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신선식품 전쟁서 존재감 드러냈지만…'한계' 지적도
입력 20.06.19 07:00|수정 20.06.18 17:07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서 선전하는데
정작 SSG닷컴 투자 확대에는 소극적
이마트, 매각·구조조정 등 비상경영
"승계 우선하는 재벌기업의 한계 보여"
  • 이마트의 SSG닷컴이 신선식품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코로나 등장으로 인력을 동원해 유통과 배송을 만든 기업들의 능력과 한계가 드러난 반면, SSG닷컴은 상품 확보, 배송 등 인프라를 앞세워 경쟁사들에 한 발 앞서는 모양새다. 투자자들은 이 기회에  이마트가 SSG닷컴 투자를 더 늘려 확실한 승기를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운다.

    그러나 SSG닷컴에 투자한 이마트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런 분위기에 소극적이다.  SSG닷컴이 이마트의 매출을 잡아먹는, 이른바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 effectㆍ제살깎아먹기 효과) 가능성도 여전하다. 이에 따라 이마트 주주와 SSG닷컴 투자자들의 이해상충도 발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마켓컬리는 지난해 매출이 429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3% 성장했다. 올해는 2배에 가까운 9000억원대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손실도 986억원을 기록했다. 스타트업 대표들이 "일에 삶을 갈아넣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마켓컬리 역시 김슬아 대표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이는 마켓컬리의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충성 고객은 늘고 있지만 시스템 차원의 확장성에선 한계를 보이고 있다.

    쿠팡의 경우 식품 비중이 10% 미만이지만 2018년 이후 식품 카테고리가 전년 대비 40% 이상 신장했다. 규모의 경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풀필먼트나 CA(Controlled Atmosphere)저장고 등에 기반한 물류가 아니어서 중장기적 한계는 있다. 식품 매출 비중 상승으로 물류센터 증설이 필요하지만 추가 자금 유치는 지켜봐야 한다. 물류센터 직원의 코로나 확진에서 드러난 노동자가 직접 처리하는 수공업 구조는 '혁신기업' 물음표를 갖게 한다.

  • 증권가에선 식품 온라인 시장의 최종 승자는 이마트가 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공산품에선 쿠팡에 눌려있지만 신선식품 부문에선 온오프라인 인프라가 역량 차이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마트는 총 3개 물류센터에서 2만~3만개SKU(Stock Keeping Unit; 재고유지최소단위)를 하루 7만건 이상 발송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 PP(Picking & Packing) 센터까지 합하면 12만건을 발송할 수 있다. 식품 비중이 75%고, 신선식품은 35%다. 물류센터의 자동화설비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코로나는 특히나 전화위복이 됐다. 2월 SSG닷컴 매출은 전년 대비 58%, 3월엔 51% 성장했다. 할인점 기존점도 1~2월 누적으로 0.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마트의 신선식품 시장 선전은 월마트와 유사하다. 월마트는 2019년 미국 식료품 리테일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1위 사업자가 됐다. 이 시장에서 아마존을 앞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 오프라인 점포 인프라가 꼽힌다.

    골칫덩어리로 여겨졌던 오프라인 매장이 신선식품 시장에서만큼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신선도가 중요한 신선식품은 오프라인 점포가 없으면 재고 소진이 어렵다. 구매 측면에서도 CA저장고 같은 특수 물류 인프라가 없으면 산지 대량 매입이 불가능해 원가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카테고리 다양성과 매출 규모 측면에서 쿠팡과 마켓컬리가 충분히 올라오지 못하고 이마트가 그들에 비해 원가 경쟁력이 훨씬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증권가에서 한목소리로 SSG닷컴의 성장률이 고공행진을 지속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선식품 시장 승기를 잡은 만큼 SSG닷컴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려 확실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나온다.

    하지만 정작 SSG닷컴은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내부 비용 절감과 투자 재검토에 들어갔다.

    적자 기조가 올해도 이어져 7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 탓이다. 같은 처지인 마켓컬리와 쿠팡이 투자를 지속하거나 늘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결국 수익성에 연연하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기업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모회사인 이마트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마트는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스타필드가 입주할 예정이었던 마곡부지를 매각하고 부진사업 정리, 점포 구조조정에 돌입하며 재무건전성 회복과 유동성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프라퍼티가 경기도 화성에 조성할 예정인 복합 테마파크는 총사업비만 4조6000억원에 달한다. 현재로선 이마트가 SSG닷컴에 추가 투자를 할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SSG닷컴의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이마트의 투자가 절실한 것은 알지만 투자 효과를 단기간 내 기대하기 어렵다. SSG닷컴의 성장이 곧 이마트의 기업가치 개선과 직결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카니발라이제이션으로 이마트 자체 실적은 줄어들 여지가 있고 그 수혜를 신세계, 재무적투자자(FI)들과 나눠야 한다. 이마트 주주들 입장에선 고민일 수 있다.

    SSG닷컴 FI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는 나올 수 있다.

    이마트는 SSG닷컴 출범 당시 홍콩계 PEF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글로벌 투자회사인 블루런벤처스(BRV)로부터 1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 SSG닷컴의 FI 지분은 23% 정도이고 이규철 어피너티 한국대표와 윤관 BRV 공동대표는 SSG닷컴의 기타비상무이사이기도 하다.

    신세계그룹이 제시한 SSG닷컴의 매출 목표는 2023년까지 10조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 때까지 IPO 요건 혹은 총매출액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FI들이 풋백옵션을 요구할 수 있다. 자체 육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SSG닷컴이 M&A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FI들은 SSG닷컴의 투자 축소를 두고 이마트의 육성 의지에 물음표를 가질 수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사업적으로만 보면 미래 주축이 될 SSG닷컴이 이마트를 대체하는 게 맞지만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 입장에선 지분을 직접 들고 있는 이마트나 신세계의 기업가치 개선, 그리고 승계가 우선"이라며 "신사업에 대한 투자 방식과 타이밍을 보면 여전히 재벌그룹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