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부실한데 규모만 키우는 '산업단지' 관제펀드
입력 20.08.05 07:00|수정 20.08.07 09:38
산업단지 담은 관제펀드 관리부실 지적
1백억대였던 예산, 추경 계기로 3천억대까지
5년 내 펀드부실 및 관리 리스크 부각될 듯
  • 관제펀드 관리 리스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산업단지환경개선펀드(이하 산단펀드) 예산은 2018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계기로 현재까지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 분양 외 수익처는 뚜렷하지 않지만 이마저도 성적표가 초라하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규제하면서도 지역 산단엔 펀드 형태로 개발자금을 풀어내고 있다. 이를 모두 소진하기 위한 '무작위 투자'가 부실 사업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발(發) 유동성이 풀리면서 관련업계에선 이미 '눈먼 돈 나눠먹는다'는 인식이 퍼졌다. 최대 5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펀드를 중심으로 사업 성패나 부실화 우려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지난 2015년부터 착공 후 20년이 경과한 노후 산단을 대상으로 산단펀드 사업을 매해 진행하고 있다. 정부 출자금과 민간 자금을 매칭하는 구조다. 자산운용사가 GP(위탁운용사) 형태로 정부 지원금을 받아 펀드를 조성, 주간사업자를 선정한다. 정부 돈인 펀드자금은 사업법인(SPC) 지분에 투자하고, 증권사 등 민간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형태로 출자 후 분양 및 임대로 수익을 내는 식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프로젝트펀드 형태로 운영됐지만, 2015년부터는 블라인드펀드로 전환했다.

    산단펀드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예산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다. 2012년 160억원 규모 'QWL 밸리' 펀드투자사업으로 시작한 산단 정비 및 고도화 사업은 지난해 2900억원까지 늘었다가 증액해 연말 3260억원으로 재차 불어났다. 대규모 예산이 집행됐던 2018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수혜를 본 것이다. 올해 정부 출자금액은 3100억원이다.

    책정 예산 규모가 확대하며 한꺼번에 소진이 어려워지자 매년 재공모를 3~4차례 이어가고 있다. 산업단지공단은 이에 대해 "정부 출자사업이다 보니 연초 계획에 따라 고정된 예산을 소진해야 하지만 예산을 한번에 모두 소진하기 어려워 재공모를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로 선정된 코람코자산운용·하나대체투자·JB자산운용은 주간사업자 3차 선정 평가 및 협상 막바지 단계에 있다. 7월 내로 최종 선정을 마쳐 8월부터 본격 사업계획을 확정해 투자금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2차에 선정된 주간사업자 사업에 올해 전체 예산의 60% 이상이 투입됐고 이번 3차 공모는 남은 예산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사업자 도중 이탈도 재공모 이유 중 하나다. 이에 GP들은 지난 4월부터 2017~2019년 사업에 대한 재공모를 진행 중이다.

    사업자 선정은 됐지만 노후화한 산업단지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긴 쉽지 않다 보니 중간에 발을 빼는 업체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산단펀드는 시화·구미·창원·군산·대불산업단지를 자산으로 담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착공 후 20년이 넘은 노후산단이다. 이들 산단을 고도화하겠다는 게 정책 목표지만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급감하는 데다 부동산 분양시장도 덩달아 침체해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2014년 투자사업자들이 PF 및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분양시장 침체와 사업성 악화로 구미산단 근로자 기숙사형 오피스텔 건립을 최종 포기했던 사례도 있었다.

    업태가 바뀌고 있는데 산단펀드 전략은 매해 큰 변화가 없다 보니 분양실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바이오업체들이 모여있는 오송생명과학산단만 생산량이 오르고 있고 제조업체 위주로 들어서 있는 기존 산업단지들은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력 업태는 바뀌고 있는데 산단펀드 대응은 처음 산업단지 개발사업을 시작했던 2011년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예산정책처도 보고서를 통해 "산업단지 펀드 결성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투자대상을 선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원활한 수요조사 등을 통한 방안 강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익성을 위해 산단펀드 개발사업은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에 편중돼 있어 리스크를 키운다. 산업부는 물류센터·문화컨벤션·방류수 재이용 시설·호텔 등 다양한 사업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부동산 규제강화 시대의 무풍지대로 통한다는 후문이다. 산단펀드가 유입된 지식산업센터 역시 청년주거공간 명목으로 오피스텔·기숙사를 끼워넣는 방식으로 각지에 공급됐거나 분양을 준비 중이다. 불어난 펀드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공급 중심의 정책 편의적인 자산 설정이 이뤄진다는 평이다.

    산단펀드가 지식산업센터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정부 인·허가도 급격히 늘었다. 올 1분기에만 51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산업단지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준공이 예정된 지식산업센터는 2017년과 비교해 공급량은 2배 이상 늘었다. 문제는 공급과잉을 유발해 분양률도 지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1월 기준 산단펀드 개발사업 평균 분양률은 62% 수준이지만 통상 펀드 설정 이후 공급까지 2년여가 소요된다는 점에서 올해를 기점으로 공급과잉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부실 사업자를 무더기로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정부 출자사업에 정통한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예산이 급격히 늘어난 2019년부터 무작위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부실 사업자를 대거 양산하고 있다. 이미 이쪽 업계에선 정부의 눈먼 돈을 나눠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파다한데 아직 산단펀드 문제가 잘 알려지진 않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산단펀드의 관리 리스크가 곧 부각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지역 내 겹치기 출자로 공급중심 분양 마케팅만 이어지고 있다. 지방을 중심으로 공실률 폭등 등 부실화 징후가 보인다"

    "매년 수천억원 예산을 소진해야 하는데 노후산단에 마땅히 투자할 곳은 없으니 결국 자질 부족한 사업자에 세금이 돌아가는 중"

    "전형적인 정책사업의 한계. 산업 고도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나"

    "2015년에 문화창조벤처단지를 만든다면서 문체부 자금이 7배 가까이 늘었던 사례를 연상케 한다. 그때도 지금도 온갖 수식어는 다 붙이면서 세금 놀이를 하고 있다"

    매년 펀드자산의 1% 미만의 수수료를 수취하는 자산운용사들에 매해 규모를 키우는 산단펀드는 꽤 쏠쏠한 사업이다. 하나대체투자와 JB자산운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운용사로 선정됐는데, 일반적인 부동산 개발 블라인드펀드와 달리 정부 출자사업은 비교적 운용 부담이 덜한 면이 있다. 투자회수자금이 발생하면 재투자로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최종 회수 의무가 있지만 아직까지 재투자 사례는 없었다.

    사업 성패나 손실 여부에 대한 책임 판단은 펀드 만기가 돌아오는 10년 뒤다. 만기가 가장 가까운 펀드는 2025년 전에 만기가 돌아오는 2015년 설정 펀드로, 최대 5년 내 산단펀드 부실 및 관리 리스크가 본격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