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비상경영 선언 의미, BU체제 종식과 헤게모니 집권화
입력 19.11.04 07:00|수정 19.11.06 11:26
비상경영시 BU 체제 선언했지만
대내외 문제들도 안착 사실상 실패
신 회장 복귀와 롯데지주 출범 맞춰
각 사업 헤게모니는 다시 중앙으로
"황 부회장 존재감 다시 드러날 것"
  •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계열사에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요청하고, 미래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달라고 강조했다. 10월30일 신동빈 회장과 지주·계열사 대표이사, 주요 임원 등 약 150여명이 참석한 경영 간담회에서였다. 경영 간담회는 경영환경과 이슈를 공유하기 위한 연례 행사다.

    시장에선 황 부회장의 선언으로 각 비즈니스유닛(BU)에 부여됐던 권한들이 다시 지주로 회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주사 출범과 신동빈 회장의 경영 복귀, 경영구조상 컨트롤타워가 복구됐다는 의미이기도 한 동시에 BU 체제가 위기 상황에서 기대만큼 잘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실상 롯데그룹의 위기라 할만 하다. 그룹 사업 대부분이 업황 부진을 겪고 있거나 개별 계열사들의 부침이 이어지고 있다.

    그룹의 한 축인 유통업과 음식료업은 내수 경기 침체와 소비패턴의 급속한 변화에 매출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면세사업을 기반으로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던 호텔레저업도 사드 이슈, 인천공항 면세점 철수 영향으로 매출이 감소했다.

    2016년 이후 그룹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50% 내외를 차지하는 석유화학업은 2018년 하반기 이후 에틸렌 등 핵심제품의 마진 약세로 수익성이 저하됐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다운사이클 장기화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 ‘형제의 난’과 최순실 국정농란 사태 연루 등 잇달아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신동빈 회장의 부재 가능성이 커지자 2017년초 롯데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과거 정책본부를 중심으로 개별 계열사들을 관리하던 톱다운(Top-down) 방식에서 유통, 화학, 식품, 호텔·서비스 네 개의 BU 체제를 구축해 보다 수평화한 조직 체계를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이전까지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정책본부는 경영혁신실로 축소됐다.

    10년새 그룹의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 정책본부가 모든 사안을 관장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BU를 중심으로 한 경영 전략 수립과 이행은 재계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향후 계열사 M&A 등 전략 수립도 경영혁신실이 아닌, 각 BU가 주도적으로 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기도 했다.

    BU 체제는 기대에 걸맞는 결과물을 도출하진 못했다. 각 BU의 실적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사례들도 속속 나왔다.

    일례로 계열사가 각각 운영하던 유통부문 온라인몰 통합이 계열사 간 이견으로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롯데가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3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며 ‘그룹 내 온·오프라인 고객 데이터 통합’을 밝혔지만 각 계열사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꼬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주사와 BU, 롯데쇼핑으로 이어지는 조직 체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곳은 많은데 이를 교통정리하는 곳은 없었다"며 "시장에선 신동빈 회장이 유통부문에 큰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롯데의 온라인 사업 투자는 BU 경영 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사실 BU 체제는 시작부터 시한부를 예고했다. 2017년 10월 4개 상장 계열사(롯데쇼핑·제과·칠성·푸드)를 거느린 '롯데지주 주식회사(롯데지주)'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후 롯데정보통신, 롯데지알에스, 한국후지필름, 롯데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상사, 대홍기획 등이 롯데지주에 계열사로 편입됐다. 연매출 16조원에 달하는 롯데케미칼도 롯데지주 밑으로 들어오면서 롯데지주는 명실상부 롯데그룹 컨트롤타워가 됐다.

    핵심은 결국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이다. 2004년 출범한 롯데쇼핑 산하 정책본부가 전신이다. 정책본부 운영실은 2017년 정책본부가 경영혁신실로 축소되면서 가치경영팀으로 이름을 바꾼다. 같은 해 10월 롯데지주가 출범하면서 가치경영실로 계보를 이어갔고,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경영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국제실은 2014년 비전전략실로 바뀌었다가, 2017년 경영혁신실이 출범하면서 가치경영팀과 합병됐다.

    경영전략실은 ▲경영전략팀 ▲경영전략1팀(식품BU 담당) ▲경영전략2팀(유통BU) ▲경영전략3팀(화학BU) ▲경영전략4팀(호텔&서비스BU) 등 5개 팀을 두고 있다. 가치경영실에서 경영전략실로 조직명을 바꾼 것은 전략기능을 강화하거나 재정비하겠다는 그룹 차원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즉 각 BU에 부여됐던 자율권이 사실상 지주사로 다시 돌아왔다는 얘기다.

    이는 신동빈 회장의 경영 복귀, 그리고 롯데지주의 모습이 갖춰지면서 가능해졌다.

    황각규 부회장은 경영간담회에서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면서 "투자의 적절성을 철저히 분석해 집행하고 예산관리를 강화해 달라"며 "향후 발생 가능한 외환 및 유동성 위기에도 철저해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장밋빛 계획이나 회사 내외부만 의식한 보수적인 계획 수립은 지양해 달라"며 "명확하고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반드시 달성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사실상 그룹 전반의 투자 결정, 자금 관리를 다시 롯데지주가 맡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황각규 부회장의 존재감을 다시 드러내는 것이기도, 롯데그룹의 전략 결정 대부분이 다시 신동빈 회장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말 인사에서 계열사 전반에 대대적인 인사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도 헤게모니가 다시 계열사 분권에서 지주사 중앙집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예고한다.

    신동빈 회장은 복귀 후 5년 동안 국내외 전 사업 부문에 걸쳐 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통 부문과 화학 부문을 그룹 양축으로 삼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지주사 전환의 마지막 퍼즐인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추진도 힘을 받을 공산이 크다. 일본 롯데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신동빈 회장 중심의 지주사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호텔롯데 상장, 롯데지주와의 합병은 필수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그동안 확장모드이기만 했던 롯데그룹이 최근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합병하는 효율화 작업을 거치고 있고 이는 계열사 전반의 주요 결정을 지주사에서 하는 데 편의성을 강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며 "연말 인사 이뤄지면 그간 사실상 멈춰있었던 '뉴롯데' 플랜이 재가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