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선제조달에 뜨거운 회사채 연말 장세…KB증권 주관 1위
입력 20.12.15 07:00|수정 20.12.16 08:24
[2020년 집계][회사채 주선 순위]
계열사 19곳 발행 나선 SK그룹 '최대'
비우량 기업들은 정책자금에 의존
KB證,15조원 주관 1위…3위에 SK證
산업은행, 전체인수 7위로 순위권 진입
  • 올해 회사채 시장은 연말까지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단기 자금 경색을 겪은 기업들이 12월 초까지 수요예측에 나서며 선제 자금 조달에 나서는 중이다. 우량등급의 '빅이슈어(big issuer)'들은 안정적인 발행을 이어갔지만 비우량 등급 혹은 코로나 여파가 큰 기업들은 정책자금에 높은 의존도를 보였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와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등 정책 지원이 회사채 시장의 구원투수가 돼 회복세를 도운 한 해였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많은 기업들이 신용경색 위기에 몰렸고 채권시장도 변동성을 키웠다. 그럼에도 올해 채권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호황이었다. 올해 증권사의 주선 회사채 발행 물량(12월 11일 증권신고서 기준)은 총 68조원대로, 재작년(52조원)과 지난해(66조원)보다 늘었다. 지난 3~4월 한 차례 자금 경색을 경험한 기업들이 자금조달 필요성을 느끼며 활발하게 회사채 시장을 노크한 것으로 보인다.

    발행량 증가에 국내 증권사들의 주관 경쟁도 치열했다. KB증권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채권발행시장(DCM) 선두를 지켜냈다. 지난해 2위였던 일반회사채·ABS(자산유동화증권) 발행에서도 올해는 모두 NH투자증권을 제치고 1위를 수성했다. 넷마블 등 공모채 데뷔작들의 발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평가다. SK증권의 약진도 눈에 띈다. SK증권은 올해 SK하이닉스, SK에너지, SK종합화학 등 다수의 SK그룹 계열사 딜을 잇따라 지난해 주관부문 5위에서 올해 3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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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채 시장이 강세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대기업들은 막판까지 '곳간 쌓기'를 이어갔다. 기관들이 북(book)을 닫기 직전인 12월 초까지 수요예측이 이어졌다. 12월 SK㈜, 한국투자금융지주, 두산인프라코어, CJ CGV가 회사채를 발행한다. 코로나 확산으로 연초 시장이 냉각기를 거치면서 가격메리트가 발생했지만, 이후 기업의 실적 및 펀더멘털이 우려만큼 훼손되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발행 수요가 늘고 투자심리도 회복한 배경이 크다는 분석이다.

    '빅이슈어' 행렬도 계속됐다.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1조원 이상 발행한 기업집단은 14곳으로, 대체로 신용등급이 우량한 기업들의 발행이 주를 이었다. 개별기업(금융사 제외)으론 SK㈜, 에쓰오일, SK하이닉스, 현대제철이 1조원 이상씩 발행했다. 현대오일뱅크, 현대건설, SK텔레콤, 호텔롯데 등도 7000억~8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기업집단으로는 SK그룹이 7조원으로 가장 많은 자금을 조달했다.  SK㈜는 올해 네 차례에 걸쳐 총 1조2000억원을 조달했다. 1조600억원이라는 단일 거래 최대 규모 회사채를 발행한 SK하이닉스는 조달 자금 전액을 차입금 상환에 투입했다. 이외에도 SK텔레콤, SK에너지, SK가스, SK이노베이션 등 올해 총 19곳의 SK그룹 계열사가 공모채를 발행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인수합병(인텔 낸드부문),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 투자까지 자금 조달 수요가 계속되는 만큼 내년에도 빅이슈어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초부터 발행 확대가 예상되던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공모 회사채를 찍었다. 기존 회사채 차환과 더불어 현금 확보 등 유동성 관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4조2500억원(금융사 제외) 규모 공모채를 발행했다. 2015년 3조4000억원 발행 이후 3조원 이상 발행은 처음이다. 지난해 말 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려왔고 코로나로 글로벌 시장이 영향받았지만 탄탄한 내수시장과 재무 방어력을 바탕으로 무리 없이 발행을 이어갔다. 내년에도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규모가 2조4000억원에 달해 발행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연말까지도 '훈풍'이 이어지는 회사채 시장이지만 일부 등급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기업들을 향한 투심은 여전히 냉랭한 면이 있다.

    12월3일 15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선 두산인프라코어(BBB)는 4.8%대의 고금리 제시에도 대규모 미매각을 기록했다. 대주주 변경, DICC 소송 관련 우발채무 등을 향한 우려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CJ CGV(A-)는 12월 초 '한산한' 발행 시장에서 2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대규모 미매각을 기록했다. 희망금리밴드 최상단인 3.8%에서 1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최근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것과 더불어 여전히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유지되면서 투자자들이 추후 채권 가격 하락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단기적으로 실적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고금리 메리트에도 수요 확보에 실패했다.

    비우량 등급 기업들의 발행은 산업은행이 정책자금을 투입해 도왔다. 산은은 올해 ㈜두산, 두산인프라코어, ㈜한진 등 BBB급 채권들의 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미매각 물량을 포함해 총 3조4500억원의 물량을 인수했다. CJ CGV의 미매각 물량 일부도 인수할 예정이다. DCM 시장 순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업은행은 전체 주관(9위), 전체 인수(7위), 일반회사채 인수(8위) 모두 순위권에 신규 진입했다. 채안펀드와 회사채신속인수제도, SPV 설립 등을 통해 기업자금 조달의 마중물 역할과 함께 회사채 시장 안정화를 도왔다는 분석이다.

    정책당국의 의지에 힘입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지만 내년까지 흐름을 이어갈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훈훈한 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다행스럽다"면서도 "예년에 비해 시간을 1~2개월 앞당기고 있다고 치면 내년 연초효과가 시작도 못하고 동력을 상실할 수 있는 점은 고민이 될 수 있다"는 설명했다. 크레딧업계는 SPV의 기한 연장 여부를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현재로선 내년 1월부터 회사채 발행이 크게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 많지만 비우량등급 투심이 여전히 저조하다. SPV는 내년 1월13일 기한이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