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M&A 성과 내야 하는 삼성전자
입력 21.01.21 07:00|수정 21.01.22 08:55
2016년 하만 인수 후 대형 거래 실종
이재용 부회장 형사 문제로 활동 제약
국내외 대기업들은 저마다 M&A 박차
회사도 M&A 팀도 올해는 트로피 필요
  • 삼성전자는 하만(Harman) 인수 후 대형 M&A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사이 글로벌 기업들은 합종연횡으로 덩치를 키웠고, 국내 대기업들도 해외로 치고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로선 총수의 거취가 불투명해 큰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지만 언제까지 관망만 할 상황은 아니다. 그간 아쉬웠던 점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M&A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14년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에도 M&A 시장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다. 2014년말과 2015년말 각각 한화, 롯데그룹과 빅딜을 단행했다. 2016년이 가장 분주했는데 삼성그룹 역사상 가장 큰 거래인 하만 인수 계약을 맺었다. 데이코, 조이언트, 애드기어, 비브랩스, 타키온 등 북미 지역 유력 기업과 스타트업 투자가 잇따랐다.

    2017년부터 M&A 보폭이 좁아졌다. 비주력 사업 정리 거래는 꾸준했으나 투자 규모는 크게 줄었다. 플런티(2017년), 지랩스(2018년), 푸디언트(2019년), 텔레월드솔루션(2020년) 등 소기업이나 스타트업 인수에 주력했다. 국내에선 2017년 반도체 협력사인 솔브레인과 동진쎄미켐에 수백억원씩을 투자했을 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2016년말부터 국정농단 및 승계 관련 수사를 받기 시작한 영향이 컸다. 소형 거래는 각 부문의 기획 부서에서 진행하기도 하지만 중요 거래는 본사 차원의 승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정부 눈치에 국내 체제 정비에 급급했다. 매년 막대한 투자와 고용 창출, 지배구조 투명화, 배당 강화 등 정책을 발표했다. 현금 100조원을 쌓아두고도 대형 M&A에 나서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주춤하는 동안 해외 M&A 시장은 대호황기를 맞았다. 특히 작년엔 코로나 여파로 산업 내 대형화, 집중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엔비디아는 400억달러를 들여 소프트뱅크로부터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을 사들였고, AMD는 350억달러에 통신 및 네트워크 반도체 1위 기업 자일링스를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 기술과 시스템 반도체 역량 확보가 과제로 꼽혀왔다. 수십조원이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글로벌 M&A가 갈수록 대형화하고 유동성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싸게 살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른 국내 그룹의 보폭도 넒어졌다. SK하이닉스를 앞세워 10조원대 인텔 낸드 플래시 인수 거래를 성사시켰고, 현대차도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거나 손을 잡고 있다. 보수적이던 LG그룹도 1조원대 합작사 설립 계획을 밝히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사정이 이러니 삼성전자도 올해는 자리만 보전하고 있기 어려워졌다. 휴대폰, 반도체 등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이익도 잘 내고 있지만 경쟁사들의 견제가 심한 터라 언제 상황이 달라질 지 예측할 수 없다.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몇 달 사이 많이 올랐으나 다른 기업들이 적극적인 해외 M&A와 비전 제시로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과는 양상이 달랐다.

    그간의 상황이 어쨌든 올해가 ‘이재용 체제 원년’인 만큼 대형 M&A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제자리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외국계 IB들은 삼성전자가 여전히 잠잠하다면서도 틈틈이 자문할 거리가 나오지 않을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M&A 조직도 올해는 성과가 필요하다. 조단위 거래나 중요도가 높은 거래는 사업지원T/F에서 담당하는데 여러 해 개점 휴업 상태였다. 언제든 거래에 나설 수 있도록 시장 조사는 계속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마땅한 일이 없고, 몇 해전 미래전략실도 해체를 한 상황이라 최소 인력으로 살림을 꾸려왔다.

    내부적으론 올해까지 성과가 없으면 조직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지원T/F M&A는 안중현 부사장이 여전히 핵심이다. M&A 공로가 많아 진작 계열사 사장으로 갔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여형민 상무와 구자천 상무가 안 부사장 뒤를 받친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사업지원T/F는 여러 해 성과가 없었던 데다 다른 대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조급할 수밖에 없다”며 “올해는 삼성전자가 M&A에 적극 나서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대형 M&A에 나선다면 그 대상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전장 등이 될 전망이다. 중요 사업부의 인력 구성도 정비했다. 회사는 작년 AI 분야의 세계적 석학 세바스찬 승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으로 영입했다. 사업지원T/F의 이승욱 부사장은 올해부터 전장사업팀을 이끌게 됐다. 올해 사업지원T/F로 자리를 옮긴 구자천 상무는 작년 System LSI 기획팀장으로 시스템반도체 기술개발 등 업무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