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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환경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사업형태의 근본적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 시공 형태의 해외수주가 수익성의 한계를 보이며 국내 업체들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는 분석 속에서, 현재의 조짐들이 과거 ‘버블 붕괴’ 시절 일본 건설사들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지분투자 등을 통한 투자개발형 사업 강화가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환경은 과거 20년 전 일본의 사례로 비춰봤을 때 유사한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1990년대 일본 버블경제가 무너진 이후 각종 부동산 규제정책으로 주택 수익원이 꺾이고, 해외 시공경쟁력 역시 큰 우위를 점하지 못하던 상황이 유사하다. 당시 일본의 제네콘(General Construction; 종합건설회사)들은 단순 도급 사업에 집중하며 개발 부문을 대폭 축소했고, 리스크가 동반되는 투자형 해외 건설수주도 회피했다. 건설업 불황의 시작이었다.
현재 국내 건설사들 역시 성장 여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신서정 SK증권 연구원은 “밸류체인별 경쟁력 현황을 봤을 때 국내업체들은 설계와 구매, 조달과 시공 등 경쟁이 심하고 단가가 약한 부분에 머물러 체인을 확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유럽 등 선진 업체들은 기술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프로젝트 관리운영이나 FEED(기본설계) 등 높은 수익성을, 후발주자들은 저렴한 단가를 바탕으로 국내업체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성장이 고착화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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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설업계가 찾은 해결책은 ‘디벨로퍼’로의 전환이었다. 주로 해외 네트워킹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 부동산회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현재 일본 최대 디벨로퍼로 손꼽히는 미쓰이, 미쓰비시 등은 종합상사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활용, 각종 해외 발주처와 사업 관계를 맺으며 본격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달과 기획 및 자본 투자를 통해 전환점을 만들어냈고, 결국 제네콘의 실적을 앞질렀다.
생존가능성 측면에선 국내 업체들이 과거 일본보다 나은 환경을 갖췄단 평이다. 영세한 규모의 시행사를 대신해, 대형 건설사가 신용보강과 자본을 갖춰 디벨로퍼의 영역을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선두주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주목받는다. HDC는 대형 건설사임과 동시에 부동산 디벨로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개발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지주사 전환을 통해 ‘복합개발업체’를 지향점으로 밝힌 이후, 개발과 건축을 담당하는 HDC현대산업개발 이외에도 HDC아이서비스 등 계열사를 활용해 PM(건물관리업)과 같은 개발 벨류체인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외수주 이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시행부터 운영관리를 아우르는 사업경험에 대한 노하우는 빠르게 축적하는 셈이다.
최근 M&A는 변수로 떠올랐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만 최소 1조원 투입이 예고돼 재무건전성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곧 디벨로퍼 역량과도 연결된다. 지난 12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자회견에서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목표를 밝혔다. 현금성 자산이 대부분 소모돼 추후 조달금리 상승 리스크까지 겪을 수 있는 상황에서 기존과 배치되는 전략을 내놓은 셈이다. HDC 관계자는 “항공업이 개발사업과 시너지나 연관성이 있다기 보다는 새로운 성장방안을 찾기 위한 인수”라고 밝혔다.
자본여력과 실적에서 선두업체로 평가받는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은 보수적인 리스크 매니지먼트(RM) 체계가 제약이라는 평가다. 최근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2조6000억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발리파판 프로젝트나, 삼성물산이 수주한 7000억원 규모의 방글라데시 메그나갓 화력발전 공사 등은 모두 단순 도급 형태로 분류된다.
이들은 경쟁 사업자보다 규모 면에서 우위를 지닌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단순 시공 수주를 따내며 실적을 방어하고 있다. 다만 그룹 차원에서 리스크 관리 요구가 크다. 엔지니어링사를 중심으로 일부 시도가 있지만 여전히 규모 있는 지분 투자 사업은 쉽지 않다. 해당 건설사 관계자는 “4~5년 전부터 투자개발형 사업을 논의하던 분위기가 좀 사라진 것 같다”며 “무리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실적이 나오기도 했고, 리스크가 따르는 만큼 내부 통과가 엄격한 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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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진이 눈에 띄는 곳은 GS건설과 대림산업이다. 양 사는 최근 대형 지분투자 사업을 시도하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GS건설은 최근 터키 이스탄불에서 터키 르네상스홀딩스의 자회사 CPEY 지분 49%를 인수하는 주주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CPEY가 추진하는 약 14억달러(약 1조 7000억원) 규모의 대형 석유화학 단지 사업에 FEED부터 EPC계약까지 지위를 확보했다.
대림산업은 태국 PTTGC와 함께 미국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총 규모만 100억달러(약 11조 6000억원)로 이중 자기자본 2조원의 투자를 계획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내 EPC계약을 체결하고, ECC(에탄분해공장) 등을 지어 운영할 전망이다.
지분투자는 순수한 투자개발형 사업이라기 보다는 플랜트 강점을 앞세워 자체 유화사업이나 관계사의 역량 증대 목적이 크다. 특히 대림산업의 경우 회사가 발주(유화사업부)와 시공(건설사업부)을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 건설사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해외 디벨로퍼 사업은 맞지만, 발주처가 있는 일반적인 투자개발형 사업과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차후 화학 관련 역량 향상을 위함”이라고 밝혔다. 트랙레코드가 중요한 투자개발형 사업 특성상 이들의 확장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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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은 최근 나이지리아에서 국내 최초 LNG EPC 원청사업자로 진입하며 이탈리아의 글로벌 인프라기업 사이펨과 협업관계를 구축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투자개발형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네트워킹 측면에서 실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 다만 대주주의 지원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 이로 인해 외형 축소가 이어지고 자본 동원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약점이다. 지난해 270~280%로 회복세를 보이던 부채비율은 올초 다시 300%를 넘겼고, 올해 예상 연간매출은 8조원대로 10조원대가 무너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각 취약점은 있지만 국내 건설사들의 투자개발형 사업 시도는 계속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주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발주처에서 수주사가 사업에 따른 위험을 공유하는 한편, 자금 조달에도 기여하길 바라는 추세는 확대되고 있다”며 “지분투자를 통한 투자개발형 사업은 대안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기 때문에 두렵더라도 적극적인 시도를 통한 수익률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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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14일 09:4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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