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발행, M&A 물색…자산 '관리'에서 '운용'으로 방향트는 국내 대학들
입력 21.03.03 07:00|수정 21.03.05 08:06
재정위기에 수익처 다변화 필요해진 대학들, 자산운용 관심
연세대, 헬스케어 수익사업 위해 M&A 대상 물색 중
고려대·포항공대, 저금리 장기화에 채권 발행 검토
  • 그동안 기금을 관리만 해 온 국내 유수 대학교들이 자본시장을 통해 기금을 직접 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회사채 발행을 검토하거나 인수·합병(M&A)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데 계속되는 재정 위기에 맞서 수익처 다변화에 나섰다는 평가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연세대학교는 사업 확장을 위해 인수 대상을 물색 중이다. 그간 국내 대학교 법인이 특수목적 펀드에 자금을 출자해 간접투자하는 사례는 많았지만 직접 투자에 나선 사례는 흔치 않았다.

    연세대는 세브란스병원, 연세우유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어 바이오헬스 관련 스토리를 내세울 수 있는 기업 인수에 특히 관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세생활건강을 통해 전국에 콜드체인망을 갖춘 만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매물 위주로 검토 중이다.

    의사결정기구인 재단 이사회 구성도 눈에 띈다. GS칼텍스 회장인 허동수 이사장을 비롯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회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이사 다수가 경제계 출신 인물로 구성돼 있다. M&A 등 자본시장 이해도가 타 대학보다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려대학교와 포항공과대학교는 '국내 최초 대학 채권 발행' 기대감을 키우는 곳들이다. 고려대는 김앤장에 채권 발행이 법적으로 가능한지 자문을 구하면서 주목받았다. 2016년 서울사무소를 개설해 국내 연기금과 클럽딜을 하는 등 자본시장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포항공대 역시 일부 증권사로부터 자문을 받는 등 채권 발행을 검토한 바 있다.

    이들 대학이 채권 발행을 성사할 경우 국내선 최초 사례가 된다. 30여년 전 동국대가 학교채를 발행한 바 있지만 동문 대상이었던데다 판매실적이 저조해 단기 중단, 진정한 의미의 채권 발행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간 국내 대학들은 자산 운용보단 기금관리 수준에 머무른다는 비판이 많았다. 대체로 정기예금 등 원금 보장성 상품에 투자해 투자 성향이 비교적 소극적인 편이었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조성한 적립금을 위험자산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게 될 경우 받게 될 지탄을 우려하는 여론도 한 몫했다.

    기금운용에 대한 대학들의 인식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학령인구 감소,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유학생 감소 및 비용 증가로 인해 대학들은 재정 부족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주요 기관출자자(LP)들에 접촉해 채권 발행 및 M&A를 검토하는 움직임은 이들 대학이 자본시장 진입을 본격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는 설명으로 풀이 가능하다.

    해외 대학들은 지난해에도 현금 확보를 위해 기록적인 규모로 채권을 발행했다. 하버드대학교(461억달러)와 프린스턴대학교(269억달러) 등 주요 명문대학들의 운용자산 규모는 수십조원에 이른다. 고등교육 기관의 채권은 일반 회사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만기도 최대 40년으로 긴 편이다. 신용등급도 'AAA' 수준으로 미국 국가 신용등급(AA+)보다 높다보니 국채를 대신할 안전자산으로 투자 매력이 크단 평가를 받는다. 수익률이 최대 10%대까지 이르다 보니 삼성생명을 포함 국내 보험사들도 상당량 매입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물밑에서 검토 소식이 들려오는 만큼 올해는 자본시장에서 신용도를 확보해 적극적으로 기금 운용 움직임을 보이는 대학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업계에선 웬만한 대기업만큼 신용도가 높아 수천억원까지도 발행이 가능할 명문대학들을 주목한다. 고려대는 지난 2005년 한국신용평가로부터 최고등급인 'AAA'를 받은 바 있다.

    LP들도 국내 대학들이 M&A 등 투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발행 사례가 쌓이고 조달 금액도 커지면 투자시장의 새로운 큰 손이 되어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다.

    한 관계자는 "대학들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일회성 펀딩이 아닌 적극적인 투자 문화가 필요하다. 당장은 큰 규모는 아니겠지만 채권 조달 및 상환 사례가 쌓이면 조달 규모도 점차 늘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