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지원서 배제됐던 쌍용차…유력 기술 이미 챙긴 마힌드라
입력 20.12.22 10:14|수정 20.12.24 07:18
차입금 상환 압박 속 11년만에 다시 회생신청
마힌드라 투자 철회 후 협력사 지원도 미온적
산은 구조조정 원칙 준수…정부 뒤늦은 지원안
마음 떠난 마힌드라…핵심 기술은 이미 확보
  • 쌍용자동차가 11년 만에 다시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벼랑끝에 섰다. 산업 구조조정 중책을 맡은 산업은행은 쌍용차와 협력사 지원을 고심했으나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쌍용차의 주주가 아닌 데다 구조조정의 대원칙과도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쌍용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도 일찌감치 손을 뗐다. 한때 대규모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코로나가 겹치며 없던 일이 됐다. 쌍용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유력 기술도 이미 확보한 터라 지금 손을 놔도 아쉬울 것이 없을 것이란 평가다.

    쌍용차는 지난 21일 이사회를 거쳐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날 만기가 도래한 산업은행 대출금 900억원과 JP모건 등 외국계 금융사 3사의 대출금 6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쌍용차는 지난 2009년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가 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11년 만에 다시 법원 문을 두드리게 됐다.

    쌍용차는 2016년을 빼면 지난 10여년간 적자가 계속됐다. 신차를 개발할 기술력과 자금력이 부족했고, 실적 부진 속에 자본잠식 규모가 커졌다. 매년 3~4조원 사이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인데 몇 백억원의 차입금 상환도 쉽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올해 1월 고엔카 마힌드라 이사회 의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마힌드라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침체에도 대주주로서 책임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쌍용차가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동참과 협조 하에 조속히 정상화되기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마힌드라는 쌍용차에 최대 5000억원 규모 신규 투자를 계획했었으나 지난 4월 신규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며 쌍용차는 커녕 자사의 살림을 챙기는 것이 비상이었기 때문이다. 4월 4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후 사실상을 손을 뗐다. 미국 HAAH사로부터 투자 유치 협상을 벌였으나 속도가 나지 않았다. 외국계 금융사로부터 빌린 자금에 대해선 마힌드라가 지분 51%를 초과해 유지하도록 하는 요건이 붙어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산업은행 역시 쌍용차에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기업금융부문에서 지원안을 검토하긴 했지만 쌍용차보다는 협력사에 초점을 맞췄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6월에야 자동차 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협력사 자금 위기 해소를 위한 긴급 특별보증을 시행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기업은행과 자동차 부품사를 위한 ‘우대금리 대출 프로그램’ 마련에 합의한 정도다. 자동차 산업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대상도 아니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스스로 지분을 가지지 않고, 지분 75%를 가진 대주주가 따로 있는 기업에 주도적으로 지원하기 쉽지 않았던 면이 있다. 산업은행은 대주주의 책임, 이해관계자 고통분담, 지속가능한 정상화 방안 등 구조조정 대원칙을 지켰다. 쌍용차는 구조조정본부에서 맡게 됐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쌍용차가 회생을 신청한 가장 큰 이유는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회수를 완강히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산업은행 입장에선 자기 자금이 외국계 대출금 상환에 쓰이는 것을 용인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올해 초부터 협력사 대금 지급에 차질을 빚어왔다. 쌍용차와 협력사가 상당 부분 겹치는 한국GM에 연쇄적으로 파장이 미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부는 쌍용차가 회생을 신청한 21일 산업은행 등의 정책금융 프로그램 활용 및 대출 만기연장 등을 통해 협력업체에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마힌드라는 2013년 쌍용차 지분 70% 인수에 4억6400만달러를 들였고, 이후 1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지분율을 75%까지 늘렸다. HAAH가 투자하겠다는 자금은 지금까지 들인 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 마힌드라 입장에선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마힌드라로선 쌍용차에 더 미련을 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안고 있으면 얼마나 많은 자금이 계속 들어갈 지 점치기 어렵다. 지금 손을 떼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길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유력 기술도 이미 확보한 상황이다. 소형차 중심의 인도 시장에서 SUV는 고급 차량으로 평가받는다. 쌍용차는 티볼리, 렉스턴 등 SUV에 강점이 있는데 마힌드라는 이 핵심 기술 등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임 문제가 있으니 그에 해당하는 값은 쳐줬지만 굳이 쌍용차를 안고 갈 매력은 줄어든 셈이다. 과거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도 타타그룹이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후 SUV 기술을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다.

    쌍용차는 21일 회생절차개시 여부 보류(ARS프로그램) 신청서도 함께 접수했다.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최대 3개월까지 연기하되, 그 안에 이해관계자간 합의를 이룰 경우 회생절차를 취하할 수 있는 제도다. 쌍용차는 당분간 대출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고 이해관계자와 협의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마힌드라는 ARS 기간 중 대주주로서 책임감을 갖고 협상 조기타결을 통해 쌍용차 경영정상화에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