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원유’로 몰려간 개미들…레버리지·인버스 동반 상승 현상도
입력 20.04.08 07:00|수정 20.04.07 19:53
사우디·러시아·트럼프에 출렁이는 원유 시장
초저유가에 베팅…지수 比 괴리율 80% 육박 상품 등장
OPEC+ 이틀 앞두고 레버리지·인버스 동반 상승 기현상도
금감원 “저가매수 기회 보단 리스크에 주목해야”
  • 이번엔 원유다.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며 삼성전자에 몰려갔던 개미투자자들은 사상 최저수준인 국제 유가의 향방에 베팅했다. 원유 가격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파생상품의 유동성공급자(LP)의 공급 물량은 씨가 말랐고, 정부의 공매도 금지 조치는 LP의 가격 조절 기능을 상실케 했다.

    국제 유가의 가격과 연동하는 일부 파생상품의 괴리율은 80%에 육박했고, 일반적으로 반비례 곡선을 그리는 레버리지와 인버스 상품이 동반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했다.

    7일 현재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가격은 배럴당 27달러 전후로 형성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배럴당 60달러 이상에 거래되던 WTI와 브렌트유의 선물가격은 지난달 30일, 각각 20달러, 24달러에 근접하며 18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유값 하락은 중국발 코로나 사태가 덮친 팬데믹의 공포가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 합의의 불발 이후 서로 증산을 결정한 요인이 가장 컸다.

    유례없는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자 셰일가스를 채굴·생산하는 미국 화이팅 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은 지난 1일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셰일가스의 채굴 비용은 원유에 비해 높기 때문에 유가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선 셰일가스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를 지탱해온 셰일가스 업체들의 줄도산이 예상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트위터를 통해 “푸틴 (러시아)대통령과 대화한 MBS(사우디 왕세자)와 통화에서, 그들이 약 1천만 배럴을 감산한 것으로 예상하고 희망한다.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밝힌 직후, 국제 유가는 급반등하기 시작했다.

    아직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최초 지난 6일로 예정됐던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와 10개 산유국 모임) 회의가 9일로 연기됐는데, 사우디와 러시아, 미국의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최종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원유 감산에 동참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될 경우, 저유가 상황이 장기화 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저유가가 일자리를 위협할 경우 관세를 높이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유가 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이미 삼성전자 저가 매수 행렬을 경험했던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발 빠르게 원유로 투자처를 옮기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원유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채권(ETN) 상품 등이 있다. 유가와 연동한 ‘레버리지’, ‘2X 인버스’ 상품 등도 거래되는데, 레버리지는 유가 상승률의 2배를, ‘2X 인버스’는 지수 하락률 대비 2배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다.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유가의 상승장과 하락장에서 수익를 낼 수 있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손실폭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다.

    대표적인 원유 투자상품인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은 지난달 31일부터 현재까지 단 하루(3일)를 제외하고 개인투자자들의 강한 순매수세가 나타나고 있다. 기관투자가와 금융투자업계가 같은 기간 투매에 나선 것과는 정 반대의 움직임이다. ‘2X 인버스’ 상품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레버리지 상품의 지수와 ETN 주가와의 차이를 나타내는 괴리율은 4월들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삼성 레버리지 WTI 선물 ETN’의 괴리율은 7일 현재 75%를 넘어섰다. 이는 곧 현재의 ETN 주가가 현재 유가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ETN상품을 출시한 각 증권사들은 LP로서 지수와 주가의 괴리율을 낮추고, 적정 주가를 유지하기 위해 장중에 주식을 시장에 공급하거나 또는 사들인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괴리율이 0%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LP들이 가격 조정을 위해 추가 상장해 공급한 주식을 개인투자자들이 빠르게 흡수하면서 이미 가격 조절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이 불가능해졌을 때 LP들은 공매도를 통해 적정 주가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정부의 공매도 금지 조치로 인해 적절한 시장가격 조성 또한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 아직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OPEC+ 회의’, 즉 원유 감산 협의를 눈앞에 두고 유가의 상승과 하락에 베팅하는 개인투자자들이 팽팽히 맞서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에선 레버리지와 인버스 상품을 정반비례 곡선을 나타내야 하지만, 7일엔 두 상품이동시에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가 흐름과는 무관하게 ‘상승 또는 하락’에 ‘베팅’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한 매수세에 정부의 공매도 금지 정책이 겹치며 이론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상승베팅' 상품과 '하락베팅' 상품의 '동시 가격 상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 대한 기대감에 괴리율이 벌어지는 현상은 어쩔 수 없지만, 현재와 같이 높아진 상황은 상당히 이례적이다”며 “지수(원유가격)를 추종하는 파생상품이 개인투자자들의 기대치와 전망, 수급에 의해서만 가격이 결정되는 상황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의 과매수 현상에 괴리율이 과도하게 높아지자 한국거래소가 직접 나섰다. 거래소는 7일, '상장지수증권의 정규장 종료 시간에 산출한 괴리율이 5매매거래일 간 연속해 30%를 초과하면, 거래정지 기준 해당하는 다음날 하루동안 매매거래를 정지'하도록 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금융감독원도 개인투자자들의 과도한 주식 매매에 경계의 메시지를 던졌다. 올해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시장에 투자한 규모는 약 25조원으로 매달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시장 변동성을 측정하는 ‘VKOSPI 지수’는 지난 1월 19.3에서 48.6까지 치솟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7일 “금융위기 이후 주가가 급반등했던 사례가 반복될 것이라는 학습효과로 현 상황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생각하는 기존 투자자도 있겠지만, 주식시장에 내재된 리스크에 대한 인식 없이 투자에 참여하는 신규 투자자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투자자, 특히 경험이 많지 않은 신규 투자자들은 현명하고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