에 준하는 목표를 부여받았다. 2016년에는 은행을 포함해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순익을 냈음에도, 지주는 목표에 일부 미달한 부분이 있었다며 '미흡' 등급인 'C등급'을 부여했다. NH투자증권이 이듬해 3000억원이 넘는 순익을 내며 50% 가까이 성장하자 지주는 그제서야 '우수' 등급을 부여했다.
계열사에 수익을 중심으로 목표를 부여하는 금융그룹은 농협금융과 더불어 신한금융그룹이 언급된다.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미래에셋금융그룹은 지난해 기준, 수익에 자산·고객 수 등 복합적인 목표를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데 매년 20%씩 이익을 늘린다면 4년 후엔 이익 규모가 2배로 커져야 한다. 국내 금융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긴 하지만, 매년 20% 성장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2015년 이후 국내 9개 은행금융지주계열 금융그룹의 총 자산 규모는 4년간 고작 28% 늘어났을 뿐이다.
한 증권사 리스크관리 담당자는 "모든 조직이 수익성을 쫒다보니 리스크를 가져가지 않을 수 없고, 수수료 수익을 위해 리스크가 비교적 높은 상품을 우선적으로 팔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최근의 파생상품, 대체투자 관련 이슈는 이렇게 누적된 위험의 일부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금융그룹만 탐욕을 부린 건 아니다. 애초에 금융시장 자체가 수익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이례적 저금리로 국고채·예적금 등 주요 안전투자자산의 수익률이 뚝 떨어지자, 너도 나도 파생 등 고위험 상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2015년 홍콩H지수 사태 이후 무대에서 퇴장할 줄 알았던 주식연계증권(ELS)은 지난해 연간 86조원(원금보장형 포함)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돌파했다.
'골디락스'(이상적인 경제상황)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2017년 바이오를 선두로 코스닥시장이 급등하며 금융시장 자체가 위험투자성향으로 돌아선 까닭도 한 몫 한다는 평가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치도 수백 배 폭등하며 위험투자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막상 시장은 무역분쟁 여파에 대한 우려로 2018년 하반기 본격적으로 꺾여버렸지만, 위험투자에 대한 선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국채·국고채 등 안전자산의 시장금리가 크게 떨어지며 일반적인 투자로는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분석한 국내 5대 은행 파생결합상품 판매 수수료 현황에 따르면 2017년 이후 파생상품 판매 수수료는 국내 은행 수수료 수입 증가분의 최대 50%를 차지했다. 파생상품 판매를 빼면 은행의 수수료 수입은 사실상 정체 상태였다. 수익을 쫓던 금융회사와 수익률을 쫓던 고객층이 만나 고위험 파생상품이 '대중적인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은행의 이자 수익을 악(惡)으로 몰고, 주력 수익원인 주택관련 대출을 강력히 조이며 주요 금융그룹들이 비이자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도 있다"며 "파생결합상품(DLS) 사태가 터지기 전까진 금융당국도 이런 추이에 무관심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발짝 물러서 있던 정부는 잇딴 금융사고를 계기로 규제 강도를 높일 전망이다. 소비자 보호를 무기삼아 인사 등에 개입할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당장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조정 결과를 이의없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융회사 및 상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가운데 시중 부동자금은 예적금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 2년 미만 정기예적금 규모는 1176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8년 4월 사상 최초로 1000조원을 돌파한 이후 1년 4개월만에 18%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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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21일 07:00 게재]
금융그룹 외형경쟁에 공격적 목표 계열사 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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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신뢰 상실에 2년 미만 예적금 사상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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