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관료 출신 임원 모시기에 한창인 삼성그룹
입력 21.03.02 07:00|수정 21.03.03 09:53
외풍(外風) 막아줄 관료 출신 이사진 여전
삼성물산, 최중경 前지경부 장관 사외이사에
삼성證은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모시기
  • 여느 대기업에 비해 전관(前官)에 대한 예우가 확실한 삼성그룹은 올해도 어김없이 관료 출신 인사들 모시기에 한창이다. 구속수감된 이재용 부회장에겐 경영권 불법승계 재판이란 사법리스크가 여전히 남아있다.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금융계열사 및 삼성전자 지분정리 등과 같은 민감한 문제들도 산적해 있기 때문에 사업에만 집중한 외부인사 영입이 어려운 환경이란 지적도 나온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은 올해 주주총회 일정을 확정하면서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사외이사 영입 계획을 밝혔다. 최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제 1차관, 필리핀 대사, 경제수석비서관과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최근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직을 수행했다.

    최중경 후보자가 사외이사에 선임되면 삼성물산의 상징과도 같던 최치훈 전 이사회 의장의 자리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경영권 승계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삼성물산이 이사회 의장에 외부 회계 전문가를 선임할 경우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부 영입인사가 삼성물산 이사회를 장악해 경영 활동에 깊숙이 관여한 전례가 별로 없다는 점, 최 후보자가 과거 분식회계·탈세 사건이 발생한 효성의 사외이사에 3연임한 점 등을 비쳐볼 때 삼성물산 경영 투명성 강화에 실질적인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삼성그룹의 가장 큰 축인 삼성전자는 올해 새로운 사외이사를 영입하지 않는다. 현재 6인의 사외이사 체제를 유지하는 대신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박병국, 김종훈, 김선욱 사외이사를 재신임 안건으로 올렸다. 현재 삼성전자 내 관료 출신 인사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선욱 전 법제처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김선욱 전 법제처장이 올해 재신임 대상이다.

    사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박재완 사외이사의 선임과정에서 상당히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박 사외이사는 지난해까지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는데, 당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성균관대학교가 삼성그룹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특수관계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사외이사의 ‘독립성’ 여부가 도마위에 올라 외국계 주요 연기금들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 박근혜 정부의 두번째 금융위원장을 맡았던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삼성증권에 자리를 마련했다. 현재 삼성증권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인 이영섭 사외이사의 추천으로 사외이사 후보에 오르게 됐다. 현행법(공직자윤리법 제 17조)은 4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공직과 관련한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기업에 퇴직한 이후 3년 동안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 후보자의 이같은 취업제한은 지난해 7월 종료됐다.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의 지분 정리 문제는 향후 수년간 화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화재 등과 비교해 삼성증권은 상대적으로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적었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금융위원장 등을 거치며 국내 금융권의 대표적 인사인 임 위원장이 삼성증권에서 맡게 될 역할에 관심이 모인다.

    회사측은 “임종룡 후보자는 사외이사 후보군 내 관리되던 인물이다”며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회사운영의 견제 및 감시 감독을 충실한 수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명망있는 관료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고 그들에게 기업과 정부 사이의 윤활류 역할을 맡기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선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의 주력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기 때문에 대관(代官)보다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인사 영입이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도 있다.

    라이벌 대기업인 현대차는 사외이사에 첫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했다. 현대차는 항공우주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이지윤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부 부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도심항공우주모빌리티(UAM) 사업을 강화하겠단 의지를 명확히 했다. SK그룹과 LG그룹 또한  다수의 여성 사외이사, 비관료 출신 사업분야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한다는 계획으로 전해진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ESG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경영진의 성별 다양성, 전문성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들을 면밀히 따지기 시작했다”며 “거수기 또는 바람막이 역할만을 하는 전관(前官) 보단 사업에 적합한 전문성을 갖고 회사 경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