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수주 무섭게 늘리는 SK이노…배터리 3사 순위 지각변동
입력 21.05.17 07:00|수정 21.05.14 17:09
SK이노, 수주잔고 80조…합의 직후 성장세
국내 배터리 3사 내 시장 평가 변화 급물살
삼성SDI 연내 투자기조 변화 기대감도 커져
목소리 키우는 완성차 파트너십도 주요 변수
  • 국내 배터리 3사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를 마무리 지으며 기존 순위 경쟁의 지각변동이 관측된다. 소송 합의를 기점으로 후발주자이던 SK이노베이션이 설비 투자와 수주잔고를 가파르게 올리며 삼성SDI를 거의 따라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성장 초입에 있는 만큼 향후 전기차 업체와의 전략적 관계 구축에 따라 변수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3일, SK이노베이션은 실적 발표회를 통해 1분기 말 수주잔고가 80조원 규모라고 밝혔다. 연초 70조원 규모에서 단기간 내 10조원이 불어났다. 올해 초까지 SK이노베이션을 짓누르던 소송 리스크가 해소되며 다수 전기차 업체로부터 러브콜이 늘어난 호재를 누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늘어난 SK이노베이션의 수주잔고를 확인하며 배터리 3사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삼성SDI의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고는 약 75조원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이 이번에 밝힌 숫자로만 따지면 양사 수주잔고는 엇비슷하거나 SK이노베이션이 앞질렀을 가능성이 있다. 수주잔고는 배터리 업체의 성장성과 시장 경쟁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시장은 SK이노베이션의 수주 확대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중재로 소송이 마무리된 직후 포드와 폭스바겐으로부터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라며 "그 직후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 공장 설비투자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올려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현재 국내 3사는 수주잔액을 따로 공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투자자 설명회(IR)에서 따로 밝히지 않을 경우 주요 시장조사 기관의 추정치가 전부다. 3사 중 SK이노베이션이 수주잔고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답변을 내놓는 것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장의 시장점유율과 수익성 기준으로는 여전히 SK이노베이션이 3위 사업자에 머물러 있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배터리 사업 매출액은 약 5260억원이다. LG에너지솔루션(LGES)과 삼성SDI가 같은 기간 각각 4조2540억원, 2조3870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수익성을 확보한 LGES를 제외하고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시기에서도 아직은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보다 아래다. 삼성SDI는 이르면 상반기를 전후해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흑자전환이 점쳐진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부터 2022년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설비투자 속도를 감안하면 수년 내 SK이노베이션의 사업 규모가 삼성SDI를 넘어서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5년까지 배터리 생산설비 규모를 125GWh 이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SDI가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2023년을 전후해 사업 규모가 역전된다.

    자연스레 연내 삼성SDI가 기존의 신중한 투자 기조를 변화할 거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현재 미국 시장에 대응하는 것이 주요 그룹사의 과제로 부상했는데 삼성SDI도 연내 현지 투자 계획을 구체화 할 필요가 높아졌다"라며 "기존의 수익성 중심 전략을 고수하기엔 시장의 변화가 거세다"라고 평가했다.

    삼성SDI 배터리 사업의 주요 거점은 유럽 시장이다. 보유 중인 미국 현지법인은 생산능력이 없다. 지난해부터 삼성SDI 내부에서 유럽 외 신규 거점 진출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화하지 못했다. 현재 미국 내 배터리 시장은 LGES와 SK이노베이션이 양분하고 있다.

    주력 고객사인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폭스바겐과 GM,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관계가 3사의 시장 내 경쟁력에도 상당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3사의 1분기 실적 발표회에 참석한 기관투자자들은 공통적으로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지난해 테슬라 배터리데이에 이어 올해 폭스바겐이 파워데이를 통해 각형 배터리를 표준으로 내세우며 시장의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3사를 포함해 배터리 업계에선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내재화 우려가 위협이라기보다는 협력 강화로 이어질 거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해 전기차 리튬이온배터리 시장 규모는 약 33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배터리 수요량은 약 300GWh로 내년 520GWh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배터리 생산설비 1GWh당 약 1000억원가량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내재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 완성차 업체와의 전략적 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의 추격을 견제해야 하는 삼성SDI의 경우 지난 발표회를 통해 폭스바겐의 각형 배터리 수주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삼성SDI는 폭스바겐이 파워데이에서 언급한 저가형 하이망간 양극재 등에 대해 기존 하이니켈 양극재와 투트랙으로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이 배터리업체 사이에선 계약 난이도 가장 높은 고객사로 분류되는데 이 때문에 삼성SDI에서도 검토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라며 "LGES가 GM과 테슬라를 잡고 있고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러브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삼성SDI도 폭스바겐이라는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할 필요성이 높아 수주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