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거세진 주주 행동주의...기업들의 무분별한 M&A도 지적
입력 19.10.25 07:00|수정 19.10.28 10:11
시너지 없는 무리한 인수 '제동'
ROE 중요해져...재무활동 관심
주주행동주의 인식 제고 필요
  • 적극적으로 회사 경영에 관여하는 주주행동주의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있다. 그 동안은 아닌 회사발전을 같이 고민하는 동반자로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대주주(오너 일가)의 '제왕적 경영', 혹은 '전횡'을 주로 문제 삼아왔다. 또 사내에 유보된 현금에 대한 배당확대 등 주주환원정책 요구도 주를 이뤘다.

    이제는 회사의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M&A에도 적극적인 반대의견을 내세우는 쪽으로 행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주주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기업은 한진칼, 현대홈쇼핑, 롯데칠성, SM엔터테인먼트 등이 꼽힌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신사업 확장'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했다. 현대홈쇼핑 주주들은 주주서한으로 무분별한 M&A, 그리고 짠물 배당을 문제삼았다. 롯데칠성과 SM엔터테인먼트는 비주력 사업 확장 움직임이 본업의 가치를 오히려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반 주주들 사이에서도 최근 진행되는 일련의 M&A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어나는 추세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 부재를 따져 묻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고스란히 주가하락세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을 들여 미국의 실리콘회사인 모멘티브사를 인수한 KCC의 경우. 일단 인수자금의 상당부분을 차입금에 의존하다 보니 재무상황이 악화됐다. 그 사이 주가는 3년 전 수준에 반토막이 났다.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선 조단위 자금을 끌어들인 대형 M&A의 결과가 반토막 난 주가냐라는 불만이 커져갔다. 한 기관투자자는 “주주들의 모멘티브 M&A에 대한 생각은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다”라며 “아직까지도 회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업적인 시너지를 낼 것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냉동식품 업체인 쉬완스를 18억4000만달러(약 2조원)에 인수한 CJ제일제당의 경우, 30만원 수준이던 주가가 20만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미국으로의 사업확장을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선 인수배경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신현재 CJ제일제당 대표까지 나서 실적저하, 차입금 부담에 이달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웅진코웨이 인수에 나선 넷마블은 1조8000억원에 이르는 대형 거래 발표 이후 '시너지'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을 감내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회사는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나섰지만 인수 시너지가 안날 경우 주주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산업개발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 의사를 밝힌 이후 주가 하락세를 겪기도 했다.

    일부 M&A의 경우, 아예 거래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법적대응도 불사하는 모습까지 나오고 있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놓고 CJ헬로비전의 3대 주주인 홍콩계 사모펀드인 엑셀시아 캐피탈 아시아는 CJ헬로비전에 법적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엑셀시아는 LG유플러스가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이 제공됐고, 이에 따른 이익이 최대주주인 CJ ENM에만 귀속돼 소액 주주의 이익이 침해됐다며 소액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잔여 주식 전부를 사들이는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활용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 이런 비판들은 기업들이 무리하게 차입금을 써가며 해외 M&A에 나선 '목적'이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으로 모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주주들이 기업들의 M&A와 신사업 확장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데는 여러 요인이 거론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학습효과 ▲현 정부의 주주권 행사 독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등으로 연기금 영향력 확대  등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달라진 투자환경이 거론된다.

    경제 성장률이 2% 수준에 머물면서 기업들의 이익창출력도 저하하고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이익규모 증가가 좋은회사를 판단하는 주요요소였다면, 이제는 한정된 자본을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로 변했다. 즉 매출액, 당기순이익과 같은 지표보다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좋은 회사를 가늠하는 주요 척도가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주들은 이전보다 회사가 얼마나 재무적 관점에서 경영을 잘하느냐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자본을 불필요한데 낭비하지 말아달라"는 요구가 늘어나는 셈. 이로 인해 미래비전이 뚜렷하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자본이 소요되는 M&A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 장기 가치투자펀드 관계자는 “한국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기존 투자에 대한 회수기에 접어들어 자본은 많아지는데 경제 성장률이 낮아 투자기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ROE가 점점 중요해진다”라며 “높은 ROE를 창출하지 못하면 기껏 벌어놓은 자본이 상실된다는 측면에서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는 행태나, 잘못된 M&A에 대해서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달라진 환경변화에 따라오고 있지 못하다. 주주행동주의에 대해서 여전히 회사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회사에 쌓아놓은 현금을 노리는 약탈적 투자자들의 움직임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여전하다는 것. 무엇보다 조단위 자본을 들여 신사업에 투자하려는 목적이나 비전 자체가 뚜렷하지 않다보니 이를 주주들에게 적극 설명하고 설득시키려는 명분과 노력 모두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외국계 투자자는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기업들은 여전히 회사의 비용만 증가시키는 불필요한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라며 “하지만 이제 회사는 주주가치제고를 통해 성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작은 비용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해 국부 증진도 이룰 수 있다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