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츠·위메프오 부상에 '동정표' 받는 배민 M&A
입력 20.08.28 07:00|수정 20.08.31 09:47
공정위, 경쟁사 쿠팡·위메프에 의견수렴 중
경쟁사 부상으로 독점 우려 해소 기대감
시장독점 노리고 고가에 사간 DH 고민도
  •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 중인 배달의민족(배민) 인수·합병(M&A)이 때아닌 동정표를 받고 있다.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과 수수료 인상 논란으로 '독과점' 낙인이 찍혀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지 못하는 사이 후발주자인 쿠팡과 위메프가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다. 이들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배민 M&A도 독과점 우려를 벗을 수 있지만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란 점에서 경쟁업체의 성장세가 달갑지만은 않다.

    애초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매긴 4조8000억원의 기업가치는 배민 M&A가 성사돼 국내 배달앱 시장을 독점할 것을 기대하고 산정한 금액이다. 이런 점에서 쿠팡 등 경쟁사의 부상은 배민의 '기업가치 거품론'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국내 배달앱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배민과 2·3위 업체인 요기요·배달통 간의 기업결합에 대해 이해관계자들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들 의견을 종합해 '경쟁 제한 효과'를 계산, 양사의 합병을 허용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결합심사에 통과하면 점유율 90%가 넘는 '공룡 기업'이 탄생하지만 이해관계자인 경쟁업체들 사이에선 이전과 달리 긴장감이 엿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배달앱 시장 후발주자인 쿠팡과 위메프가 부상하면서다. 배민이 M&A 심사를 앞둔 상황에서 수수료 인상 논란까지 일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지 못하는 이 시기가 쿠팡과 위메프에 기회가 됐다. 시장조사 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국내 배달앱 월간 순이용자 수(MAU) 순위는 배민(970만명), 요기요(492만명), 쿠팡이츠(55만명), 위메프오(38만명), 배달통(26만명) 순이었다. 기존 3위 사업자였던 배달통이 5위로 밀려났다.

    자문업계 내에선 배민 M&A가 오히려 동정표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배민 M&A는 처음과 비교해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인수 당시만 해도 배민과 요기요에 철옹성 같은 지배력이 있었지만 최근 쿠팡과 위메프가 대규모로 투자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들 업체는 배민과 경쟁관계인 만큼 결합심사에 우호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최근 들어선 찬성 여론도 부상 중"이라고 말했다.

    배민이 매각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적으로 "유력한 경쟁자"라고 지칭했던 'C사' 쿠팡 측 입장이 특히 강경하지만은 않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로펌 공정거래 담당 변호사는 "쿠팡 내에선 배민 M&A로 시장 플레이어가 하나 주는 효과도 있으니 그냥 해주자는 선심성 의견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기존 '배민, 요기요, 배달통, 쿠팡이츠, 위메프오' 5파전이었던 경쟁구도가 합병 시 '배민, 쿠팡이츠, 위메프오' 3차전이 되면서 경쟁사 간접 제거 효과를 노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후발주자들의 성장세는 배민에도 그리 불리한 일만은 아니다. 이들 경쟁업체가 사세를 확장할수록 배민 M&A가 독과점 구조가 아니란 근거가 돼 오히려 결합심사 통과 논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들의 시장 점유율이 경쟁력 있는 수준까진 아니란 평가도 많다.

    한국 배달앱 시장 독점 후 이커머스 시장, 더 나아가 아시아 시장까지 노렸을 DH로서도 경쟁업체의 성장세가 탐탁지 않다. DH가 우아한형제들 기업가치를 국내 인터넷 기업 중 가장 높은 규모로 산정한 배경엔 배민과 M&A에 성공해 시장 독점에 따른 이득을 얻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경쟁사 부상으로 한국 시장 독점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M&A에 실패하는 게 DH에 이득이라는 관전도 눈에 띈다.

    가장 위협이 되는 사업자는 단연 쿠팡이다. DH의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쿠팡이 진출해 경쟁이 치열해지는 배달시장에서 배민과 합병하지 않으면 밀릴 수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배민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라이더들의 수익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배민이 우세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쿠팡이츠에 상대가 안 될 거라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배민 라이더는 배달 건당 3000원씩 수취하는데 주문·픽업·배송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1시간당 평균 만원을 벌어들인다. 쿠팡이츠는 배민처럼 라이더 한 명이 여러 배송을 맡는 게 아니라 단일배송만 맡는데도 건당 최대 2000원의 추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데다 첫 배달 시엔 2만원도 더 나온다. 결국 라이더 입장에서 배민보다는 쿠팡 모델이 노동환경이나 수익 면에서 더 끌리는 플랫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년 대비 배달시장 내 라이더 수익 상당수 증분량을 쿠팡이츠가 기여했다고 본다"

    쿠팡 내부적으로도 올해 대규모 흑자전환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쿠팡이츠 확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적자를 낼 의사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쿠팡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커머스 사업에서 턴어라운드 하면서 돈을 막대하게 벌기 시작했는데 이 돈을 거의 쿠팡이츠 사업으로 쏟아붓는 것으로 안다. 라이더 수급이 배달앱 시장에서 핵심 경쟁력이 되다 보니 이 사업기반을 다지기 위한 작업 중인 건데 내부에서도 향후 배민을 넘어 배달앱 시장에서 최종 승리할 것이란 확신이 있다"라고 전했다.

    공정위 심사 문턱을 넘기기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분위기 속에서 쿠팡의 존재감은 배민의 '기업가치 거품론'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결합심사가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나더라도 향후 몇 년간 가맹점주들에 수수료율을 올리지 않는 등의 조건을 달게 되면 쿠팡이나 위메프에 비해 수익화가 비교적 요원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