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추구형 '기업 사냥꾼' 판명난 KCGI, 수익마저 미지수
입력 20.02.06 07:00|수정 20.02.07 09:46
죄악시 하던 조현아 전 부사장, 이제는 동지(同志)
명분 잃은지 오래, 경영권 장악에 사활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강조, 이후 전략은 감감
실속 택한 전략…주가 하락 땐 ‘반대매매’ 우려도
  • 한쪽으로 기울었다 싶었던 한진칼의 지분 경쟁은 다시 원점이 됐다. 조원태 회장은 조현아 전 부사장을 제외한 오너일가와 현재 경영진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또한 조현아 전 부사장, KCGI 등 외부세력과의 대결구도를 만들며 임직원들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조현아 전 부사장, 반도그룹과의 연합으로 경영권 장악을 노린 KCGI는 다소 궁색한 모습이다. 그동안 KCGI가 강조했던 한진칼 지분 매입의 ‘명분’은 이미 사라졌고 ‘행동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나마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해 실속을 차리려는 전략도 지분율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며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KCGI가 한진그룹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만한 전략과 비전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조현아 전 부사장 연합으로 쏠릴 것으로 예상하긴 어렵다.

  • 조원태 회장 연합(조원태+이명희+조현민+델타+기타)의 한진칼 지분율은 32.68%로 조현아 전 부사장 연합(조현아+KCGI+반도그룹) 32.06%에 근소하게 앞섰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약 80%의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한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40%의 우호지분을 확보해야 승산이 있다. 한진칼의 지분 약 3.45%를 보유한 국민연금과 각각 0.1~0.2%가량을 보유한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플로리다 연금(SBA of Florida) 등 해외 연기금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느냐도 주총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조원태 회장의 경영 능력이 검증됐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무역환경의 변화, 대외 변수 등으로 대한항공의 실적은 크게 꺾였고 올해에도 긍정적인 신호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업부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 안정화 전략도 아직 구체적인 방안조차 제시되지 못했다. 다만 객관적인 상황만을 고려했을 때 기관투자가들이 조원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할 사유는 그리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겸직에 해당하지도, 형사 소송이 진행된 이력도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 조원태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선임에 찬성한 바 있다.

    KCGI 측은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을 잡으며 지분율을 늘릴 수 있었지만, 평판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다. 최초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면서 지배구조의 후진성, 오너일가의 전횡 등을 회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았는데, 이제는 그 중심에 섰던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을 잡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과 경영능력 또는 경영 전략 등이 수반됐다면 긍정적인 여론을 이끌어 냈을 수도 있다. KCGI는 한진그룹 호텔사업에 대한 재검토 입장을 고수해 왔는데 이번 조현아 전 부사장과의 연합이 확정되면서 이 전략에 대한 진정성도 의심받는 상황이 됐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까지 대한항공 호텔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은 바 있다.

  • KCGI가 도입하겠다는 전문경영인 체제도 모호하다.

    이미 한진그룹은 석태수 한진칼 부회장·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등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주총이 기존 전문경영인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KCGI 연합은 한진칼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제껏 어떤 인사를 내세워 어떻게 그룹을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KCGI는 지난 4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한진칼 주주들로부터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받기 시작했다.

    항공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소액주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점점 몰리고 있다”며 “KCGI가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을 잡은 것은 지분율을 늘려서 얻을 수 있는 효과보단, 잃을 것이 더 많은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그룹과의 연대에도 맥락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초 반도그룹이 장내에서 지분을 매집하고 주요주주에 이름을 올렸을 당시만 해도 KCGI 측은 반도그룹과 접촉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부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들이 물밑 작업을 통해 권홍사 회장 측과 연락이 닿았고, 최근 조현아 전 부사장과 함께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됐다.

    반도그룹이 연합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며 지분 보유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주장했던 그간의 행보와는 달랐다. 현재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반도그룹은 경영권을 노리고 펀드와 결탁한 전략적투자자(SI)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 애초 큰 틀에서 뜻이 맞는 세 주주의 연합이라기보단, 이합집산을 위한 조직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KCGI가 펀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명확한 엑시트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KCGI가 엑시트를 하는 과정에서 반도그룹은 가장 현실성 있는 원매자 중 하나로 거론될 수 있다. 반도그룹의 자금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이번 주총에서 KCGI 측이 승리한다면 반도그룹은 국내 1위 국적항공사를 보유한 그룹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을 고려했더라면, 지분매입과 KCGI 및 조현아 전 부사장과 연합에 앞서 대주주로서의 책임있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KCGI가 주주총회에서 이사진 선임 등을 통해 경영권을 장악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KCGI가 주총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에 상황은 더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진칼의 주가는 펀더멘털 대비 큰 폭으로 올라 거래되는 상황이다. 투자금융업계에서도 경영권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이 걷히면 주가가 크게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당수의 지분을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사들인 KCGI에 주가 하락은 상당히 뼈아픈 부분이다. 최악의 경우엔 금융권 상환 압박에 반대매매까지 이뤄질 수 있다. 뒤늦게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반도그룹은 자기 자금으로 투자했으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다.

    결국 KCGI가 이번 주총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상당히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는 평가다. 이미 지난해 주총에서 패배한 이후 지분 매각을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몰려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올해 주총에선 ‘명분’을 내던지고 실리를 택하는 최후의 전략을 택했고 그 결과는 다음달 주총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