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명분 내놓으라는 정부, 카드 몇 장 안남은 대한항공
입력 20.04.14 07:00|수정 20.04.17 09:14
대한항공 정부에 지원 요청…정부는 "자구안 먼저"
부실사업 등 추가자산 매각 카드 꺼내는 대한항공
국책은행은 '대주주 사재출연' 원칙 고수 분위기
  • "정부도 항공업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대기업이 국책은행의 도움을 받으려면 대주주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4월6일)-

    "다른 나라는 정부가 나서 항공사들을 지원한다. 업황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가 지원을 결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4월8일)-

    대한항공과 금융당국이 지원안을 두고 의견차를 보였다. 국내 1위 항공사마저 SOS를 외쳤지만 금융위원회는 대주주의 자구적 노력을 언급하며 대한항공에 다시 바통을 넘겼다. 경영권 분쟁을 치르면서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내보였던 대한항공은 무엇을 더 내놓을 수 있을까. '자구안'의 기준을 두고 갑론을박이 나오는 와중에 지원 주체가 될 국책은행들은 대한항공 지원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분위기다.

    국적 대형항공사(FSC)마저 정부 지원을 요청하자 금융당국은 그간 저비용항공사(LCC) 지원에서 보였던 행보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은 국민이 납득할 자구 노력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고 전제 조건을 단 것이다.

    대한항공 등 항공사들이 인식하는 자구안은 보유자산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정도 수준으로 파악된다. 자산 대부분이 리스 항공기뿐인 LCC 기업들과 비교하면 대한항공은 처분을 검토할 만한 보유 자산은 있다. 우선 지난 2월 이사회를 통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인천 중구 을왕동 왕산레저개발 지분,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부지를 내놓은 상황이다.

    그룹 차원에서 비수익 자회사 혹은 부실 사업 등을 추가적으로 매각하는 안도 검토, 진행 중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물류 자회사인 ㈜한진의 렌터카 사업 매각 막바지 단계에 있다. 롯데그룹 내 렌터카사업을 담당하는 롯데렌탈이 인수를 추진 중이다. 한진그룹은 이외에도 한진칼 내 호텔사업 및 대한항공 기내식사업의 동시 매각을 추가적으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자산 매각 카드를 추가로 꺼내려는 모습이지만 대부분 KCGI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언급됐던 안인 데다 그룹 자산 정리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원 주체가 될 국책은행 내부에선 보유 자산 매각보다도 대주주가 뼈를 깎는 액션을 취하는 수준은 돼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분위기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복수의 관계자들은 항공업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대한항공 지원이 시급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주주가 먼저 사재 출연하는 식으로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은 그간 대기업에 최소한의 지원을, 지원하더라도 자구 노력과 영속성 있는 사업을 가진 곳에 선별적으로 지원을 검토해왔다.

    대한항공이 추가 매각 카드를 꺼내더라도 대주주 차원의 고강도 자구안이 없으면 국책은행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혹시나 불거질 항공업 특혜 논란이 염려스러운 데다 특히 대한항공 지원은 LCC 지원과 비교해 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국책은행이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및 유상증자 지원을 위해 2000억원 규모로 신디케이티드론을 추진 중인데,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에 대한 지원은 오랜 기간 지적돼온 공급과잉 문제 해결을 위해 구조조정 내지는 업계 재편을 지원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대한항공은 지원 효과를 시장에 입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 논란에 대한 부담이 따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대한항공은 당분간은 보유자산 추가 매각 카드를 재차 꺼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재출연 등 오너 일가의 고통 분담이 지원 조건이 될 경우 이를 충족하기엔 쉽지 않을 거란 평가다.

    대한항공의 최대주주는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29.96%)이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이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하며 간신히 경영권을 방어한 상태다. 한진칼의 최대주주인 조원태 회장과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 22.45% 중 4.21%는 종로세무서, 하나은행, 하나금융투자 등과 담보계약이 체결돼 있다.  여기에 거액의 상속세 재원 마련, 추가 분쟁에 대비한 경영권 수성 등 내부 과제가 쌓여있다.

    사재를 출연했지만 파산까지 간 전례가 있는 점도 회자된다. 항공업계는 과거 '한진해운 사태'를 떠올린다. 당시 채권단(산업은행)은 대주주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며 고(故) 조양호 전 회장에게 사재출연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조 전 회장의 사재를 포함해 한진그룹은 1조원가량을 쏟아 부었지만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기업이었던 한진해운은 지난 2017년 끝내 파산 처리됐다.

    송현동 부지 매각 등 일단 꺼내놓은 패도 서울시 등 외부 변수가 있어 매각 성사까지 장담이 어렵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매물로 내놓은 자산들이 있지만 매각 성공까지는 회사의 의지대로 진행될 순 없기에 담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가 말하는 자구노력은 정량적 기준이 아니라 최소한의 성의 차원에서 정성적 기준이 돼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