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도 대한항공·진에어도 막혔다…㈜한진서 우회로 찾은 조현민 전무
입력 20.09.07 07:00|수정 20.09.08 10:31
대한항공은 올해 승진인사 ‘No’
조현민 전무는 ㈜한진·토파스여행 임원으로 선임
외국인 신분으로 대한항공·진에어 등기이사는 어려워
경영권 분쟁 속 한진칼 경영참여도 사실상 불가
상속세 마련, 경영본격화 발판으로 ㈜한진 낙점
  • 조현민(에밀릴 리 조) 전무가 한진그룹 계열사 ㈜한진과 토파스여행정보 임원으로 선임됐다. 외국인 신분으로 대한항공·진에어 등 항공사 임원 선임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경영권 분쟁이 첨예한 한진칼 경영 참여도 어렵기 때문에 가까스로 꺼내든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조 전무는 한진그룹 4곳의 계열사 임원에 이름을 올리면서 상속세 재원 마련을 본격화했고, 동시에 본격적인 그룹 경영 참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사회 진입, 즉 등기임원 선임과 실질적인 권한을 갖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이달 1일 ㈜한진의 마케팅 총괄 전무로, 같은 날 항공 및 여행정보 제공업체 토파스 여행정보의 부사장(신사업 및 사업전략 담당 임원)으로 각각 선임됐다.

    회사측은 “코로나19 이후 급속하게 비중이 커지고 있는 E-커머스 시장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그동안 한진칼에서 ㈜한진의 함안수박 기프트카드, 원클릭 택배서비스, 친환경 택배박스 공동구매 서비스 등 프로젝트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한진칼의 최대주주인 주주연합 측은 즉각 반발했다. 주주연합은 “회사와 직원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조 전무가 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의문”이라며 “회사의 성장동력인 기내식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대주주 일가의 사적 이익 보장에는 적극적인 한진그룹 경영진의 태도에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조 전무의 경영능력을 차치하고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한진칼도 몸통인 대한항공도, 조 전무의 친정 격인 진에어도 아닌, ㈜한진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한진그룹의 상황 그리고 조 전무 개인의 상황을 비춰보면 ㈜한진으로 행선지를 정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단 평가를 받는다.

    일단 경영권 분쟁으로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약화한 한진칼에선 등기임원에 오르기기 쉽지 않다. 한진칼은 이미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대거 신규 이사를 선임했고, 조원태 회장과 석태수 대표이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등기 임원들의 임기가 2023년까지로 한참 남아있다. 또한 주주연합이 언제든 임시주주총회를 선임해 이사진의 해임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만큼 조 전무가 한진칼의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조 전무는 2007년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입사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임원으로 재직했다. 2012년부터는 2018년까지는 진에어에 마케팅 본부장을 맡으며 그룹의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분야에서 중추 역할을 맡았다. 조 회장과 한배를 타고 경영에 복귀한 이후부턴 두 회사의 직함은 갖지 않았다.

    이는 외국인을 국내 항공사 임원으로 등재할 수 없도록하는 현행법(항공사업법 9~10조) 때문이다. 외국인을 등기이사로 등재 할 경우엔 항공 면허 취득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조 전무는 지난 2010년부터 약 6년 간 진에어의 등기이사로 재직한 것이 밝혀짐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진에어의 항공면허 취소까지 검토한 바 있다. 조 전무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경영참여는 불가능하다.

    결국 계열사 가운데 유의미한 경영참여, 이사회 진입이 가능한 곳은 ㈜한진이 유일하다. ㈜한진의 정관은 ▲이사회는 총 8명 이내로 구성 ▲사외이사는 이사 수의 3명 이상(또는 과반수)가 되도록 명시하고 있다. 현재 ㈜한진의 이사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돼 공석이 없지만, 내년 주주총회에 앞서 1명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된다.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했기 때문에 2012년부터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해당 이사의 교체는 불가피하다. 일단 현행법과 정관상 조 전무가 ㈜한진 등기 이사에 선임되는 데는 결격사유가 없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속에서 조원태 회장과 한배를 타고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인 조현민 전무가 그룹 내 계열사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곳은 ㈜한진이 유일하다”며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극히 적은 ㈜한진의 주주구성을 볼 때 계열분리까지 거론하긴 어렵지만 추후 조 전무가 ㈜한진을 발판으로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조 전무는 정석기업, 한진칼, ㈜한진, 토파스여행정보 등 4곳의 임원을 맡게 됐다. 기관투자가들이 극도로 경계하는, 즉 이사의 선임 과정에서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과도한 겸직’도 불구하고 ㈜한진 임원을 맡은 것은 일련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오너일가가 고(故)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상속받으며 납부해야할 상속세는 약 2700억원이다. 조 전무가 납부해야하는 세금만 약 600억원에 달한다. 조 회장과 조 전무는 상속세 연부연납을 위해 종로세무서에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 조 전무가 세무당국에 담보로 제공한 한진칼 주식은 총 118만6022주로 전체 지분의 약 2%로 현 시가 기준 약 900억원 수준이다. 담보로 제공한 주식을 제외하곤 나머지 주식은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해 차입이 가능하지만, 주식담보대출 이자를 고려한다면 매년 수억원가량의 이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당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한진칼의 사정을 고려하면, 결국 그룹 내 계열사에서 임원 직함이 없는 한 재원마련을 위한 방도를 찾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조 전무가 ㈜한진 등기임원에 선임되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과거의 이력이 발목을 잡고 있는 만큼 기존 주주들의 반발도 무시할 순 없다. ㈜한진은 한진칼이 지분 23.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지만, 정석학원과 오너일가 지분을 모두 합쳐도 지분율은 28%에 불과하다. 지분 6.9%를 보유한 GS홈쇼핑이 우호지분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주총에서 이사 선임 안건을 보장할 수 있는 과반의 지분에는 미치지 못한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과거 사회적 공분을 산 이슈의 주인공 이었다는 점, 겸직 등의 이유로 기관투자가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은 이사 선임에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GS홈쇼핑과 유사한 지분을 보유한 ㈜경방(6.5%)의 의중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변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일단 ㈜한진은 1000억원가량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데, 한진칼을 비롯한 기존 주주들의 참여여부와 규모에 따라 주주구성의 변화도 예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