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매각에서 드러난 산은發 구조조정의 한계
입력 20.08.06 07:00|수정 20.08.07 09:38
  • 시장논리에 의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은 사실상 실패했다. 매각 결정부터 실사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았던 산업은행은 이미 한발짝 물러섰다. 아시아나 매각의 실질적인 매도자는 산업은행이 분명하지만 산은은 끝까지 주체가 되길 거부했다. 그렇다고 ‘산은이 금호와 HDC그룹의 중재자 역할에만 충실했느냐?’ 이에 대한 대답도 선뜻 내놓기 어렵다.

    아시아나 매각 거래종결 문제를 두고 최근 산업은행이 보인 태도는 회유와 압박, 그리고 모르쇠였다.

    원론적으로 아시아나 경영권의 매각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 30%를 팔고 추가 자본을 유치해 최소한의 경영정상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다만 아시아나를 내다파는 과정에서 금호산업의 권한은 철저히 배제됐다. 박삼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금호산업은 아시아나의 주식 가치를 인정해달라 요구할 수도 없을 만큼 수세에 몰렸다. 자금 지원을 무기로 산업은행이 ‘주식병합(주식감자)’의 카드를 꺼내든 이상 금호산업은 그나마 쳐준 구주가격(3000억원)을 받기 위해선 고분고분(?)해야 했다. ▲매각결정-주관사선정-매각공고-입찰-우협선정-본계약-실사 등 모든 M&A 단계는 산업은행이 주도했다. 엄밀히 말해 금호산업이 주연을, 산업은행이 작가와 감독 그리고 연출을 맡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러다가 현산의 '몽니'로 거래종결 약 2주일을 앞두고 재실사를 요구하며 여론전에 나서자 전면에 나선 곳은 산은이 아닌, 금호그룹이었다. 금호는 과거 협상 과정을 공개하며 현산의 인수 의지가 꺾였음을 주장했고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반면 산업은행은 처음에는 한 발 빠진 모습이었다. 이동걸 행장은 당일 “금호산업이 낸 자료는 금호산업의 입장이지 채권단의 입장은 아니다”며 아시아나의 재실사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산은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동걸 행장의 언급대로 이를 금호그룹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치부하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금호산업은 이번 매각에 성공하지 못하면 감자의 기로에 선다. 그나마 받을 수 있었던 3000억원을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산이 신의성실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은 차치하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야 할 판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금호가 낸 메시지는 의외로 강경했다.

    그렇다고 자문사들이 이 같은 자세를 금호에 종용했을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자칫 거래가 무산될 수 있는 상황인데 굳이 강공을 나서는 것은 금호는 물론, 성공보수를 받아야하는 자문단도 부담이다. 국내 증권사 한 고위 관계자는 “금호가 지금(거래가 무산돼 감자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산은 편에 서면 안되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산은으로서는 처음부터 현산에 당장 반박하는 모습을 연출하긴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대립이 강화되면서 딜이 무산될 경우, 산은의 책임론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애초 현산을 강경하게 밀어부치려던 채권단의 입장을 숨기고 정부 재가(裁可)의 시간을 벌어보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매각 당시 제 목소리를 못내고 아무 권한도 없었던 금호산업이 바람막이 역할을 했고, 산업은행은 이를 통해 이틀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즉 현산이 선공에 나서자 산업은행이 짜낸 고육지책에 가까웠다는 의미다.

    그 사이 산업은행이 보낸 메시지의 톤도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4월 16일)만 해도 이동걸 행장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하며 “M&A과정에서 박삼구 전 회장의 영향 행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텐데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들어서는 금호산업의 강경한 태도를 두고서는 이동걸 행장은 ‘채권단과 협의 없이 금호산업이 진행한 일’이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앞뒤가 맞지 않다. 정말 산은이 금호의 독단 행동을 몰랐다면 산은의 출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 능력이 의심스러워질 일이다.

    그리고 이번주 초가 되어서야 이동걸 행장은 ‘재실사 불가’ 결론을 발표했다. 그리곤 미국의 시어스사와 몽고메리워드사의 희비를 언급했다. 미래의 수요를 예측해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린 시어스사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거래 무산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은 현산에 있다. 현산에서 계약금 반환 소송은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뒤늦게 사실상 회유 그리고 무언의 압박에 가까운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런 사례를 지난 1년여간 아시아나 매각과정에서 보였던 모습과 함께 놓고 보면 산업은행의 입장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결국 산업은행은 모호한 입장을 자처한 모양새가 됐다.

    ▲계약 당사자는 아니지만... 계약자의 모든 행위를 관할하고

    ▲매각의 주체는 아니지만... 인수후보에 회유와 무언의 압박을 가하며

    ▲표면상 중재자 역할이지만.. M&A 전 과정을 총괄하며

    ▲매각에 실패하면 실질적 경영권을 갖지만 소유는 하지 않는

    이른바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산업 구조조정', 그리고 여기서 산업은행의 역할은 너무나 한계가 드러난다. ▲시장의 논리에 전적으로 맡기기엔 불안하고 ▲절차와 과정의 공정성을 담보해야하지만 눈치를 봐야하는 상급 단체가 너무 많고 ▲그렇다고 주도적으로 산업 구조조정을 이끌어 나가기엔 권한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일은 단순히 일개 국책은행이 가진 권한과 영향력만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 더 나아가선 청와대, 아시아나 매각 건에선 국토교통부 등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전적으로 산업구조조정에 앞장서야 할 기관들은 부동산 대책 등을 비롯, 다른 현안에 정신이 없다. 그러니 총대를 메고는 있지만 직접 방아쇠를 당길 권한은 없는 산업은행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도 일견 이해할 만 하다.

    그렇다보니 자율경쟁에 의한 시장 주도 M&A도, 산업 재편이란 큰 그림에 입각한 정부 주도의 M&A도 아닌 애매한 거래들이 속속 등장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인수자로 콕찝어 현대중공업이 낙점된 M&A가 그랬고, 아직도 매각 주체가 모호한 아시아나항공의 M&A가 그렇다.

    산업은행의 위상은 현산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이동걸 행장과 정몽규 회장의 회동은 단 두차례에 불과하다.

    지난 6월 이동걸 행장은 미온적인 현산의 태도에 대해 “1960년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서 얘기하면 되지 편지라니요?”라며 답답한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산업은행, 또는 임기가 한 달 남짓 남은 이동걸 행장의 위상을 대변하는 단적인 예다.

    산업은행은 추후 매각이 무산되면 일단 아시아나를 채권단 관리하에 두겠다고 했다. 시장여건이 되면 재매각을 빨리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잠재 매물로 등장한 아시아나를 제외하고도, KDB생명·대우건설·대우조선해양 등 산업은행이 해결해야 할 자회사(?)들은 아직 산적해있다. 이동걸 행장 시대에 해당 회사들은 모두 경영권 매각이 시도됐지만, 정작 완료된 거래는 금호타이어 단 한 건뿐이다.

    이쯤되니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투자은행(IB)들이 산업은행 주도의 M&A 수임을 꺼리는지가 드러난다. 표면상 한국 주요산업 구조조정의 첨병이자 '운전자'지만 실제로는 권한도, 실력도 갖추지 못하고 정부 부처의 막강한 뒷받침도 얻지 못해 고군분투만하다가 일을 그르치고서 결론을 못낸 상황이 계속 반복되어서다.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에 있어 명확한 방향성을 잡고, 실질적인 권한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동걸 행장의 후임, 또는 그 후임의 후임이 오더라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긴 쉽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