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젤 투자 5년차 베인캐피탈, 국내 균주 소송 확산하면 회수 차질 불가피
입력 21.04.02 07:00|수정 21.04.06 09:54
메디톡스-대웅제약, 美 분쟁 끝났지만 국내 불씨 여전
국내서도 메디톡스 승소하면, 경쟁사로도 확산 가능성
피소시 투자자 관심 끌기 어려워…휴젤 주가도 게걸음
미국선 합의 후 당사자 주가 상승…국내 적용 여부 관심
  • 최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미국 보톡스 균주 전쟁이 일단락됐지만 국내에서의 불씨는 여전하다. 국내에서도 메디톡스가 승리할 경우 다른 보톡스 제조사들의 사업 기반도 적잖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휴젤 투자 5년차를 맞은 베인캐피탈도 균주 출처 문제가 확실히 정리되기 전엔 회수를 추진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메디톡스와 휴젤이 선제적으로 미국식 합의 모델을 고려할 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지난달 메디톡스, 메디톡스와 기술제휴를 맺은 미국 앨러간(ALLERGAN),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EVOLUS)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 결과에 따른 합의를 맺었다. 메디톡스 측이 에볼루스로부터 합의금과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대웅제약 제품의 미국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작년말 ITC는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균주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메디톡스 손을 들어줬다.

    대웅제약은 에볼루스와 별도 합의를 맺었다. 대웅제약은 2550만달러를 에볼루스에 지급하고, 에볼루스는 나보타 기술이전료를 최대 1050만달러까지 지불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에볼루스는 대웅제약과 맺은 합의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개했다.

  • 국내에서의 싸움은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메디톡스는 2017년 대웅제약이 보톡스 균주와 영업비밀을 도용했다며 국내에서 소송을 제기해 다툼을 이어왔다. ITC는 균주와 제조기술 도용 혐의는 인정했지만 균주 자체의 영업비밀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웅제약은 용인 소재 축사에서 균주를 발견했다 주장해 왔다. 국내 법원에서 균주 도용과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된다면 대웅제약의 보톡스 사업은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비단 대웅제약만의 문제는 아니다. 메디톡스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균주를 들여왔다고 밝히는데 다른 보톡스사들은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모호한 경우가 많다. 상당수 보톡스사 균주의 기원이 메디톡스 아니냔 시선도 있다.

    국내 보톡스 대장주 휴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휴젤은 썩은 통조림캔에서 균주를 발견했다고 밝혀왔는데, 그 전에 균주 출처와 관련해 말을 바꾼 적도 있다. 만일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 소송에서 이기고, 이를 다시 휴젤 등으로 넓혀가려고 한다면 사업 확장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회사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해외 매출을 2배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31일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툴리눔 톡신 제품 레티보(Letibotulinum Toxin)의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베인캐피탈은 2017년 1조원 가까이를 들여 휴젤을 인수했다. 투자 5년차를 맞아 슬슬 투자회수도 고려하기 시작해야 하는데 잠재적인 불안 요소가 있다는 점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균주 출처를 두고 누구의 주장이 맞느냐는 차치하더라도, 피소를 당하기라도 하면 법적 다툼이 일단락 되기 전까지는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쉽지 않다. 이정우 베인캐피탈 한국대표는 과거 메디톡스의 저가 공세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휴젤의 성장세와 실적은 견조한데 주가는 들쑥날쑥하다. 베인캐피탈의 휴젤 주당 투자가격은 약 45만원이었다. 회사는 자사주를 취득하고, 작년 무상증자(1주당 2주 부여), 올해 초 베인캐피탈 보유 주식 일부 무상감자 등을 진행하며 주가 부양에 공을 들였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불법 보톡스 수출 루머 등이 불거지면 주가에 타격을 입었다. 최근 주가는 17만원 수준을 오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메디톡스와 에볼루스의 미국 합의 모델에도 눈길이 모인다. 메디톡스는 에볼루스 보통주 676만여주(지분율 16.7%)를 받고, 21개월동안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에볼루스가 발행한 주식 가격은 주당 0.00001달러로, 메디톡스가 지불한 금액은 약 68달러(약 7만6000원)이다. 합의가 이뤄진 후 에볼루스 지분은 급등했고, 메디톡스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메디톡스가 받아온 주식 가치만 800억원에 이른다. 시장에선 양측의 합의를 긍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메디톡스와 휴젤 문제에 곧바로 적용하긴 어렵다. 합의 모델로 가려면 휴젤의 균주 도용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선 미국처럼 시장 가격을 무시하고 주식을 합의금으로 내놓을 방도도 없다. 그러나 합의 의지만 확실하면 방도가 없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자본시장 일각에선 휴젤과 메디톡스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의 국내 소송까지 이긴다면 휴젤 등 다른 경쟁사에도 소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며 “미국 사례에선 당장은 얼마간의 비용이 들더라도 소송보다 합의를 하는 편이 기업가치 상승에 유리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