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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정부가 대기업의 CVC 보유를 허용했다. 국내 벤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시장에선 실효성을 두고 의문을 표시한다. 대기업 입장에선 개정안 내용이 지주사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설립 효용성에 물음표를 던진다. 벤처업계에선 경험이 부족한 대기업이 CVC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 CVC가 벤처투자 활성화의 최우선 과제일까?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가 허용된 일반지주회사가 벤처투자시장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가 관심이다. 벤처투자 조직 운용 기회는 생겼지만 막상 뛰어들 요인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룹 내 시너지도 고려해야 할 대기업 입장에선 전략적투자자(SI) 역할을 기대해봄직 하지만, 정부 당국은 외부자금 조달을 제한해 기업 자체 자금으로 벤처시장을 키우는 재무적투자자(FI)가 돼주길 바라는 눈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반지주회사의 CVC가 "벤처기업에 경영 인프라 지원, 스케일업·M&A 투자 등을 통해 신산업 개척과 혁신을 통한 성장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SI로서의 역할을 강조해 유인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투자자 역할을 가리는 지점에서 정부 당국과 기업들 간 의견 차가 드러난다.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CVC가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을 계열사로 편입시키기까지 유예기간을 기존 7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 결국 그룹 입장에서 지주 산하 CVC가 투자한 기업을 그룹 내 계열사로 편입시키려 해도 10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마저도 CVC가 지분 30% 이상을 소유하는 최다출자자이거나 기업 경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가능한 조건이다.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더라도 차후 계열사로의 편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이 붙어있다 보니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투자' 업무가 강조되고 있다 보니 사실상 FI 역할을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키우고 있다.
인수합병(M&A)에 비해 벤처투자는 투자부터 회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성공사례보다 실패사례가 훨씬 많다. 아무리 CVC라지만 대기업 특성상 투자자는 물론 사내에서조차 무작정 기다려주기만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행위 제한' 요건에서도 정부 당국이 원하는 지주사 CVC의 역할은 SI보다는 FI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외부자금 출자를 펀드 조성액의 최대 40%로 상한선을 정해놓은 데다 차입 규모도 현재 규제 수준(900~2000%)보다 대폭 축소,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했다. 사실상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 투자금을 마련해 벤처시장을 키워달란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투자형 사업지주사를 주창하는 기업의 경우 주가 변동성이 큰 경향이 있다. 하지만 CVC까지 보유하면 지주사 사업 포트폴리오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지주사 투자자들은 일반 계열사 투자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주사가 보유한 주력 자회사들의 안정적인 실적과 배당 수익 같은 성적표에 기반해 투자 결정을 내린다. CVC란 불확실성이 하나 더 추가되는 점이 달갑지 않다.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지주사가 아니면 자기 자본금만으로 설립이 어려운데 이들 지주사가 부담해야 할 자금과 위험 감수 수준은 낮지 않다.
금융업계는 지주사 투자자들로 하여금 CVC 존재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증권사 지주 담당 연구원은 "SK바이오팜 상장 당시 SK㈜의 주가가 요동쳤던 것처럼 지주사는 갈수록 자회사의 이슈에 따라 주가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주사 입장에서 CVC는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CVC 설립과 투자금 확보를 위한 주주 설득은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결국 SI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제반조건에서 투자를 위한 빗장만 열어줬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 CVC 투자심사역은 "외부 자금과 차입에도 제한이 있고 편입 기한까지 늘면 기업 입장에선 CVC를 지주가 맡을 요인이 없다. 정부는 SI 역할을 강조하지만 기업은 이런 상황에서 SI가 될 수 없다. 사실상 벤처투자 시장을 회사 돈으로 키우라는 FI를 요구하고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어 "벤처기업에 투자하더라도 대기업이 차후에 대규모 수익을 실현하려고 할 땐 여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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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8월 05일 07:00 게재]
계열사 편입기간 7년→10년으로 늘려
SI 역할 강조하지만 전략적 투자 실익 미비
지주 불확실성 키워 투자자 설득 쉽지 않아
SI 역할 강조하지만 전략적 투자 실익 미비
지주 불확실성 키워 투자자 설득 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