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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책은행 중심으로 이뤄지던 구조조정을 시장·민간 중심으로 이동시키겠다고 선언한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스텝이 꼬였다. 경기 침체 장기화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각 국가들은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현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있고 21대 총선 결과 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하면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쉽지 않다. 결국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의 책임과 성패 부담을 다시 짊어지게 됐다. 기업들과 시장은 산업은행만 쳐다보는 상황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구조조정의 책임을 떠안고 싶어하지 않는다. 선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가 강제 단행한 재벌 간 빅딜(big deal)은 선별적 구조조정(파괴적 구조조정)의 성공인 동시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정부는 원칙적으로 질서있는 구조조정을 원한다. 시장에서 기업들끼리 인수합병을 해 효율성을 높이고 남은 재원을 신성장동력에 투자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길 바란다. 예를 들면 화학산업을 두고 단행된 삼성-한화 간 빅딜이 이상적이다.
경제 축이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에서 'IT·바이오·콘텐츠'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구조조정 주체를 시장과 민간으로 이동시키겠다고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주선한 것도 같은 이유다. 사양산업 또는 정리가 필요한 산업에서 기업간 M&A를 통해 구조조정의 충격을 최소화하길 기대한다.
구조조정 부문의 한 전문가는 “정부가 아닌, 기업과 시장이 구조조정 주체가 되면 발생 비용과 여론 악화 등 부담을 정부가 모두 떠안지 않고 일정 부분을 전가시킬 수 있다”며 “정부는 신성장동력 육성 지원에 집중할 수 있고 자본시장에선 다양한 거래가 발생해 활기가 도는 상황이 마련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 전쟁,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기미가 엿보인다. 변동성 때문에 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업들은 유동성 확충에 매진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의도치 않게 커지면서 보호무역, 큰 정부, 국수주의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바랐던 정부와 여당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우선 지원 대상에 포함된 항공·해운 외에 기계 및 장비 제조업·자동차 제조업·조선·전기업·전기통신업 등의 구조조정 필요성도 이전부터 거론돼왔다. 명예퇴직, 해고 등 인력 구조조정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대기업, 금융권에선 감원 칼바람이 예고된다.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일자리 정부 기치를 내건 정부, 친노동 정책을 펼치려는 여당 입장에선 딜레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잔존가치와 청산가치를 따졌을 때 잔존가치가 커야 정책자금 지원을 공급하는 것이 정석인데 한국GM, 쌍용차처럼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을 다시 지원한다고 하면 현재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버린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자원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노동집약적 산업은 버릴 수도 없고 신성장동력 마중물도 부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지할 곳은 결국 산업은행이다. 구조조정 핸들을 기업과 시장에 내주려던 산업은행이 다시 잡게 됐다. 항공, 해운 2개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동시에 비우량 기업들의 만기도래 회사채, 기업어음(CP)의 재대출 기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상황에 따라 다른 산업군을 지원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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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산업은행의 어깨는 무거운 상태다. 당장 대우조선해양 매각,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중소조선사 구조조정도 맡았다.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 수출입은행은 대선조선 매각을 추진하는데 키는 산업은행이 잡고 있다. 매각 흥행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STX조선해양, 대한조선도 정리를 해야 한다.
네 번째 시도만에 매각 가시권에 접어든 KDB생명은 금융감독원 종합검사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돼 매각 과정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기업가치에 비해 몸집이 너무 큰 대우건설은 마땅한 매수자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중에서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산업은행의 두산그룹 지원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두산중공업에 빌려준 돈이 지난해 말 기준 1조4000억원, 올해 추가 지원 금액을 합치면 약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두산그룹이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지만 언제 어떻게 지원 자금을 상환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런 와중에 계열사들의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정부 자금 의존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지금 소상공인에 집중하고 있어 구조조정과 관련된 큰 그림은 아직 그리지 못한 상황”이라며 “현 정부의 구조조정 모델이 두산그룹이 된다면 시장에 ‘버티면 된다’는 시그널을 주게 되고 결국 그 부담은 산업은행이 짊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취임 3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노사 합의로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 대신 고용유지에 방점을 찍겠다는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진 않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한국 기업들이 경제활동 둔화와 수요충격으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고용유지에 집착한 나머지 기업 및 산업 구조조정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 전체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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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19일 07:00 게재]
구조조정 핸들, 시장·기업에 넘기려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변수
정부는 고용유지 기조
대우조선·아시아나 등 산은 부담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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