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4000억 이상 또 조달해야…DICC 지분 사들여 현대重 제공의무
입력 21.04.23 07:00|수정 21.04.26 08:33
DICC 공개매각 앞서 FI vs 두산그룹 협상중
현대重-두산 DICC 지분 20% 약 2000억 평가
FI 측 최소 투자원금인 3800억 이상 받아야
인수 주체는 두산重…괴리감 커지면 수천억 이상 자금소요
캐시카우 없는 두산그룹, 사업부 매각 밥캣 활용법 고민할수도
  •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법인이자 핵심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를 둘러싼 재무적투자자(FI)와의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두산그룹은 현대중공업그룹에 인프라코어를 매각하며, 인프라코어의 자회사 DICC 지분 100%를 넘기기로 확약했다. 현재 인프라코어의 DICC 지분율은 80%, 나머지 20%는 FI가 보유하고 있다. 양측이 인프라코어 경영권 매각을 위해 계약한 8500억원의 금액에는 DICC 지분 20%의 가치인 약 2000억원도 포함돼 있다.

    사실 FI 지분 20%를 인수, FI에 물어줘야하는 주체는 인프라코어지만 경영권이 현대중공업그룹에 넘어갔기 때문에 실질적인 투자금 보전은 두산중공업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만 최소 수 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두산그룹의 자금흐름을 고려하면 상당한 부담이다. 자금소요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룹차원의 재원 조달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현재 재무적투자자(FI) 컨소시엄(미래에셋자산운용PE·IMM PE·하나금융투자)과 DICC 지분 20%에 대한 처리방안을 논의중이다. 두산그룹의 선택지는 협상을 통해 지분을 사오는 방안, DICC 공개매각이 추진될 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방안 등이다.

    DICC를 둘러싼 FI와 두산그룹의 법정공방은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17년 1심 결과는 두산그룹이, 2018년 항소심은 FI 측이 각각 일부 승소했으나 올해 초 상고심에서 파기환송으로 결론이 나며 지루한 법정공방이 계속되는 상태다.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FI의 ‘동반매도권’을 인정했다. 즉 FI가 보유한 DICC 20%의 지분과 인프라코어가 보유한 DICC 80%의 지분을 함께 외부에 매각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미 FI 측은 두산그룹에 동반매도권 행사를 통보하고 외국계 투자은행(IB)과 접촉 매각주관 계약을 앞두고 있는 한편 잠재적 투자자 물색에도 나섰다.

    DICC 지분 전량을 외부에 매각한다면 두산그룹은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우선매수권은 외부 투자자가 인정한 지분가치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으로 두산그룹이 인수할 수 있는 권리이다.

    현재는 공식적인 DICC 외부 매각에 앞서 두산그룹과 FI 측은 협상을 진행중이다. FI가 보유한 DICC 20%의 지분을 두산그룹이 인수한다면 공개매각 절차 및 우선매수권 행사 등 불필요한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긴 소송전도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역시 가격이다.

    인프라코어 매각금액 총 8500억원에는 현대중공업과 두산그룹이 합의한 DICC의 지분 20%의 가치 약 2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즉 현대중공업은 해당 협상에서 배제된 상태, 결국 DICC 20%의 지분가치를 양측이 얼마로 결론짓느냐에 따라 두산중공업의 자금소요가 발생한다.

    사실 2000억원의 평가액은 FI 측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FI가 2011년 DICC 지분을 사들일 당시 금액은 약 3800억원이다. 그러나 중국 건설경기가 급격히꺾이기 시작하며 기업공개(IPO)는 무산됐고, 동반매도권 행사를 통한 외부 매각도 실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진행한 소송과정에서 고등법원이 인정한 소송가액, 즉 두산그룹이 돌려줘야 하는 금액은 8000억원을 훌쩍 넘었다. 물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결론을 냄에 따라 당초 고등법원에서 인정받은 8000억원 이상의 지분가치는 재평가 받아야 한다. DICC의 실적이 회복세라는 점도 변수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FI 측이 DICC 지분 전량을 외부에 공개 매각하는 절차에 앞서 두산그룹과 FI 측이 가격 협상을 진행중이다”며 “공정가치 평가와 더불어 양측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관건이다”고 했다.

    FI 측도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이다. 이미 두산그룹과 현대중공업이 DICC 지분 20%를 투자원금의 절반 수준으로 책정한 이상, 이를 받아들이면 자칫 ‘선관주의의무 위반’ 및 배임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0년간 지분을 보유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면서 포기한 이자수익 및 지연이자 등을 모두 받아내긴 어렵더라도, 최소한 출자자(LP)들의 원금이 회손되지 않는 3800억원 이상의 지분가치를 인정받는게 중요하다.

    두산그룹 입장에선 DICC의 지분가치를 최소화해 사들이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자칫 협상이 결렬돼 FI 측이 외부매각으로 선회하고 두산그룹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지분가치는 급격하게 치솟을 수 있다. 물론 FI 측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현재로선 FI의 투자원금인 3800억원 이상의 지출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협상의 주체인 두산중공업이 수천억원 이상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사업으로 현금을 벌어들이긴 사실상 어려운 상태.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약 2800억원에 불과하다. 수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만큼 증자를 시도하긴 어렵고, 회사채 발행 등 차입을 늘리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룹의 차세대 동력으로 여기고 있는 두산퓨얼셀 등의 자회사를 매각하는 작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만년 매물로 평가받는 두산메카텍과 두산건설의 매각을 성공한다면 일정부분 현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수 조원의 산업은행 자금을 받아 자구안을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외부 자금조달은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며 “자산매각 또는 유동화 방안 등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이번 협상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다.

    두산중공업에 한가지 위안은 자회사가 되는 두산밥캣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그룹의 유일한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지배구조 내에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유의미한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외에도 그룹 최상단에 위치한 ㈜두산에는 전자BG를 비롯한 사업부가 있고,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계열사의 활용 방안도 가능하다. 다만 두산그룹은 "두산전자 BG는 향후 전혀 매각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