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버린 '자회사' 현대ENG 존재감…차별성 잃어가는 현대건설
입력 20.02.05 07:00|수정 20.02.04 18:34
현대건설 영업이익 추월하는 현대ENG
원가율·포트폴리오 개선…수익성 '양호'
정비사업·그룹發 매물에서 충돌 가시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합병 가능성도
  • 현대자동차그룹의 두 건설사,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입지가 뒤바뀌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간 ‘주력 건설사’였던 현대건설의 주가와 실적은 주춤하는 반면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은 설계 전문사의 위치에서 벗어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늘리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변화하는 해외수주 방식, 좁아지는 국내 주택 사업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약진이 두 회사의 격차를 줄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금융업계에선 사업 측면에서 차별성이 사라진 양 사의 합병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 건설사로 꼽혀온 현대건설은 실적이 정체되고 있다. 개별 기준 현대건설의 연간 매출액은 최근 3년간 개별 기준으로 10조원 안팎에 머물렀고 영업이익은 3000억원대까지 줄어들었다.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액이 13년만에 최저를 기록하며 4분기 잠정 실적 역시 좋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 기준 현대건설의 지난 4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4조 6524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증권가 컨센서스보다 약 2400억원을 밑돈 1926억원에 그쳤다.

    반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실속 있는 성장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주택 사업을 겸하는 종합건설사의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고, 해외 원가율 측면에서는 현대건설보다 3~4%정도 나은 원가율을 보이고 있다”며 “영업익 규모가 본사 규모를 초과한 경우가 계속 나오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별 기준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15년 매출액 6조원을 돌파한 이후 5조원대에 안착했고, 수익성 측면에서 최근 3년간 4000억원대 영업이익을 이어오며 현대건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 실적은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주가는 4만1450원(22일 종가)을 기록하며 시가총액 약 4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월 연중 최고가(6만7000원) 대비 약 37% 감소했다. 장외 주식거래 시장의 현대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은 약 5조7000억원을 웃돌고 있다. 상장회사의 시가 평가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을 앞서는 형국이다.

    양 사의 성장 차이는 해외사업 수주의 구조적 차이에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설계 전문 회사’를 방점으로 현대건설 기술사업부에서 독립한 회사였다. 때문에 E(설계), P(조달), C(시공)로 요약되는 건설 수주 체계에서 설계 방면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현대건설이 시공, 현대엔지니어링이 설계 쪽을 맡으며 다른 방면에서 이익을 냈다면 최근에는 중동 원가율이 5%도 안 나올 정도로 시장이 악화되면서 두 회사가 단계 구분 없이 모든 사업을 일단 수주하고 보는 분위기다”며 “종합 건설사로 두 회사를 비교한다면, 단순 시공은 수익 내기가 어렵고 현대엔지니어링이 설계 중점 수주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돈이 더 남는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주택 사업도 충돌 요소다. 현대엔지니어링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비상장 건설 계열사였던 현대엠코와 합병하면서다. 빌딩과 주택 등 토목 및 건축 비중이 84%에 달하던, 시공 능력 평가 13위 현대엠코와 전격 합병하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은 매출 5조원, 자산규모 6조원의 대형 종합건설사 외형을 갖추게 됐다. 이는 자연스럽게 현대엔지니어링의 국내 주택 시장 진입로를 열었다. 최근 양 사는 주택 부문 브랜드 ‘힐스테이트’, ‘디에이치’ 등 프리미엄 브랜드의 BI 개편과 신규 론칭을 둘러싼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고, 반포주공 1단지 3주구와 같은 재건축 사업에 동시에 출사표를 던지며 경쟁 구도를 예고했다.

  • 양 사는 상시 협의, 컨소시엄 등을 통해 중복 사업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공사를 예로 들면, 두 회사가 공사비를 7대 3으로 나눠가졌는데 논의 과정이 복잡했던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현대차그룹은 미래 인프라와 관련된 그룹발 물량이 많이 나올텐데 누가 어떤 형태로 맡을지에 대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사업 중복 논란이 가시화하자 시장은 현대차그룹 건설사간 합병 선택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기가 임박했기 때문에 사업 유사성을 차치하더라도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11.72%)을 현금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건설사 업황이 장기 불황 추세로 접어드는 탓에 기업공개(IPO) 후 지분 매각이 사실상 어려운 환경, 커져버린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합병은 지금이 적기라는 말도 나온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투자자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눈치를 보고 있기도 하고, 정의선 부회장이 실권을 잡은 현 시점이 바로 지배구조 개편의 시기”라며 “그룹이 나서 양 사가 독자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든 아니면 합병을 선택하든 적어도 올해 안에는 방향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 경우 비상장사 가치 평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논란 제기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