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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그룹이 대대적인 사업 재편을 알렸다. 전통적인 수익 창출구였던 조선 부문에선 강도 높은 통폐합 작업을 진행하고, 지난달 분사한 로봇 관련 부문에서는 전략적투자자(SI) 유치에 한창이다. 그 과정에서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신사업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투자자들은 정 부사장이 만들어낼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일,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부와 해양사업부를 통합해 조선해양사업부로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통합되는 사업부의 수장에는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을 역임했던 이상균 조선사업대표가 올랐다. 이와 함께 그룹은 전사적인 유사 부서 통폐합을 통해 전체 조직의 20%를 줄이는 구조조정 계획도 진행한다.
재편 이유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장기 불황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대대적인 포트폴리오 전환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신규 수주액은 지난 2014년 72억달러(약 8조6650억원)로 크게 꺾인 뒤 최근 5년간 저유가와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입어왔다. 현대중공업 측은 “대내외적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어 체질 개선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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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사업 부문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그룹이 꺼내든 차세대 키워드는 ‘디지털’이다. 연초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이 신년사에서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향점을 제시한 이래, 지난달 산업용 로봇 전문 회사 현대로보틱스가 지주로부터 독립법인으로 출범하며 그룹 전면에 서기 시작했다. 최근 '스마트 병원 솔루션' 등 여러 사업을 연달아 공개하고 있는데, 앞서 KT를 SI로 유치하는 과정에선 정기선 부사장이 협약식에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그룹 입장에서는 현대로보틱스 성장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그간 현대중공업그룹의 포트폴리오는 조선과 정유 등 전통적 사업군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조선업 침체 속에 사실상 그룹 수익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현대오일뱅크마저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떨어지는 실적과 주가 속에선 새로운 사업 방향의 제시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끌어낼 수 있는 인공지능(AI) 등의 접목은 기술 결합성이 크다고 평가되는 현대로보틱스가 사실상 유일하다.
다만 아직 회사 측이 제시하고 있는 ‘2024년 매출 1조 달성’ 등 비전의 실체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다. 현대로보틱스의 지난해 매출은 2638억원으로, 그룹 전체의 순자산가치(NAV) 비중에서는 2%대에 불과하다. 성장 기반으로 ‘지능형 로봇 사업’을 꺼내들었지만, 자동차 제조 로봇이나 LCD 운반용 로봇 등 기존 영위 사업군의 범위가 단순 제조업에 치중된 점도 발목을 잡는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매출과 사업방식이 퀀텀점프를 하기 위해선 AI에 대한 자체적인 이해도가 필요할 텐데, 아직은 업력 특성상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에 대한 치중이 높고 인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로봇 시장의 성장세는 기대할 만하지만, 회사의 전망처럼 곧바로 수익성으로 연결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정기선 부사장 입장에서도 고민으로 자리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정 부사장은 그룹의 미래 사업 방향 제시와 투자를 집행하는 ‘경영지원실장’의 직함 아래 현대로보틱스의 SI 유치를 주도하고 있다. 그룹 승계를 위해 요구되는 트랙레코드와 포트폴리오의 전환 시기가 맞물린 지금 분할회사의 성장이 누구보다 절실하다. 현대로보틱스가 오는 2022년 상장을 예정하고 있어 시장 평가까지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정기선 부사장이 협약식 등에 직접 나와서 주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기대감’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를 받을 순 있다”며 “조만간 검증의 시기가 올텐데 성과가 안 나오면 고스란히 정 부사장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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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7월 02일 07:00 게재]
해양플랜트 장기 불황에 조직 개편 단행
전통 사업군 축소에 '현대로보틱스' 부각
정기선 부사장, 디지털 전환·투자 전면에
수익 연결은 미지수…"검증의 시기 올 것"
전통 사업군 축소에 '현대로보틱스'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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