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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자본시장(ECM)에서 승부를 보겠다던 주요 증권사들의 올해 포부가 '요란한 빈 수레'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년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못하다. ECM 성장을 내다보고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했던 의사 결정권자들은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부 선점 증권사를 제외하면 애초에, 변동성이 심한 ECM에서 승부를 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ECM에서 큰 성장성을 봤다기보단, 특정 플레이어들만의 과점인 채권시장(DCM), 국내사가 두각을 드러내기 어려운 인수합병 자문(M&A Advisory)를 피하다 보니 나온 결론이 ECM이었다는 평가다.
올해 IPO 시장은 공모 규모 1조원 이상인 '대어'의 부재 속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올 하반기에 한화시스템과 롯데리츠 등 공모 규모 4000억원 이상의 거래가 마무리되면서 그나마 지난해보단 조금 더 분위기가 나았다는 평가다. 실제로 올해 국내 IPO 총 공모 규모는 3조5000억여원(스팩 제외)으로, 지난해(2조8000억원) 대비 25%가량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IB들을 비롯해 시장 참여자들은 내년의 IPO를 기대하는 눈치다. SK바이오팜을 필두로 공모 규모가 '조 단위'인 IPO 거래가 나올 것이란 전망에, 올해보다 내년에 IPO 공모 규모 역시 늘어날 것으로 조심스레 관측되는 분위기다.
다만 지난 3년간 연말마다 반복된 '빅딜 기대감'이 내년에도 '빈 수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공존하고 있다.
2018년 이후 국내에서 대어급 IPO가 기근인 상태다. 지난해 초에도 2017년 말 예정됐던 IPO가 일부 2018년으로 넘어가면서 기대감이 형성됐지만, SK루브리컨츠·카카오게임즈·CGV베트남 등이 줄줄이 상장을 자진 철회하면서 공모 규모가 2조원대에서 그친 바 있다. 올해 역시 현대오일뱅크와 홈플러스리츠 등 대어급 딜의 상장 자진 철회가 잇따르면서 비슷한 모양새를 보였다.
현재 상장을 채비 중인 대어급 IPO 주자들의 완주를 낙관할 수 없는 점도 '빈 수레'를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내년에 IPO 예정인 현대카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현대카드의 경우 주관사단 선정을 마치고 IPO를 진행 중이지만, 최근 신용등급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되는 등 부정적 이슈가 꼬이면서, IPO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의 신용등급이 강등에 따른 결과지만 카드사의 신용등급은 당장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요인이라, IPO 밸류에이션을 책정할 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태광실업과 메가박스 등도 내년에 IPO를 계획 중이지만, IPO 완주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는 평가다.
연간 10조원 규모였던 유상증자 부문도 크게 쪼그라들었다. 올해 유상증자 총 공모 규모는 1조3300억여원으로 지난해 7조1400억원 대비 반의반 토막 규모가 됐다. 물론 지난해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쌍끌이로 초대형 공모를 진행했던 탓도 있다. 이를 감안해 코스닥 기업으로만 한정해도, 올해 공모 유상증자 규모는 8500억여원으로 지난해 1조5500억여원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증시 폭락이 세 차례에 걸쳐 반복됐던 2018년보다도 연간 유상증자 공모 규모가 더욱 줄어든 것이다. 일단 유통시장이 새 박스권에 갇히며 부진했던 탓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상장사의 성장성이 떨어지며 주가가 탄력을 받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일례로 올해 코스닥 상장사 총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저금리에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호조를 보이며 2015년을 전후로 유상증자 거래에서 단골 역할을 했던 금융회사들이 자취를 감춘 것도 시장 규모 축소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금융회사 공모 유상증자 규모는 이베스트투자증권 770억여원, 한국캐피탈 730억여원 등 총 1500억여원에 그친다. 2014년엔 금융회사 유상증자 연간 규모가 1조2000억여원, 2015년엔 8500억여원에 달했다.
내년엔 상장사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는 올해 침체의 기저효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이 내년 장밋빛 증시 전망을 내놓는 것과는 달리 운용업계 등 현장의 긴장감은 만만치 않다. 유통시장이 흔들리면, IPO는 물론 유상증자 등 발행시장의 분위기는 좋아지기 어렵다.
전환사채(CB) 등 메자닌(Mezzanine) 부문은 더 암울할 전망이다.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인해 메자닌이 '고위험 자산'으로 낙인찍힌 탓이다. 올해 사모 메자닌 발행 규모는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라임 사태 이후 발행이 크게 줄며 지난해와 비슷한 5조원대에 머물 전망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이젠 메자닌도 투자등급에 투자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모 메자닌의 80%가량은 신용평가를 받지 않은 무등급 채권이다. 투자 등급인 BBB- 이상의 메자닌은 흔치 않다.
물론 내년 하반기 이후 신용등급을 받은 메자닌이 점점 늘어나고, 공격적인 발행조건이 투자자에 다소 유리하게 판이 바뀌면 다시 중위험 중수익 자산으로 각광받을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증권사들의 고민은 점점 깊어질 전망이다. 증권사들은 최근 2~3년간 ECM 부문 확충에 주력했다.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에 ECM 및 IPO 담당 부서가 추가로 생기고, 인력 이동도 활발했다. 삼성증권을 위시해 일부 대형 증권사는 관련 인력을 대거 뽑았다. 신한금융투자는 글로벌 IB 출신 ECM 헤드를 영입했다.
ECM이 단지 수수료(Fee) 기반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전 투자(Invest) 뒤 수수료와 투자 수익을 동시에 챙기는 다중 전략 사업으로 각광받으며 생긴 추세다.
문제는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과 인력이 확충되다 보니 경쟁만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상장 전 투자(Pre-IPO)의 일환으로 유망 상장 예정 회사에만 집행되던 ECM부서의 자기자본투자(PI)는 '대표주관사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ECM은 인력과 자본을 투입한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나야 수익으로 되돌아온다는 특성이 있어 지금 투자의 성패를 단정할 시기는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다들 ECM밖에 실적을 낼 수 있을만한 분야가 없으니 경쟁이 점점 더 격해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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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2월 03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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