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가 유일한 대안?…M&A 조급함 드러내는 롯데
입력 21.04.29 07:00|수정 21.04.30 14:14
신동빈 회장, 귀국 후 이베이 인수 검토 본격화
대규모 매물 잇따라 검토...'올해 뭐라도 할 것'
경쟁사들 급부상에 M&A 조급함 키웠다는 평가
게임 체인저될까, 무리한 자충수 될까 주목
  • 지난 수년간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었던 롯데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매물의 인수를 잇따라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빠르게 몸집을 키워가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유독 고전이 길어지는 만큼 위기의식을 키웠다.

    롯데는 그동안 유력 사업자 인수를 통해 신규 시장에 진입해 왔다. 그러기에 롯데그룹의 시선은 또다시 M&A로 향하고 있다. 절박함을 동력 삼아 유통체질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실기하면 안된다는 조급함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눈에 띈다. 이베이코리아 본입찰을 앞둔 인수후보들 사이에선 롯데가 초래할 딜 피버(Deal Fever)가 우려요인으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체류해온 신동빈 회장은 최근 귀국과 동시에 그룹 M&A 현안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비롯해 엔지캠생명과학 지분인수, 추가 M&A 등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 회장이 가장 공들이는 건은 이베이코리아다. 이베이코리아는 롯데가 지난 수년간 눈독들인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진지하게 인수를 검토했으나 장고 끝에 자체 통합플랫폼 출범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까지 롯데는 '국내엔 조단위로 인수할 만한 업체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지만 야심차게 출범한 '롯데ON(롯데온)'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다시금 M&A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더이상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성공적으로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을 재무적투자자(FI)로 초청한 이후 굵직한 바이아웃 딜을 따내는 신세계 등 일련의 상황들은 롯데에 압박으로 다가왔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위기감이 대규모 매물 인수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 이어졌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위기의식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업계에서도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베이코리아의 유력한 원매자란 평가다. 한 인수후보의 투자사 임원은 "롯데의 인수의지가 가장 크다고 느낀다. 다만 최근 몸이 달아 있는 만큼 롯데가 딜 피버를 일으킬 가능성은 우려된다. 다들 인수 수요는 조금씩 있으니 가격이 더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데 롯데가 급한 만큼 인수가를 높게 부를 가능성이 주요 변수"라고 말했다.

    표면상 유통업체들 중 이커머스 인수의 필요성, 자금력, 인수의지 모두 갖춘 곳은 롯데뿐이란 시각도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를 통해 물류역량을 보유한 만큼 오픈마켓 업체 인수 시 시너지가 기대된다. 자금 준비에도 무리가 없다. 점포 유동화 및 자산매각 등을 통해 지난 5개월간 확보한 실탄만 1조5600억원에 이른다. 현재 롯데쇼핑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2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른 계열사와 공동으로 인수에 나서거나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면 인수대금 마련까지는 큰 무리 없어 보인다. 나영호 전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을 롯데온 새 수장으로 영입한 점도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분석됐다.

    내부선 사실상 이베이코리아 인수만이 유일한 '한방'이라 인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야심차게 출범한 롯데온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거래 사인 직전까지 갔던 티몬은 업계 재편을 노리기엔 실익이 크지 않다. 한편 시장점유율 12%로 쿠팡(13%)과 비슷한 외형을 갖춘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 단번에 업계 빅3로 올라갈 수 있다. 인수효과는 불투명할 것이란 우려도 많지만 현재로선 이베이 인수 외 별다른 묘수도 없다.

    반면 경쟁사가 인수한다면 유통업계 내 롯데의 입지는 다시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떨어질 거란 시각이 많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수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29CM, 브랜디 등 매물 출회 가능성이 있는 패션테크 업체 인수에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일본 패스트리테일링그룹과 공동출자한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유니클로가 끝없는 부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패션테크 인수로도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 회장이 직접 투자 실무진에 '이번엔 절대 놓치지 말라' 특명을 내렸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신 회장이 적극적으로 의지를 드러내는 만큼 임원들이 어떻게든 '트로피'를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올해 롯데가 뭐라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지만 동시에 절박함에 눈이 가려져 무리수를 둘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롯데그룹이 그간 유통부문에서 단행한 굵직한 M&A(우리홈쇼핑·바이더웨이·GS리테일의 백화점과 마트부문·하이마트)에 대한 시장 평가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점도 함께 언급된다.

    한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롯데의 이베이코리아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본다"면서도 "롯데가 이베이를 인수해 이커머스 시장에서 함께 시장에서 사장(死藏)되는 시나리오도 업계 관심사"라고 말했다. 이베이코리아는 오픈마켓 업체 중에선 여전히 1위지만 3년 전부터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아직 몸집은 크지만 사업구조상 점유율은 계속 줄 거란 분석이 많다.

    인수 성공여부와 별개로 PMI 기대감도 다소 떨어진다.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임원은 "2019년에 SSG닷컴을 출범시킨 신세계도 쿠팡에 비해선 늦었지만 롯데는 이보다 2년 더 늦었다. M&A가 지난 시간의 간극을 좁힐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이베이코리아가 '그 기회'일지는 모르는 일"이라면서 "롯데 특유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생각하면 이베이 인수 후 통합 기대감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베이 입장에서도 롯데는 달가운 인수자가 아닐 것이다. 온라인 시장 공략은 이제야 계열사 서버를 통합하는 수준에 머무르는데다 롯데온 출범 이후 안정화에만 6개월 이상 고전, 기존 소비자들이 이탈했던 사례를 우리 모두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