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發 위기를 기회로?…경영권 방어 절박함 드러낸 조원태 회장
입력 20.01.31 07:00|수정 20.01.31 09:23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30일 밤 우한(武漢)행 전세기에 탑승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중국 교민을 후송하기 위한 조치에 동참한다는 차원이다. 총수 일가로선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다.

    조원태 회장의 전세기 탑승은 일종의 이벤트로 보인다.

    조 회장의 선의(?)와 더불어 주주총회를 앞두고 경영권 방어의 절박함이 부각됐다는 평가다. 3월에 열릴 한진칼 주주총회의 핵심은 조원태 회장의 연임 여부다. 조원태 회장-델타항공 연합, 조현아 전 부사장, KCGI 등 주요 주주들이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어느 쪽도 주총에서의 승리를 예단하기 어렵다. 결국 열쇠는 소액주주들이 쥐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조 회장이다. 이번 이벤트는 오너일가에 집중된 부정적인 시각을 다소 상쇄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주총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5% 미만 주식을 보유한 기관·개인 주주들의 표심이 조 회장에게 향한다면 과반 이상의 찬성표 획득이 가능하다.

    일단 전세기 탑승 소식 만으로도 조 회장은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한진그룹 최고경영자라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조 회장은 자발적으로 전세기 탑승에 참여한 노동조합 임원들과 동승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노조는 지난해 말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에 반대한다’는 공식 성명을 내면서 사실상 조원태 회장의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직원들의 지지는 현 체제 유지의 큰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역할과 영향력은 다르지만 지난해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일본과 소재·부품 관련 무역갈등이 격화했던 지난해 중순, 일본에 대항해 ‘기술 내재화’를 위해 기업인 회의도 불참한 채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의 중대한 사안에 오너 경영인이 정부보다 앞장서는 모습이 부각됐고 일각에서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며 이 부회장에 대한 여론이 다소 긍적적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대법원 선고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이번 사태로 국내 항공사들의 실적 전망은 더 불투명해졌다. 일부 중국발 노선은 폐쇄됐고, 당분간 중국 여객 수요는 꾸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단거리 노선에 집중하는 저비용항공사(LCC)는 물론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들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대한항공 매출에서 일본과 중국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내외다. 중국 우한 지역에 취항하는 항공사는 국내에서 대한항공이 유일하다. 올해는 일본 여객 수요가 회복조짐을 보이며 기저효과를 다소 기대했으나 또 한번 악재에 부딪히며 실적 부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대외 변수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실적 감소는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을 지적하는 외부 세력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룹 차원의 위기 상황이란 인식이 조성돼 변화보단 안정에 초점이 맞춰지면 현재 경영진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조 회장의 깜짝 이벤트가 실제로 주주들의 마음을 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한다. 잠잠했던 KCGI는 최근 대한항공 임직원 파견과 관련해 ‘불법’의 소지가 있다며 조 회장에 대립각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여느때보다 수세에 몰린 조 회장이 주총에 앞서 꺼낼 수 있는 기술적 카드는 많지 않다.

    주주들의 표심은 회사를 더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쪽으로 쏠리게 된다. 조 회장이 명확한 경영 전략과 그간 밝혔던 방안들의 실행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전세기 탑승 이벤트는 그야말로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