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 엔드게임 승자는 정말 네이버일까
입력 20.02.12 07:00|수정 20.02.13 10:09
커머스 최종 승자 둔 증권가 각기 다른 전망
네이버 vs 쿠팡 vs 기존 유통 대기업 거론
IT '데이터'·유통업 '소비자 록인'·운송업 '자체물류'
  • "전체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서 가전과 생필품이 포함된 ‘Commodity(일상재) 영역은 네이버가 주도한다. 네이버가 직접 유통업자가 되진 않아도, 나머지 사업자(쿠팡, 대형마트 등)는 의미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일,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대표가 한 컨퍼런스에서 ‘커머스의 End-Game?’이란 주제로 발표한 이 말이 논란이다. 쿠팡, 지마켓 등 온라인 종합몰의 성장세엔 한계가 있고 데이터 역량이 있는 네이버가 사실상 향후 커머스 시장에서 최종 승자가 될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관련업계에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그간 증권업계는 네이버와 쿠팡, 전통적인 물류 대기업 중 누가 커머스 경쟁의 승자가 될지 주시해왔다. 쿠팡·지마켓·11번가 등 커머스 시장을 주도하는 사업자 대부분 상장돼 있지 않아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정보 리포트가 별도로 작성되진 않고 있다. 하지만 유관업종에 상장된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커 간혹 커머스 시장 전망을 다루는 리포트들이 발간돼 왔다.

    흥미로운 점은 인터넷, 유통, 운송 및 물류 담당 연구원들 간에 승자를 예상하는 전망과 그 기준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각 업종이 주목하는 포인트는 ▲인터넷업계는 ‘데이터’ ▲유통업계는 ‘소비자 록인(Lock-in)’ ▲운송 및 물류업계는 ‘자체물류’로 정리된다.

    인터넷 담당 연구원들은 김연희 대표처럼 데이터 역량을 갖춘 네이버에 주목한다. 한 연구원은 “관건은 데이터가 될 것이다. 배달의민족의 자율주행 기업 투자나 카카오의 택시기업 투자 사례처럼 데이터를 갖춘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인프라를 갖춘 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어느 시점에 도달하고 나면 네이버가 시장을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언급한 배민과 카카오의 사례처럼 기존 운송업체들이 이들의 인수 대상이 되면서, 특히 택배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인터넷 기업이 가져갈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다른 연구원은 “네이버나 카카오가 이들의 시장점유율(M/S)을 뺏어오면서 택배 등 운송업체들의 시장 지위가 약해지고 있다”면서 “운송업체의 부가 인터넷 기업으로 이전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유통 담당 연구원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네이버쇼핑의 온라인 거래액이 크게 늘면서 전체 커머스 시장 규모도 커졌는데, 기존 유통 및 물류 시장이 시장 파이를 뺏기는 게 아닌 선순환 구조가 될 거란 분석이다. 다만 데이터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가 나와도 이용자가 좀처럼 갈아타지 않는 ‘소비자 록인(Lock-in)’ 기능이 있어야 트래픽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은 커머스 기업 중 충성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배송 등에 투자를 집중하는 쿠팡이 장기적으로는 승기를 잡을 거란 의견도 제기됐다. “네이버가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이버는 쿠팡처럼 직접 인프라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반쪽짜리 비즈니스’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서 “지금은 쿠팡의 적자 폭이 훨씬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느 시점에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고 본다”는 전망이다.

    운송 및 물류 담당 연구원은 ‘직접물류’까지 가능한 기업이 시장을 재편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통해 재고를 사입하고 자사에서 직접 배송 전(全) 과정을 담당하는 직접물류에 가까운 비즈니스를 갖고 있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창고를 이용하면서 자사 네이버쇼핑의 택배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 아직 완벽한 직접물류 모델을 갖춘 비즈니스가 국내에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커머스 시장의 재편 주체도 이 ‘직접물류’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커머스 기업과 비교해 물류 인프라를 갖춘 CJ대한통운, 한진, 롯데로지스틱스 등 기존 대기업의 택배 자회사들이 ‘직접물류’가 아닌 ‘창고대여식 물류대행’에 그치는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풀필먼트’라는 용어가 국내에선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기존 택배기업들이 다른 커머스 기업이나 인터넷 기업에 창고를 빌려주고 임대수익을 얻는 역할에 그쳐선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기존 유통 대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의견이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각기 다른 평가기준과 전망을 내놓은 업종별 연구원들의 의견이 일치한 공감대이기도 하다. 그룹 차원 택배와 이커머스 사업 등 물류 전반에 뛰어들고 있지만 경쟁력 갖춘 분야 하나 없는 점은  그간 ‘유통공룡’이란 수식어를 무색하게 한다. 김연희 대표의 발언대로 이마트와 롯데쇼핑은 네이버나 쿠팡과 겨루는 ‘1등 쟁탈전’이 아니라 최대한 마지막에 죽겠다는 ‘생존 경쟁’에 임하는 게 유일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