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선점 위해서라면…기꺼이 카메라 앞에서는 회장님들
입력 20.07.17 07:00|수정 20.07.20 11:26
전문경영인 대신 직접 나선 4대그룹 회장
‘배터리’로 뭉친 삼성·현대차·SK·LG
“코로나 이후 총수들 위기대응 시험대”
  •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들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 과거에는 세부적인 경영 사안에 대해선 전문경영인들이 앞장 섰다면, 이제는 '회장님'들이 적극적으로 그룹의 전략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투자자들을 끌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단 오너일가가 그룹의 중심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삼성·현대차·SK·LG 등 4대그룹이 선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재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나타낸 총수는 단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를 ‘키워드’ 삼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근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직접 만났다. 총수들의 만남이 늘 그렇듯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발표하지 않았으나 현대차를 중심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시그널을 주기엔 충분했다. 특히 회장이 직접 나서 각 그룹 총수들과 손잡고 협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업 확장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기차·수소차를 필두로 한 현대차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 업계 세계 1위인 테슬라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 전통의 강자였던 도요타의 시가총액을 추월했고, 수소트럭 생산업체 니콜라는 나스닥 상장 직후 주가가 수직 상승하며 미래차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를 확인했다. 전기차 분야에서 글로벌 4위 업체인 현대차는 이미 도요타를 크게 앞질렀고, 수소차 분야는 글로벌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의 로드맵은 정의선 부회장의 집권 이후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다.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했을 때와는 달리 현재는 크고 작은 행사에 직접 연사로 나서며 국내외 투자자 및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올초 정 부회장이 직접 연단에 올랐던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선 글로벌 가전업체들의 제품이 아닌 현대차그룹의 개인용비행물체(S-A1)이 가장 큰 화제이기도 했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직접 총수들을 만나 그룹의 비전과 전략을 발표 할 수 있는 것은 내부적으로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며 “현재로선 국내 대기업들 가운데 나아갈 방향성이 가장 명확하게 제시해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키우는 기업 중 하나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 또한 재계에서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치는 인사로 꼽힌다. 최 회장의 정 부회장과 회동은 SK그룹의 차세대 배터리 사업에 대한 의지를 확인시켰을뿐 아니라,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협력 방안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최근에 주식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SK바이오팜은 2002년 최 회장이 직접 바이오 부문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이후 상장을 통한 첫번째 결실을 맺은 사례다. 2차전지, 바이오 등 차세대 먹거리 분야에서 그룹 총수가 직접 발로 뛰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투자자들에게 미래가 예측 가능한 그룹으로 인식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집권 2년 차 새내기 총수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본격적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LG그룹 사장단 워크숍에서 “향후 몇 년은 생존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다. 사업방식과 체질을 철저히 변화시키겠다”고 밝힌 이후, LG그룹의 사업 재편 속도는 상당히 빨라지고있다.

    구 회장 집권 이후 LG전자는 연료전지 사업과 수처리 사업을, LG유플러스는 전자결제(PG) 사업, LG화학은 LCD편광판 사업을 정리했다. 현재는 LG전자의 태양광 사업, LG하우시스의 전장 사업 매각이 진행 중으로 사업 재편을 위한 실탄 마련에 가장 적극적인 그룹 중 하나다. 아직은 정 부회장과의 회동 외에 총수들과의 공식적인 만남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사업 재편’이란 키워드를 제시하고 계열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총수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앞둔 삼성그룹은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부회장이 사업 현장을 찾는 모습은 자주 포착된다. 5월 중국 시안의 반도체 공장, 6월에는 화성 반도체 연구소 및 수원 생활가전 사업부, 천안 세메스 사업장 등을 찾았다. 최근엔 사내 벤처 지원 프로그램 임직원들을 찾으며 현장 위주의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꾸준히 위기론을 강조한 것과는 반대로 상반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사업적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인 상태로 평가받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이후 총수들의 위기대응 능력이 재조명 받는 시점이다”며 “10년 후에도 그룹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최고경영인이 앞장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룹의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