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반도체 쇼티지'에 전기차 출고지연…과징금 걱정도 부상
입력 21.05.13 07:00|수정 21.05.14 08:36
E-GMP 적용 아이오닉 5 첫달 출고 114대
EU 우선 대응 불가피…국내선 '보조금' 골치
車 반도체 부족發 생산차질 정상화 불투명
수익성 방어·미래차 선점 등 운신 폭 줄어
  •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의 한 달 출고 물량이 1000대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며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내수와 수출 양면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환경 규제가 적용되는 유럽 시장 공급을 우선할수록 국내 고객 이탈 가능성은 커진다. 이달부터 반도체 수급난이 심화할 전망이지만 정상화 시점도 불투명하다.

    출시 첫 달인 4월 아이오닉5의 출고 대수는 114대로 나타났다. 아이오닉5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가 적용된 첫 전기차로 지난 2월 사전 계약 첫날에만 2만3760대의 주문이 들어왔다. 올해 국내 2만6500대를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서 7만대 이상 판매 목표를 세웠다. 국내 선주문 물량만 4만대를 넘기며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현재 속도를 유지할 경우 고객 인도까지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당초 예고대로 유럽 시장을 우선하고 있는 것도 국내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오닉5는 3월 울산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가 유럽을 시작으로 한국과 미국에 순차적으로 인도하고 있다. 국내에 선주문 물량이 쌓여 있지만 규제 대응 및 시장 전략을 고려하면 유럽 시장의 중요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자동차 커뮤니티 등지에선 아이오닉5 수백대를 선적한 수출 선박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경쟁사들이 지속해서 신형 전기차를 내놓고 있어 현대차도 올해 유럽 시장에서 아이오닉5의 출시 효과를 최대한 누려야 한다.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탄소 배출 규제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부터 지역 내 판매된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km당 95g으로 규제하고 있다. km당 1g을 초과할 경우 95유로(한화 약 12만8500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오는 2025년부터 배출량 규제가 km당 70g으로 감소할 예정인 만큼 현대차도 공격적인 친환경차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조사기관 EV볼륨즈에 따르면 유럽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의 지난해 글로벌 친환경차 판매는 2019년보다 197% 성장해 약 42만대를 넘겼다. MEB 플랫폼을 적용한 id.3의 하반기 판매량이 폭발적이었던 덕이다. 그러나 신차 평균 탄소 배출량은 99.8g을 기록해 0.5g 초과분에 대해 1억유로(약 1345억원)의 벌금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총 판매대수를 기준으로 현대차의 유럽 시장 내 탄소 배출량은 km당 126.5g이었다. 2020년 시작된 규제를 적용하면 km당 31.5g을 초과한 수치로 과징금이 23억유로(약 3조원) 이상으로 추산된 바 있다. 당시와 비교해 친환경차 판매 비중을 큰 폭으로 늘리고 있지만, 안정선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힘들단 평이다.

    지난해 현대차의 탄소 배출량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폭스바겐은 코로나 여파로 유럽 내 판매량이 20%가량 줄어든 틈을 타 친환경차 판매량을 세 배로 늘렸지만 과징금을 피하지 못했다. 현대차 역시 유럽 내 판매량이 20% 이상 감소했지만 친환경차 판매량은 약 70%가량 성장한 것으로 확인된다. 내연기관 시장의 회복세를 고려하면 전기차 판매량을 크게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징금 규모가 조 단위로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럽 시장 공급을 우선해야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경쟁사에 뒤쳐치게 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국내 인도가 늦어지며 경쟁사가 전기차 보조금을 미리 소진할 경우 가격경쟁력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아이오닉5의 올해 인도 물량은 약 5000대로 추정된다. 선주문 물량의 4분의 1에 못 미친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전기차 경우에는 보조금 여부에 따라 차 가격이 1000만원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 "과거 팰리세이드의 인기로 인도 지연이 9개월까지 장기화했을 때도 고객 이탈 가능성이 불거진 적이 있는데 전기차는 문제가 더 크다"라고 설명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언제 정상화할지 관련 업계에서도 예측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상반기 중 수급 안정화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정작 시장에서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8인치 파운드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지금 당장 설비투자를 늘리거나 국산화에 나선다고 해도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이오닉5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략에서 가지는 상징적 중요성 때문에 현대차 내부에서도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이오닉5는 E-GMP 플랫폼의 시장 가치를 평가하는 가늠자 격인데 지금부터 많은 물량을 공급해야 다음 단계인 데이터 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라며 "생산 차질 영향이 다른 완성차 업체에 비해 조금 덜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연기관 수익률 방어와 미래차 시장 선점 사이에서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