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 묻어나는 이재용式 현장경영
입력 20.07.28 07:07|수정 20.07.28 07:07
재판 관련 변곡점마다 현장 찾는 이재용 부회장
그룹의 핵심 반도체 사업장에 집중
미래차 사업은 정의선 부회장과 맞손
광주 생산 늘리는 가전사업, 현정부 키워드 ‘사내벤처’도 찾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올해 행보는 한마디로 ‘현장경영’이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와 같은 그룹의 핵심과 더불어 전장사업 등 차세대 먹거리까지 점검하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업점검은 물론 정부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을 보이면서 그룹의 위기감을 나타냄과 동시에 재판을 앞둔 이 부회장의 절박함까지 묻어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들어서만 12곳의 국내외 사업장을 방문했다. ▲1월 화성 반도체 사업장과 브라질 마나우스 법인 ▲3월에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과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 ▲6월에 수원 생활가전 사업부 및 계열사인 세메스(SEMES) 천안 사업장을 방문했다. 7월에 들어선 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찾았다.

    재판 진행중인 이 부회장은 공식적인 대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나머지 4대 그룹 총수들과 비교해 대외 행사의 참석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룹 내 사업적인 부분에 상당히 집중하는 모습을 모이면서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행보란 해석은 가능하다.

    연초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하며 이 부회장이 던진 메시지가 ‘새로운 미래와 과감한 도전’ 등이었다면, 코로나 사태가 심화하면서부터는 ‘초유의 사태 속 위기 극복’으로 수렴하고 있다.

  • 사실 이 부회장의 현장 경영이 주목받은 것은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부총리 및 청와대 관료들이 대기업 총수들과 수출 규제에 관한 대응책을 논의할 당시 국내 재계 1위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은 회의에 불참하면서까지 일본으로 향했다. 수출규제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당사자인만큼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겠단 취지였다. 일본의 강경한 태도에 사태 장기화를 예상했고, 소재 부품의 탈일본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부회장을 향한 여론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때마침(?) 코로나 사태로 국내 증시가 붕괴하자 시가총액 1위 기업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주목도는 더욱 높아졌다. 개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되며 ‘동학개미운동’이란 신조어가 등장했고 중심엔 역시 삼성전자가 있었다. 2년 전 삼성전자의 액면분할은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했다. 이는 이 부회장과 한 배를 탄 투자자들을 크게 늘림과 동시에 총수의 부재를 걱정하는 우군을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외 반도체 공장, 스마트폰 사업장을 자주 찾는 것을 삼성전자의 핵심사업에 대한 집중도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비메모리 사업분야에서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시스템LSI칩 및 파운드리 분야에 향후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하겠단 계획이었다.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 사업장 방문은 또다른 의미다. 2016년 인수한 하만 인수로 시작된 삼성전자의 전장사업은 반도체를 이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그룹은 미래차 분야에서 독자적인 행보에서 벗어나 현대차그룹과의 협력관계를 다지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가장 주목도가 높은 정의선 부회장과 두 차례 회동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의 협업은 과거엔 그리기 힘든 구도였다. 이건희 회장이 집권하던 시절, 삼성그룹이 완성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틀어진 두 그룹 오너들간의 냉전은 이재용·정의선 부회장 등 후대에 들어 점점 사그라드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국내외 투자자들 또는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두 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바가 크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차 간 협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으나 배터리·전장 등 두 회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는 충분히 많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거는 기대감도 상당히 크다”며 “삼성그룹 입장에선 결국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미래차 시장에서 삼성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절실함을 드러내고, 정 부회장의 후광효과를 통해 이 부회장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생활가전을 만드는 광주사업장의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생활가전사업부를 방문해 “경영환경이 우리를 시험한다”고 밝히며 “자칫하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을 나타냈다. 반도체 공장을 비롯한 삼성그룹의 핵심사업은 수도권과 경상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현 정권 내에서 광주사업장 생산 확대가 갖는 의미는 여느때와는 다르다.

    벤처 생태계 육성을 주문하는 정부의 메시지에 이 부회장은 사내 벤처프로그램 C랩을 찾으며 화답했다. 삼성그룹은 실제로 2012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C랩을 통해 스타트업에 도전한 163명의 직원들이 45개 기업을 창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5월 6일 대국민 사과문 발표 이후 정의선 부회장과의 만남 ▲6월 9일 구속영장 기각 후 화성반도체 연구소 방문 ▲생활가전사업부 방문 이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불기소 및 수사중단 권고(6월 26일) ▲검찰 기소를 앞둔 시점에서의 정의선 부회장과의 2차 회동 등 이 부회장 신변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현장경영 행보가 잦아지면서 이 부회장의 절실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