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태광실업 모두 손사래 치지만…휴켐스 매각ㆍ활용법 기대감 솔솔
입력 19.12.23 07:00|수정 19.12.26 09:40
승계 필요한 태광실업…상장과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
3형제 승계 자금 시급한 한화…에이치솔루션 가치 상승 필요
한화·태광 “검토 한 바 없다” 불구, 휴켐스 인수 시나리오 대두
  • 내년 기업공개(IPO)를 앞둔 태광실업의 자회사 활용법은 관심의 대상이다. 핵심 계열사인 휴켐스를 매각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거나, 해당 자금을 경영권 승계에 활용하는 방안 등 다양한 선택지가 거론된다.

    실제로 휴켐스의 경영권 매각이 진행된다면 유력한 원매자로 부상하는 기업은 단연 한화그룹이다.

    시장에서는 여러 움직임이 거론된다. 화학업계와 복수의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은 휴켐스 경영권 거래와 관련해 한화와 태광간에 협의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거론된 경영권 프리미엄이 상당히 높게 책정된 7000억원 수준이다. 현재 국내 대형 회계법인 2곳이 이번 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측은 이런 움직임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휴켐스 인수와 관련해)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광실업도 “시장에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 끊임없이 인수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양 측 모두 경영권 승계가 우선 과제라는 점이 첫째로 꼽힌다. 여기에 한화그룹과 휴켐스의 사업적 연관성이 상당히 깊은데다 양측 모두 얻을 수 있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이 다른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휴켐스는 한화그룹의 주력인 한화케미칼에 주요 원재료를 독점으로 납품하는 핵심 업체이기도 하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9000억원이다. 오너일가의 지분(43.7%) 가치는 약 4000억원 정도다.

    투자업계 주요 관계자는 “가격 및 조건만 맞고 양측의 의사가 정리된다면 지분 매각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태광실업의 ‘상장’과 휴켐스의 ‘매각’…키워드는 ‘승계’와 ‘지배구조개편’

    한화와 태광이 모두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 휴켐스의 매각 가능성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이유는 태광실업의 지배구조개편 이슈와 맞닿아 있다.

    내년도 초대어 IPO 기업으로 손꼽히는 태광실업 상장은 박연차 회장과 장남인 박주환 기획조정실장의 승계 자금 마련 성격이 강하다. 태광실업의 지분율은 박연차 회장 55.4%, 박주환 실장 39.5%로 오너일가가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다. 태광실업은 나이키를 최대 매출처로 확보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내왔기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들은 태광실업 오너일가의 지분을 일부 받아오거나, 프리IPO 형식의 투자를 상당수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성사된 거래는 없었다. 내년 상장이 추진된다면 신주 발행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 내 박연차 회장의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여전히 박주환 실장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오히려 최규성 휴켐스 부회장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회사 내외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박연차 회장의 건강상태, 이에 따른 거론되는 박 회장의 부재 가능성을 고려할 때 추후 박주환 실장이 박연차 회장이 보여온 경영 성과를 발휘할 수 있을진 미지수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과거에 박연차 회장은 태광실업의 경영권 매각을 진지하게 검토했을 정도로 후계 경영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휴켐스의 매각 가능성 또한 불확실한 후계구도 속에서 자회사 정리를 통한 선택과 집중 전략의 일환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의 부재시 태광실업이 지금과 같은 영업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박연차 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 태광실업의 상장과 휴켐스의 매각 가능성 모두 장남 지분 승계 자금 마련과 후대 경영을 위한 지배구조개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학업계 독점적 지위 가진 휴켐스…한화케미칼과 뗄 수 없는 관계

    남해화학의 정밀사업부였던 휴켐스는 2002년 9월 기업분할을 통해 단독법인으로 설립됐다. 2006년 태광실업은 2000억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에 경영권을 인수했다. 현재 휴켐스는 태광실업의 영업이익을 훌쩍 뛰어넘는 회사로 성장했다.

    또한 휴켐스는 현재 국내 화학업계에서 독점적인 사업 지위를 가진 회사 중 하나다.

  • 휴켐스는 남해화학으로부터 암모니아를 전량 수급받아 TDI(Toluene Di-isocyanate)의 원료가 되는 DNT(Di-Nitro Toluene)를 국내 독점으로 생산한다. TDI는 매트리스와 가죽시트의 원료가 되는데, 국내에선 한화케미칼과 한국바스프(BASF), OCI 등이 생산업체다. 한화케미칼의 TDI 국내 시장 점유율은 올 3분기 기준 약 50%로, 지난 2017년엔 60%를 넘는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화케미칼이 생산하는 주요 원료(LDPE·PVC·가성소다) 중 가장 높은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는 품목이다.

    결국 독점 납품처인 휴켐스는 한화그룹의 주력인 한화케미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현재 TDI의 시황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공급량 증가에 따라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향후 무역분쟁의 불확실성이 해소돼 수급의 불균형이 해소된다면 한화케미칼과 휴켐스의 실적 모두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그룹은 휴켐스를 다른 기업이 인수해 수급이 불안정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와 이를 통한 사업적 시너지 효과 등을 볼 때 휴켐스의 인수는 한화그룹 차원에선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한화에너지가 주목 대상…결국 3남 승계자금 확보가 핵심

    한화그룹도 경영권 승계 작업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김동관 부사장은 지난 2일, 전무 승진 4년 만에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김 부사장은 전략부문장을 맡아 그룹의 중장기 전략 수립과 신성장 동력 발굴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김 부사장이 사업적인 성과를 나타내는 것과 승계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한화그룹 오너일가, 즉 3형제가 김승연 회장의 ㈜한화 지분을 승계하기 위해선 3형제가 지분 전량을 보유한 가족회사 에이치솔루션의 기업가치를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김동관 부사장이 에이치솔루션 지분 50%를, 나머지 두 형제가 각각 25%씩을 보유하고 있다. 에이치솔루션은 한화에너지 지분 100%, 한화시스템 지분 13.4%를 보유한 회사다.

    한화에너지의 보유현금은 연결기준 약 3400억원, 현금화가 가능한 투자 주식은 한화종합화학을 비롯해 1조4400억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사를 제외하고, 그룹 내에서 현금 동원력이 가장 뛰어난 계열사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반면 한화종합화학을 비롯한 다른 ㈜한화의 손자회사들은 자회사를 보유하기 위해선 지분 100% 요건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상장회사의 M&A를 실행하기는 거의 어렵다.

  • 한화에너지가 특정 회사를 인수하면 한화에너지는 물론, 에이치솔루션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한화그룹의 휴켐스 인수 시나리오 가운데, 한화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휴켐스의 인수가 시도된다면 오너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작업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휴켐스의 시가총액을 볼 때 7000억원이 상당히 큰 규모이긴 하지만, 향후 승계를 위해 한화에너지·에이치솔루션의 사업 규모를 키울 것을 가정하면 인수 금액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베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켐스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한화케미칼은 내년 1월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를 합병해 사명(한화솔루션)을 변경한다. 핵심사업인 화학과 태양광·첨단소재를 통합해 경영효율화 및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그룹 내 입지를 굳혀가는 김동관 부사장이 한화케미칼을 어떻게 탈바꿈 할 지에 투자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경영의 최일선에 나선 김 부사장이 그룹 내 입지를 확고히 굳힘과 동시에 승계를 위한 준비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을 지도 큰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