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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유업계의 실적이 보기 드물게 부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신용평가업계가 잇따라 정유사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신용도를 보이며 조달 시장의 ‘빅 이슈어’ 역할을 했던 정유사들은 유가 급락과 코로나로 인한 수요 감소 속에서 직접적인 등급 하향 압박까지 받는 상황에 처했다.
최근 한국기업평가는 ‘유가 및 정제마진 급락, 코로나19 확산 등에 따른 실적 악화 전망’ 리포트를 통해 정유업계의 등급 전망 조정 내역을 밝혔다. 조정 대상기업은 SK에너지와 에쓰오일로 등급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됐다. 양 사 모두 등급(AA+)은 유지했지만, 한기평은 “향후 중점 모니터링을 통해 업체별 영업실적 및 재무구조 변동 수준을 검토해 신용등급에 반영하겠다”는 주석을 덧붙였다.
NICE신용평가도 ‘최근 영업환경 급변 상황에서 향후 정유업종 기업 신용평가 계획’ 자료를 발표하며 “정유업종의 신용도를 전면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한 달 전 ‘정유업종 신용도 우려 증가’ 리포트를 내며 “전반의 신용도를 리뷰하겠다”고 예고한 한국신용평가까지 포함하면 신용평가 3사 모두 ‘정유사 등급 위기론’을 꺼내든 셈이다.
NICE신평과 한신평의 경우 자료에서 직접적인 전망 조정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3사는 공통적으로 정유 업체들의 ‘실적 저하’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며 위기 상황임을 밝혔다. 코로나로 인한 글로벌 수요 급감과 유가 및 정제마진 급락 현상이 기반임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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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피해 지점은 저유가에서 보다 강하게 불거질 전망이다. 한기평 측은 “1분기뿐만 아니라 연간으로도 대규모 재고자산 평가 손실이 불가피한데, 연말까지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를 지속할 경우 개별 정유사당 4000억원에서 6000억원 규모의 평가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가손실 기준 유가를 배럴당 20~30달러, 예상 유가를 30달러 이상으로 추산하며 다소 보수적으로 내다봤지만 피해액은 신용평가사들이 분석한 내용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15일(현지시각) 기준 두바이유와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18년 만의 최저 수준인 19.68달러와 19.87달러에 거래됐다. 원유 도입선에 따라 회사별 차이는 있겠지만, 저유가 자체는 수요 문제 탓에 상당 기간 30달러를 밑돌아 타격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공통적 시각이다.
정제마진 역시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한 지난달부터 마이너스 마진을 기록하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통상 시장은 배럴당 1달러가 하락하면 정유사별 영업이익이 약 2000억원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11월 이후 월별 정제마진이 1달러 미만으로 추락했던 상황이라 신용평가업계는 배럴당 1달러 하락 시 약 2500억원에서 3000억원의 영업이익 감소까지도 점치는 상황이다.
회사별로는 SK에너지와 에쓰오일의 위험도가 부각되고 있다. 단순히 등급 전망 조정이 있었다는 이유가 아닌, 대규모 투자 부담으로 인한 재무 안정성 약화가 수면 위로 드러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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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차입금 상황이다. SK에너지는 지난 2018년부터 약 1조2000억원 상당의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 투자계획을 밝혔다. 원래는 올해부터 국제해사기구(IM0)의 친환경 선박연료유 규제로 인한 수혜가 있어야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물동량 자체가 줄었다. 4500억원의 잔여 투자금은 부담으로 남았다. 투자 과정간 조정 순차입금(연결 기준)은 지난 2016년 725억원에서 지난해 약 2조8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에쓰오일 역시 등급 변동의 주요 트리거로 활용될 수 있는 조정순차입금이 지난 2016년 말 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원까지 크게 상승했다. 마찬가지로 탈황 설비가 포함된 4조8000억원 규모의 울산 복합화학설비(RUC&ODC)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한 증권사 정유 담당 연구원은 “최근까지도 국내 대형 정유사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조단위 선투자를 단행해왔다. SK에너지의 탈황 설비나 현대오일뱅크의 복합석유화학공장(HPC) 프로젝트, 에쓰오일의 RUC&ODC 모두 같은 맥락“라며 “코로나 사태가 불거질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겠지만, 결과적으론 차입금이 확대돼 ‘약점’이 노출된 상황에서 실적까지 떨어질 상황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금창출력이 약화된 가운데 ‘조달 시장 냉각’으로 회사채 시장까지 공백이 발생하자, 정유사들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단기자금 시장에도 몰려가기 시작했다. SK에너지는 지난달에만 8750억원의 기업어음(CP)을 발행했고, 현대오일뱅크 역시 7800억원의 CP를 발행했다. 거세진 신용등급 압박과 실적을 방어하기에 유효한 전략은 아니란 평가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업종 전반적으로 차입금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정유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AA라는 등급은 여전히 유효하고, 조달 시장에서 지위가 있는 회사들이기 때문에 유동성에 위기가 왔다고 하긴 어렵다”면서도 “코로나 사태의 불확실성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기 때문에 보유 현금과 단기 조달 자금을 활용해서 당분간 재무구조와 실적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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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19일 09: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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