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어라운드 기대감 없어도 호텔 늘리는 기업들…승계·상장 포석
입력 20.10.26 07:00|수정 20.10.25 15:06
가는 곳마다 격전지...'부산·제주·서울' 정면대결 예고
신세계조선호텔 호텔롯데 간 확장 이유는 제각각
정용진은 '아들 승계', 신동빈은 '상장 위한 몸집 키우기'
  • 호텔롯데와 신세계조선호텔 등 대표적인 호텔 기업들이 다시 '확장 모드'에 접어들었다. 대부분 제주와 부산 해운대 등 관광·휴양지로 몰리며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호텔 업황이 타격을 입으며 관광시장이 위축된데다 턴어라운드 기대감도 없는 상황이란 점에서 확장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은 최근 새로운 5성급 독자 브랜드 '그랜드 조선'을 부산에 오픈했다. 앞서 지난 6월 해운대에 문을 연 롯데호텔의 '시그니엘 부산'과의 거리는 직선 거리 500m로 상당히 근접해 있다. 당장 롯데와 신세계의 호텔 사업 평가는 부산에서의 성적표가 주효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와 신세계 외에도 기업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제주다. '호캉스(호텔+바캉스)' 유행으로 그간 도심형 비즈니스 호텔이 인기를 끌었지만 여행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관광·휴양지, 특히 제주에 소재한 하이엔드급 호텔 혹은 리조트가 선택받을 거란 분석이다. 이에 각 기업들도 제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는 올해 12월에 그랜드 조선 제주를 통해 제주엔 처음으로 진입한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과거 켄싱턴 호텔 제주를 건립한 경험이 있는 이랜드그룹도 제주 등지에 새롭게 5성급 호텔을 건립하기 위한 계획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호텔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항공기 가격 급등 영향으로 항공권 가격도 크게 오른 상황이라 당장 해외 호텔 수요가 회복될 가능성이 작다. 국내 호텔 기업들엔 기회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랜 기간 체류할 수 있는데다 자연환경이 장점인 지역, 특히 제주 내 하이엔드급 혹은 리조트 형태의 숙박시설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 본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주 지역 호텔들은 최근 들어 객실 점유율이 크게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호텔 공급도 늘어나면서 객단가도 하락해 초기 비용 투자와 고정비를 감당할 수있을 만큼의 수익화까지는 요원하다.

    이런 맥락에서 호텔 기업들의 확장 모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대부분의 호텔 기업들은 호텔이 아닌 카지노 혹은 면세 사업이 주된 수익원이 돼왔지만 최근 경영성적이 크게 악화하며 호텔 부문 재무부담을 경감해주기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수익원이 면세 사업에서 창출되는 호텔롯데 또한 내년까지 면세점 업황 턴어라운드 기대감이 없다보니 주력 호텔 자산 유동화 등 재무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도심형 비즈니스 호텔 위주로 확장을 앞둔 신세계그룹이란 평가도 나왔다.

    다른 관계자는 "신세계조선호텔은 대표적으로 도심형 비즈니스 호텔을 내건 곳이라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본다. 비즈니스 호텔의 주된 수입원인 외국인 비즈니스 수요가 꺾인 상황이고 신규 호텔 오픈을 대거 앞두고 객단가도 하락한 상황이다.  투자금 회수 기간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신세계그룹이 호텔 확장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관측이다. 신세계조선호텔은 호텔기업들 중 유일하게 '호텔로만 승부하는 기업'이란 평가를 듣는다. 호텔 부문 영업적자 규모가 큼에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호텔업에 대한 의지가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확장 배경이 주목 받았다.

    3세 경영을 위한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아들 정해찬 씨는 코넬대 호텔경영학을 졸업해 지난 2018년 조선호텔에서 인턴 과정을 밟았다. 향후 정 부회장으로부터 호텔 사업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마트는 지난해 첫 분기적자를 기록하며 현금 곳간도 비어있었지만 당시 신세계조선호텔에 1000억원 규모 운영자금을 긴급 지원하기도 했다.

    호텔롯데의 확장세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이 있다. 롯데그룹은 일본롯데와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호텔롯데 상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호텔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는 식으로 기업가치를 키우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5년간 인수합병을 통해 현재 약 1만5000개인 전 세계 객실을 2배 수준인 3만개로 늘릴 것"이라고 공식화한 바 있다. 시그니엘 부산 개관에 이어 지난달에는 미국 시애틀에 미국 내 3호 호텔이자 12번째 해외 호텔인 '롯데호텔 시애틀'도 열었다. 영국과 일본 등으로의 진출도 검토 중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호텔 기업들이 당장 대규모 투자금은 투입하는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은 예상조차 어려워 보인다. 턴어라운드 기대감이 크지 않음에도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이 확장에 속도를 내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라며 "3세 경영 승계와 기업 상장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등 그룹 차원의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 향후 수년간의 재무부담은 감수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