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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면세사업권 중 2곳 입찰이 최초로 유찰됐다. 시장 악재로 면세점 매출이 급감한 반면 공항공사 측이 요구한 임대료 부담이 크다는 것이 기업들이 발을 뺀 주된 근거로 지목된다. 향후 10년간 이어갈 사업인 만큼 보수적 선택을 내린 기업들과, 입찰 흥행은 원하지만 직원 정규직 전환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진 공항공사 간 ‘부담 회피’ 줄다리기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월27일 인천공항 대기업 면세사업권 5곳 사업제안서를 받은 결과 향수·화장품(DF2)과 패션·기타(DF6) 사업권은 유찰됐다고 밝혔다. 이들 사업권은 타 사업권 대비 최저수용금액(임대료 하한선)이 다소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향수·화장품(DF2) 사업권이다. DF6 사업권은 현대백화점면세점 단독 입찰로 경쟁입찰이 성립하지 않아 유찰된 사례지만, DF2엔 입찰한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었다. 현재 신라면세점(호텔신라)이 운영 중인 해당 구역은 연매출 3500억원으로 평당 매출이 가장 높은 곳이지만, 면세점들은 공사 측이 제시한 최저 낙찰가가 예상 매출 대비 부담이 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최저 낙찰가가 매출액 대비 과도하게 높게 책정돼서 입찰에 들어가지 않았다. DF2 구역에 들어간 곳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다른 곳들도 같은 판단을 한 것 같다”라면서 “공항공사가 임대료 부담을 낮추지 않는 이상 재입찰 흥행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입찰 공고에 따르면 DF2와 DF6구역의 연간 최소 임대료는 각각 1161억원과 441억원이다. DF6은 4차년도부터 112억원 이상이 더해진다. 호텔롯데·호텔신라·신세계면세점·현대백화점면세점 4곳 모두 입찰에 참여한 패션·기타(DF7) 구역(406억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다.
면세업계 내에선 DF2 구역은 특히 입찰 과정에서 더 높은 임대료를 경쟁적으로 제시하다 보면 낙찰 받아도 적자가 불가피할 수 있어 기업들이 냉정한 선택을 내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증권사 유통 담당 연구원은 “시내면세점과 공항면세점이 동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향후 10년간 장기간 사업을 운영해야 할 기업 입장에선 과거처럼 무리하게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코로나19 사태 전 시장 기대감을 반영한 임대료를 변동 없이 유지했으니 입찰 흥행에 실패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과거 5년 단위였던 계약 기간이 10년으로 연장되며, 10년간 손실을 사실상 확정 짓고 갈 것인지 혹은 10년간 매출 기회를 놓칠 것인지 기로였지만 기업들이 철저히 수익 관점에서 냉정한 선택을 내린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공항공사 정관상 추가 입찰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공고하는 것이 기준이지만, 유찰이 반복되면 공항공사 측이 임대료에 대한 최초 설정금액을 조정해서 다시 입찰에 나서야 한다. 공항공사 입장에선 매출 규모가 가장 큰 DF2 사업권 흥행을 다시 노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호텔롯데·호텔신라·신세계면세점·현대백화점면세점 4곳 중 향수·화장품 사업권 재입찰시 의지를 보일 유력한 사업자는 현대백화점으로 거론되지만 이 또한 가능성은 크지 않다. 공항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는 후발주자인 만큼 10년 장기사업에 뛰어들기 쉽지 않은데다 지속되는 적자로 입찰 평가(사업능력 60%, 입찰가격 40%)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룹이 보유한 중견 의류업체 한섬과의 시너지를 노리고 패션 사업권으로 마음을 굳혔을 수도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향수·화장품 면세사업에서 특히 적자 부담을 키워오며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에 시장 점유율을 뺏긴 상황에서 재도전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지난 2018년 인천공항에서 자진철수했던 사유로도 임대료 부담이 언급됐던 바 있다. 해당 구역 기존 사업권자인 신라면세점은 이번 입찰에서 기존 구역을 방어할 거란 업계 예상을 뒤집고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업계는 번복 가능성이 크지 않다 보고 있다.
하지만 공항공사 입장에서도 높은 임대료는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인천공항은 2017년 5월 공공기관 최초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해 현재 1만여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여느 때보다 고정비 부담이 커진 상태다. 수익 40% 이상이 면세점 임대료에서 발생하는 만큼 양보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면세점들 사이에선 공항공사가 리스크는 안 지고 이를 기업들에 전가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임대료를 할인해준다거나 트래픽에 연동해서 받는 안이 현실적임에도 높은 고정성 임대료 조건 요구를 유지하면서 리스크를 회피한다”는 논리다. 한국면세점협회는 그간 수차례 임대료 산정방식을 최소보장금에서 매출 기준 영업요율로 바꿔달라 요청해왔다. 금액을 임대료로 내는 ‘최소보장액 방식’이 사업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공항 측은 매번 거절해왔다.
인천공항 개항 이후 첫 유찰인 이번 사례를 두고 면세업계에선 “더 이상 면세 사업이 ‘황금알 낳는 거위’가 아니란 사실을 기업들이 먼저 인정한 사례라 봐야 하고, 그간 반신반의했던 시장도 점차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입찰 흥행은 원하지만 부담은 지기 싫은 공항공사와 사업권 욕심은 나지만 역시 부담은 지기 싫은 기업 간 줄다리기도 시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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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01일 09:00 게재]
인천공항 면세사업권 5곳 중 2곳 유찰
매출 대비 높은 임대료 하한선 지적돼
고정비 부담 둔 면세점-공항공사 간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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