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되찾기 나선 박철완 상무…관건은 배당 명분과 기관표심 확보
입력 21.03.05 07:00|수정 21.03.08 14:52
박찬구 회장 vs 박철완 상무 표대결 불가피
고(高)배당 제안에 주주가 무조건 환호는 미지수
  • 박철완 상무가 10년만에 칼을 빼들면서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 분쟁이 결국 시작됐다. 주주총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철완 상무는 박찬구 회장 측과 똑같은 주주명부를 확보했다. 박철완 상무와 박찬구 회장 모두 이제부터 남은 국내외 기관투자가,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사로잡는 일에 집중할 전망이다.

    경영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박철완 상무, 그리고 기존 경영진을 유지해야 하는 박찬구 회장 모두 양측이 주장하는 제안의 ‘명분’과 ‘실리’를 주주들에게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철완 상무는 지난 2일 법원에 주주총회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튿날인 3일에는 홈페이지를 개설해 주주제안 내역을 공개했다. 주주제안은 크게 ▲미래성장경영 ▲거버넌스개선 ▲지속가능경영 등 3가지 등이다.

    박 상무는 직접 사내이사 후보에 이름을 올릴 것을 제안했고, 추가로 사외이사진도 공개했다. 외국계 로펌 덴튼스 리 소속 민준기 외국변호사, 조용범 페이스북 동남아 총괄 대표, 최정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이병남 전 보스턴컨설팅그룹 코리아오피스 대표가 포함됐다.

    박 상무는 "이번 주주제안은 주주가치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첫 단추이며 (금호석유화학의) 주주 환원 정책의 정상화, 자원의 효율적 운용, 미래성장 동력 확보 위한 합리적 투자 의사 결정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실 과거의 사례들을 비쳐보면 기관투자가들은 현 경영진, 회사측의 제안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증권사, 자산운용사를 포함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이 같은 성향이 더욱 강하다.

    금호석화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표심은 다소 회사측에 기울어져 있다. 외국계 기관투자가들과는 괴리감이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016년 금호석화 주주총회, 박찬구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는 의결권 행사여부를 공시한 30개 기관투자가 가운데 19곳이 반대했다. ▲AvivaInvestors ▲Blackrock ▲CPPIB ▲CalPERS ▲Fidelity ▲NBIM ▲VANGUARD 등의 외국계 기관들이 박 회장의 선임 반대에 나설 때, KB·신영·미래에셋·베어링·에셋플러스·칸서스·하나UBS·한화 등 국내 자산운용사들과 메트라이프생명, 한국신탁운용 등은 박 회장의 든든한 우군이 됐다. 이듬해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향방이 극명하게 엇갈린 사례는 반복됐다.

    박 상무의 주주제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배당강화다. 지난해 금호석화의 배당금인 주당 1500원의 7배 수준인 1만1000원을 요구했다. 현재 보유중인 자사주를 소각하고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재원을 마련하겠단 계획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배당성향을 경쟁사 평균인 50%까지 끌어올리겠단 전략을 세웠다.

    고배당 정책은 주주입장에서 상당히 환영 받을 일이지만 고배당 제안만으로는 주주들을 설득하지 못한 과거의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현대차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경영권 분쟁이다.

    지난 2019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에 파격 배당을 제안하며, 현대차에 총 4조5000억원, 현대모비스에 총 2조5000억원 수준의 배당을 요구했다. 회사측의 현대차 배당금 안건이 1주당 400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5배가 넘는 수치다. 그러나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은 엘리엇의 과당배당 요구를 지적하며 주주들에게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권고했다. 경쟁력 향상, 장기적 수익률 제고를 위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주요 논리였다.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대로 주주총회에선 압도적인 표 차이로 회사측 안건이 받아들여졌다. 몇몇 투자자를 제외하고는 기관과 개인투자자 모두 엘리엇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주식을 모두 처분하며 손실을 확정했고, 경영권을 지켜낸 현대차그룹은 학습효과에 힘입어 다소 진보적인 주주환원책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이사진 구성을 고려했다.

    과거 현대차의 사업적 상황이 녹록치 않았던 상황에서 엘리엇은 기업개선을 위한 나름의 전략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호석화의 경우 실적은 급등했고, 주가는 10년내 최고점을 돌파한 상황이기도 하다.

    결국 박 상무 측이 배당 성향을 강화하고 남은 재원을 어떻게 성장동력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주주들을 설득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란 평가다. 특히 박 상무 측이 LG화학을 예로들며 제시한 2차전지 분야 등 메가트렌드 시장 진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세밀한 전략과 화려한 사외이사진을 앞세우고도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지 못한 예도 있다. 한진그룹이 대표적이다.

    주주연합의 구심점이던 KCGI는 수십페이지에 달하는 한진그룹의 미래 경영전략을 발표했다. 주주들 표심잡기에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그 내용의 진실성과 실효성 여부를 떠나 현 경영진에 경종을 울렸고, 주주 및 투자자들에게 재고의 여지를 남기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 KCGI와 주주연합의 패색은 짙다.

    결론적으론 ‘명분’이 약했던 점이 패인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드시 주주연합이 경영권을 잡아야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분명한 이유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박 상무의 제안에 회사측도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주주총회에선 총 5명의 이사진 교체가 예고돼 있다. 박 상무의 추천 인사에 비견할 만한 명망있는 이사진을 구성하는 것이 표대결에 앞서 중요한 사전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상무 측의 최고경영책임자(CEO) 직속 ESG 경영 전담부서 설립,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등의 제안을 회사측에서 수용할 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기업의 투명 경영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거버넌스위원회 개설, 이사회 의장 분리선출, 감사위원회 신설 등은 재계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금호석화는 내주 이사회를 열어 안건 상정을 논의한다. 박 상무가 법원에 안건상정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이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도 지켜봐야 한다. 표대결이 불가피한 이번 분쟁에서 무엇보다 눈여겨 볼 점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안이 어느쪽으로 향할지 여부다. 의결권 자문사들은 주총 약 2주전 권고안을 발효하는게 일반적이다. 권고안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표결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에 앞서 박찬구 회장과 박철완 상무 모두 보다 세밀한 전략과 명분을 마련하는게 중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