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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회사채 발행 시장은 연초 ‘상고하저’ 예상을 깨고 열기가 하반기까지 이어졌다. 국내외 불확실성 증대, 저금리 기조 속 유동성 과잉 등으로 우량기업 우위 속에서 장기 저금리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속속 등장했다. 연말 북클로징 기간에 접어들면서 시선은 이미 다음해로 넘어갔다. 다만 올해와 같은 호황이 이어질 가능성은 줄고 있다.
국내 기업의 신용도가 전반적인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은 잇따라 경고등을 켰다. 경기불황 장기화 전망에 내년 총선과 미국 대선, 미중 분쟁과 북한 리스크 등 안팎의 변수들로 불확실성은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이미 긴축경영을 예고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은 연초에 반짝 뜨거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주요 그룹들의 차환발행 수요만 해도 20조원에 달한다. 기업들의 신용도 조정작업이 내년 하반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 입장에선 등급 하향 이전인 상반기, 그것도 투자자들의 자금 집행이 시작되는 1분기에 선제적 발행에 나설 수 있다. 회사채 주관 증권사 입장에선 내년 1분기 성적표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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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회사채, 기업어음(CP) 등 직접금융시장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기업의 주무대가 해외로 이동 ▲유동성 과잉 공급 상태 ▲재무적투자자(FI) 유치에 따른 재무부담 경감 등이 맞닿아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해외진출은 가속화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3조6000억원을 들인 미국 루이지애나 에탄크래커 공장을 준공했고,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는다. 삼성전자는 인도 스마트폰 공장 증설을, 현대차와 기아차는 인도 공장 증설 및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현지 대규모 인수합병(M&A)과 투자도 잇따랐다. CJ제일제당의 쉬완스컴퍼니 인수, KCC의 모멘티브 인수, LG전자의 ZKW 인수, 현대차-앱티브 조인트벤처 설립, 라인-야후재팬 합병 등 최근 굵직한 딜(Deal) 대부분은 해외투자 건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하고 내수경기 부진은 장기화하는데 규제 개혁 부진과 인건비 상승으로 대기업들의 경영 환경 불확실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며 “국내에서 혁신의 기회를 찾지 못하자 결국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코리아 엑소더스'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은 온전히 보유 현금 또는 자체 외부차입으로 투자금을 충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업황 부진으로 수익성은 악화하고 있는데 투자를 늘리는 과정에서 차입금이 늘어난 기업들이 많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면서 “경제 여건이 둔화된 가운데 재무적 완충력 축소 및 대규모 투자 등이 반영됐다”고 설명한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같은 이유로 신용도 조정을 예고한 상태다.
몇 년전만 해도 대형 M&A가 있을 땐 어김없이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이어졌다. 투자 및 인수 자금 상당 부분을 직접금융시장에서 조달했다. 최근 트렌드는 바뀌었다. 더 이상 스스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는 자금 마련이 어렵다. 기업들은 속속 유동성이 넘쳐나는 FI와 손을 잡고 있다. KCC는 모멘티브 인수에서 SJL파트너스가 6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지분 투자금액 중 절반가량을 책임졌다. CJ의 쉬완스 거래에선 베인캐피탈이 투자자로 나서 5000억원을 지원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해외투자가 늘면서 현지 FI 유치, 또는 현지 자금조달이 늘고 있다.
드라이파우더(미소진 투자자금)가 넘치는 사모펀드(PEF)는 M&A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잡으면서 큰 손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PEF들의 활약이 예전만 못해 내년에 더 활발한 활동이 기대된다.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의 인수금융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초대형IB 출범 이후 시중은행 중심이던 인수금융 시장은 대형 증권사들로 중심축이 옮겨갔다. 인수금융 리그테이블 상위권엔 증권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PEF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과잉되면서 투자자들은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찾아가고 있다”며 “이전까진 회사채, CP 등 간접적 방식으로 투자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인수금융 시장으로 직접 들어가 보다 단기간에 확실한 회수를 노리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리그테이블 측면에서도 회사채보단 인수금융 주선이 해당기업과의 관계 형성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수금융 유치에 보다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을 2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HDC산업개발은 2조원을 책임져야 한다. 보유현금을 제외하면 1조원 정도 차입이 필요하다. 당초 전액 회사채 발행을 검토했지만 절반가량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거래에 참여할 때 SI와 FI의 전략적 컨소시엄이 트렌드가 된 것은 틀림없다. 신중론도 여전하다. SI와 FI의 투자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상충 문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SI가 약속된 기한까지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거나 FI의 투자회수(EXIT)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양측의 평판 하락은 물론 소송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이 투자 활동을 해외로 옮기고, 국내에선 긴축경영을 본격화하면 국내 직접금융시장의 역할은 사실상 롤오버(차환발행)로 좁혀진다. 그나마도 차입금 감축을 요구받는 기업들이 현금 상환에 나서게 되면 발행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 일례로 CJ제일제당은 내년에 3500억원, CJ대한통운은 18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데 절대적 차입금 규모 감축을 요구받고 있어 차환발행 가능성은 크지 않다. CJ제일제당은 서울 가양동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 매각으로 1조1328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는데 이를 모두 차입금 상환에 쓸 계획이다.
그래도 외형 확장 및 신사업 투자 계획이 있는 그룹, 신용도가 높지 않은 기업들, 보유 현금이 충분치 않거나 추가로 매각할 자산이 마땅치 않은 기업들은 여전히 회사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회사채 발행 여부 및 조건에 주목받는 업종 또는 기업들이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을 밝힌 현대자동차그룹은 적극적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5년까지 총 61조원을 미래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등급 하향이 이뤄진 만큼 조달 환경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현대제철은 내년 1조원 규모의 리파이낸싱이 예정돼 있고, 등급이 떨어진 기아차는 5000억원 상환자금을 준비해야 한다.
최근 승계 작업을 본격화한 GS그룹도 조달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올해 2조원 가까이 회사채를 발행한 GS그룹은 그동안 공모채 발행이 드물었던 계열사들도 나서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에도 2조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15년만에 사령탑이 바뀌면서 본격적인 외형 확장과 신사업 투자 계획, 이와 관련된 자금 조달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비우량그룹 중에선 한진그룹과 두산그룹이 눈에 띈다. 한진그룹에서 대한항공의 내년 회사채 만기 규모는 5000억원이다. 한진칼은 700억원, 한진은 공사모 합쳐 890억원의 상환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두산그룹에선 두산중공업이 원화 공사모채 1000억원, 외화 공사모채 6400억원가량 만기가 돌아오고 ㈜두산도 18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업종 중에선 유통업이 주목된다. 유통기업들은 수익성은 떨어졌는데 온라인 사업 등 투자를 늘리고 있다.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현금 소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점포 유동화 등 부동산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신용등급까지 떨어져 과거에 비해 조달 비용 증가는 불가피하다. 롯데쇼핑은 공모와 사모를 합쳐 75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이마트는 5300억원 규모의 공모채, 1억4000만싱가포르달러(1224억원)의 해외사모사채 상환을 준비해야 한다.
회사채 시장 관계자는 “신용도가 저하되는 분위기에서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는 금리 메리트로 오히려 인기를 누릴 수도 있지만 문제는 비우량기업들”이라며 “대한항공은 물론 AA급 KCC의 투자심리가 금방 바뀐 것만 봐도 A- 이하, BBB급 회사채가 소화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비우량 기업의 차입금 상환 전략에 관심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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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2월 11일 07:00 게재]
대기업의 해외 현지 투자 증가세
재무부담 경감 위한 FI 유치 늘어
국내 조달은 차입금 상환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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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달은 차입금 상환에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