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화, 아시아나항공 지분 감자 기로…경영권 분쟁 뇌관도 여전
입력 20.09.21 07:00|수정 20.09.22 09:50
지분 11% 보유한 2대주주…감자 가능성 배제 못해
후계구도 완성 위해 아시아나항공 입찰 참여도 고려
채권단 반대로 결국 무산…경영권 분쟁 가능성 여전
  • 아시아나항공 매각 불발의 여파는 대주주에게 전가된다. 이미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의 영향력은 유명무실해졌고 앞으로 각 주주들에 대한 주식병합(감자) 논의가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의 친족 그룹이자 아시아나항공의 2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의 보유 지분 또한 감자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통해 후계 구도를 완성하려는 계획도 세웠으나 결국 처리하지 못한 지분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됐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을 추진할 당시부터 산업은행은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연내 매각이 불발될 경우 금호산업이 보유한 주식(30.7%)에 대해 감자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HDC현대산업개발과의 협상과정에서 금호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지분가치는 3000억원으로 평가 받았으나 이번 거래가 무산됨에 따라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현금화할 수 있는 방도가 사실상 사라졌다.

    일단 산업은행 측은 아시아나항공에 기간산업안정기금 2조4000억원을 지원했다. 내부적으론 기존 투입 자금을 일부 출자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이 유의미한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선 기존 주주들의 감자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그 범위가 확정되진 않았으나 감자 과정에서 대주주인 금호석화의 보유지분(11.02%)이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금호석화의 지분 가치는 약 1000억원 내외다. 금호석화의 연간 영업이익(약 3000억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을 당시엔 금호석화의 지분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금호석화는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을 자금 조달 루트로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견제자로 매해 주주총회에서 캐스팅보트(casting-vote) 역할을 해왔다.

    채권단 측은 금호석화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완벽한 계열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금호산업과의 갈등이 다소 있었다는 점에서 금호석화의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것을 수차례 권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임시 주주총회에서 금호석화는 ‘주주 가치 훼손’을 이유로 발행주식 수 한도 확대 안건에 반대한 바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이 시작되자 금호석화의 보유지분은 애매해졌다. 금호산업과 어떠한 주주간 계약도 없이 단순히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반매도요청권(태그얼롱;tag-along) 등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장내 지분 매각 또는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의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돼 왔으나 결론적으로 지분을 보유하면서 손실을 볼 위기에 놓이게 됐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석화가 보유한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애초에 처분하지 않으면서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식이 되버린 격”이라며 “금호석화가 아시아나항공에 직접적인 경영참여는 하지 않았으나 대주주로서 자주 목소리를 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채권단이 금호석화에 주주로서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 매각 초기에 직접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다만 산업은행은 박삼구 회장을 비롯한 친족 그룹의 참여를 금지하면서 인수전 참여가 이뤄지진 않았다.

    당시 금호석화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를 고려했던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후계구도 때문이다.

  • 금호석화의 최대주주는 박철완 상무로 고(故) 박정구 회장의 아들이다.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조카이기도 하다. 지분율은 10%로 박찬구 회장(6.69%), 박 회장의 장남 박준경 전무(7.17%)에 크게 앞선다. 이 때문에 일부 금융기관들은 금호석화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박철완 상무와 절연하는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철완 상무는 과거 아시아나항공 전략팀에서 부장으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

    동갑내기 사촌간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는 가운데 박준경 전무가 먼저 전무로 승진했다. 2015년엔 박 회장의 딸인 박주형 상무가 경영에 참여했다. 박주형 상무는 꾸준히 지분율을 늘리고 있어 경영권 향방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에겐 최대주주인 조카의 존재가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에 장남 또는 딸에게 지분을 밀어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한다”며 “다만 박철완 상무 또한 그룹 경영에 대한 야망이 상당하기 때문에 언제든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을 기업이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의 위기, 살아있는 경영권 분쟁의 뇌관에도 불구하고 금호석화가 한가지 위안을 삼을만한 점은 현재 코로나 사태가 오히려 사업적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로 의료용 장갑의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금호석화의 NB라텍스 사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국내 각 증권사들은 금호석화를 코로나19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으면서 일제히 금호석화의 목표주가를 상향조정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