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주식 받고 오너와 한 배 탄 SK 사외이사들, '거수기' 벗어날 수 있을까
입력 21.05.07 07:00|수정 21.05.10 09:53
SK㈜·SK하이닉스 등 사외이사에 주식 보상
SK이노베이션 등 전 계열사 확산 가능성
경영진과 사외이사 공생관계 우려에
금융권에선 10년 전 사라진 제도
사외이사의 견제와 감시 기능 '매수' 우려도
  • 조직의 경영 성과를 임직원이 함께 향유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을 인센티브 제도라고 한다. 경영진과 임직원이 한 해의 결실을 공유함으로써 조직원의 사기를 북돋고 이듬해 더 나은 성과를 독려하겠단 순기능이 크다.

    각 기업별로 상이하지만 인센티브 제도는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회사의 주식을 나눠주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주식을 나눠주는 방식은 일정 기간 이후 주식을 사들일 수 있는 권리인 스톡옵션(Stock option)을 부여하거나 주식을 계좌에 직접 지급하는 스톡그랜트(Stock grant) 제공하는 방식이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 대부분은 이 같은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업 성과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경영진과 실무진에 국한하고 있다.

    반대로 경영진을 감시하거나 견제하는 임무가 맡겨진 이사, 즉 사외이사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사외이사의 주된 역할은 기업의 사업 실적을 극대화하거나, 기업의 주식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너와 경영진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최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것이 사외이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등기임원이 된 사내이사는 의무적으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해야한다. 회사와 이해관계를 합치함으로써 책임감을 갖고 경영에 임하라는 취지에서다. 사외이사에게 이같은 강제조항이 없는 것은 회사 및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면 자칫 감시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너의 영향력이 막강한 국내기업의 지배구조 특성상 이미 대다수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SK그룹은 최근 사외이사들에게 주식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스톡그랜트 제도를 도입해 직접 주식을 나눠주는 방식을 택했다.

    SK그룹의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SK㈜는 지난달 자기주식 445주를 처분해 총 1억1914만원가량을 사외이사 계좌에 대체입고했다. SK㈜의 사외이사는 총 5명으로, 각각 약 2400만원 상당의 주식을 받게 됐다. SK하이닉스 또한 지난달 말 자기주식을 처분해 사외이사 6명에게 각각 200주씩, 총 1억5780만원 규모의 주식을 나눠줬다.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 또한 현재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스톡그랜트 지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회사의 주식을 받은 사외이사들은 임기내 해당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현금화하는 것은 금지된다. 임기 이후부턴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다.

    장동현 사장이 파이낸셜스토리를 강조하며 밝힌 SK㈜의 목표는 2025년 시가총액 140조원, 현재 약 20조원의 7배 많은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 이후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단 목표다.

    회사의 전망대로라면 SK㈜와 SK하이닉스의 사외이사들의 주식가치도 급격하게 높아지는 구조가 마련된다. 사외이사들이 현재 받은 주식의 규모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주식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란 의미다. 사외이사가 오너,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회사 주주가 됨으로써 '경영 감시자'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사외이사에 대한 주식 부여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2010년 이전만 하더라도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의 사외이사는 기본 급여와 수당을 제외하고 장기 성과에 연동하는 스톡그랜트를 받아왔다. 그러나 경영진과 사외이사의 관계가 상호 견제 또는 감시의 관계가 아닌 ‘공생관계’에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각 금융지주회사를 비롯한 은행권의 사외이사에 대해 주식을 부여하는 제도는 사실상 사라졌다.

    2010년 은행연합회는 ‘은행 등 사외이사 모범규준’을 만들었고, 스톡옵션과 스톡그랜트 등 경영 성과와 연동된 보상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물론 자율규약 형태로 강제성이 없었고, 5년이 지난 2015년 폐지가 됐으나 이후로도 금융권 내 사외이사에 주식을 부여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국내 한 금융기관 내규에는 ‘등기임원 중 사외이사 및 비상임이사는 변동보수 대상자에서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기도 하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글로벌 기업들 및  S&P500에 포함된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외이사에 대한 주식보상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SK그룹 계열사들은 사외이사 스톡그랜트 제공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은 없는 상태이지만 SK그룹이 지향하는 사회적가치(ESG)에 빗대어 봤을 때 이사회 멤버들의 책임있는 경영을 장려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그룹은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이자 최태원 회장으로 대변되는 오너기업이다. 각 계열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단 전략과 비전을 내세워 실천해 나가고 있다. 다만 그룹의 사업적인 성장이  오너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외이사들의 본연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글로벌스탠더드에 발 맞추고 이사회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등 납득 가능한 명분도 있다. 다만 SK그룹 오너와 경영진이 자칫 사외이사의 견제와 감시기능 마저 주식으로 ‘매수’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을까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