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리더’는 누구?…GS건설 때아닌 '예송논쟁'  
입력 20.02.04 07:00|수정 20.02.05 09:56
GS건설, 신년사 없이 새해 업무 진행
임병용·허윤홍 승진으로 핵심 인사 '2명'
GS건설 측, '효율성' 이유로 신년사 고사
시장에선 "교통정리 못한 상황" 평가 나와
  • GS건설에 때아닌 신년사 ‘의전 논란’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임병용 GS건설 부회장과 ‘그룹 4세’ 허윤홍 신사업 부문 사장이 대상이다.

    두 경영자는 지난 12월 동시에 한 단계씩 직급이 올라 회사의 양대 주역으로 자리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약 6년 전에 있었던 허명수 전 부회장의 신년행사 이양 사례를 대비시키며 ‘이번 신년사를 누가 발표할지’가 관심사였다.

    하지만 GS건설은 논의 끝에 올해 신년사를 아예 내지 않았다. 회사 측은 ‘효율성’을 이유로 단체 행사를 자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연초 허윤홍 신임 사장의 성과 부각 사례를 지적하며 ‘아직 경영진 간 교통정리를 끝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간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새해에 신년사를 꼬박꼬박 내왔다. 시장에서는 신년사를 기업의 한 해 사업 방향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투자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한 기관투자 운용역은 “미사여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 해 동안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는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련 기업 신년사가 눈에 띌 때마다 사업 관련 내용을 위주로 챙겨보는 편”이라고 전했다.

    GS건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간 종로구 본사 사옥 15층에 직원들이 모여 신년 행사를 해왔다. 과거에는 임병용 부회장이 GS건설의 사장이자 대표이사로서 신년사를 발표하며 직원들을 독려하는 자리를 가져왔다. 임 부회장은 지난 2013년 6월 최고경영자(CEO)에 올랐고, 이때부터 일부 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년사를 주관했다.

    마침 올해 GS건설의 신년사가 시장에서 주목받은 데는 허윤홍 사장의 승진이 영향을 미쳤다.

    허윤홍 GS건설 신사업 부문 사장은 GS그룹 주요 오너 일가 가운데 유일한 '4세 승진자'이자 허창수 전 GS그룹 회장의 장남으로서 작년 연말 사장 자리에 올랐다. 허 사장은 GS건설의 자회사 자이에스앤디 상장을 주도하고, 자산운용사도 출범시키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며 대내외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러다 보니 오너 일가의 등장과 함께 이번에는 허윤홍 사장이 신년사를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나왔다.

    다만 GS건설 내부에서는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평가받아온 임병용 부회장의 주도권이 여전하다는 반박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가 신년사를 내든 간에 올해는 GS건설이 새롭고 명확한 경영 메시지를 대외에 발표해야 할 시점이라는 필요성이 컸다.

    건설업계의 전망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GS건설도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GS건설의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10조 41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7%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7660억원으로 전년 대비 28.1%가 줄었다. 지난 2018년 영업익 ‘1조 클럽’에 올랐던 모습과 대비되는 상황인 셈이다.

    회사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을만한 시기였다.

    그러나 시장의 예상과 달리 GS건설은 누구의 명의로도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GS건설은 이에 대해 “신년을 이유로 인력들이 모두 모여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타 기업들도 신년사는 줄여나가는 추세”라며 “비즈니스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판단되면 전체 직원들이 모여 메시지를 공유할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처럼 GS건설이 신년사를 생략한 경우도 간혹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다만 시장에서는 회사 측의 이런 행보에 실망감을 표명하고 있다. 위기 돌파를 위해서 리더가 어떤 식으로든 대외에 비전을 제시해야 할 시기인데 '의전논란'을 신경 쓰다 보니 이를 간과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동시에 현재 GS건설의 실질적인 리더가 불분명하다는 신호만 줬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다 보니 투자 관계자들 사이에선 “임병용 부회장과 허윤홍 사장이 서로 고사하면서 아무런 메시지가 나오지 않은 것 아니냐"는 예측까지 나왔다.

    심지어 그룹 이사회에서까지 물러난 허창수 전 GS 회장이 여전히 GS건설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 GS건설로 집무실을 옮기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GS건설에는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으나 대처법은 다소 달랐다.

    2013년 6월 당시 임병용 사장이 리더로 나설 무렵에도 GS건설은 실적 악화의 ‘늪’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때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친동생이자 건설 부문의 오너 경영인으로 오랜 기간 회사를 이끌어온 허명수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작년 말 상황과 유사하다.

    몇 달 뒤인 2014년 신년 행사는 허명수 전 부회장이 아닌, 임병용 당시 사장이 주도했다. 당시 행사가 간담회 형태를 띠며 특별한 신년사는 생략됐지만, 시장은 새로운 리더십을 후임자에게 양보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별다른 행동이 없었던 올해와는 대비되는 지점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허윤홍 사장의 신사업 추진실이 부문으로 확대 재편됐고, 설립 당시부터 주요 임원과 인력들이 허 사장에게 넘어가면서 임원들도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커질 것”이라며 “회사 실적이 어려움에 처했는데 사장이 신년사를 하느냐, 부회장이 신년사를 하느냐는 허례허식 같은 말이 나오는 걸 보면 투자자 입장에서 GS건설을 보는 시각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