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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손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에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재계 순위는 물론 완성차·차량용 반도체 등 사업적인 분야에서도 경쟁을 펼쳐왔지만 후대에 들어선 이 같은 분위기가 다소 사그라 들었다. 이재용·정의선 부회장,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룬 두 그룹의 총수는 차량용 배터리를 화두로 미래차 시장 선점에 대한 절실함을 공유하면서 두 그룹의 기나긴 냉전의 종식을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와 삼성의 경쟁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1981년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했고 기업들의 중복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했다. 현대차는 승용차만, 기아차는 5톤 미만의 소형 상용차만 만들도록 한 조치다. 현대차가 내수 시장을 탄탄히 다질 수 있는 시기였지만 해당 조치는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인 1989년 7월 해제됐다.
수입 완성차가 전무하던 시절, 현대·기아·대우가 과점을 이루고 있던 시장에 삼성그룹이 뛰어들었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상용차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이후 일본 닛산자동차와의 세피로와 맥시마를 기반으로 1998년 3월 삼성자동차의 첫 완성차인 SM5를 출시했다. SM5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삼성자동차는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고, 2000년 프랑스 르노그룹(Renault)으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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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직후 현대차 경영진들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 제너럴모터스(GM)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현대차 경영진들 사이에선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삼성자동차의 출범으로 시작된 일’이라며 공분을 샀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재계 서열을 두고 다투는 가운데 현대차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 사업에 삼성이 뛰어들면서 시작된 두 그룹의 긴장 관계가 최근까지도 이어져왔다”며 “정몽구 회장의 집권 체제 내에선 삼성과 현대차의 대대적인 협력을 기대하긴 사실상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삼성과 현대차 간 긴장관계가 가장 팽팽했던 시기는 2010년, 독일의 반도체 회사 인피니온(Infineon)이 매물로 등장했을 때다. 인피니온은 비메모리 사업을 매각하기 위해 글로벌 업체들과 접촉했고, 현대차 또한 사업부 인수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검토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인피니온 사업부의 인수 추진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다만 삼성그룹이 현대차의 M&A를 우회적으로 막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현대차가 인피니온 사업 인수 추진 소식을 접하고 청와대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해 간접적으로 인수를 가로막은 사례가 있다”며 “당시 현대차 경영진들이 상당히 격분해 삼성과의 협력 관계를 끊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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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사업을 포기한 삼성그룹은 2015년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 진출을 선언한다. 이듬해 삼성전자가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Harman)을 인수했다. 당시 하만의 인수가액은 국내 기업의 사상 최대 투자금액인 80억달러(약 10조원) 규모였다. 2018년엔 하만과 공동개발한 디지털콕핏을 선보이며 일부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하만 인수로 삼성의 완성차 시장 진출에 대한 전망이 제기된 바 있으나 현재로선 예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현대차가 가진 특유의 ‘삼성 견제 심리’ 때문이었을까? 현대차가 2018년 11월 선보인 최고급 세단인 G90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하만이 아닌 LG전자가 공급사로 선정됐다. G90의 전신 EQ900엔 하만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공급을 맡아왔기 때문에 공급라인 변경에 대한 의구심이 들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수 십 년에 걸쳐 이어진 두 그룹의 미묘한 기류는 최근 들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의선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후부터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해 현대차·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기아차 사내이사에 오르며 핵심계열사를 모두 장악했다. 이미 주요 계열사 및 본사 조직에는 기존 임원진들이 대거 떠났고 정 부회장의 측근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부회장 또한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서며 그룹의 전권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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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에서 올해 첫 인사를 나눈 이재용·정의선 부회장은 최근 두달 사이엔 두 차례 회동했다. 지난 5월 정의선 부회장은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했다. 최근엔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았다. 정계 인사들의 단골 방문처인 남양연구소에 삼성그룹 총수가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방문에는 특히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전영현 삼성SDI 사장,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사장,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하며 총수 간 단순 회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의선 부회장은 올해 들어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을 잇따라 만나며 미래차 협력 방안을 논의했지만,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이 부회장과의 잦은 회동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차량용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분야는 상당히 많다. 현재로선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의 협업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다. 무엇보다 재계 1·2위 업체인 두 그룹의 협업과 이를 통한 미래차 시장에서 양사가 선도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반응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두 그룹의 총수가 자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의선·이재용 부회장이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경영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시그널로 보인다”며 “각자 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당장 손을 잡는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협업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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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7월 27일 07:00 게재]
삼성자동차부터 시작된 삼성-현대차의 긴장감
M&A 가로막은 삼성, 현대차는 ‘삼성 부품제외’ 검토까지
그룹 구심점으로 자리잡은 이재용·정의선 부회장
미래차 시장 선도에 대한 공감대
멀었던 두 그룹, 냉전 종식에 대한 기대감
M&A 가로막은 삼성, 현대차는 ‘삼성 부품제외’ 검토까지
그룹 구심점으로 자리잡은 이재용·정의선 부회장
미래차 시장 선도에 대한 공감대
멀었던 두 그룹, 냉전 종식에 대한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