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 끝난 ESG채권 인증 시장…신평사·회계법인은 지속성 고민
입력 21.05.18 07:00|수정 21.05.18 10:46
본격 확장 조짐 확인한 ESG 채권 시장
신평사 회계펌 등 관련 인증사도 분주
발행사 확장과 리서치 강화 등 과제도
  • 2021년은 국내 채권시장에서 ESG채권이 전례 없이 성장한 의미있는 시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2020년 연간 기준 일반기업의 회사채 시장에서 0.4%에 불과했던 ESG채권의 비중은 올해 1분기 30%에 이른다. 급격히 커진 시장에 인증 등 관련 기관들의 진출도 본격화했다. 상반기를 거의 지나면서 ‘맛보기’가 끝난 각 기관들은 수익원 확장 및 시장 성숙을 위한 ‘넥스트’를 고민하고 있다.

    올해 들어 ESG채권 발행기관 변화가 두드러졌다. 지난 몇 년간 사회적 채권 위주로 일부 공기업과 정책 금융기관에만 한정됐던 발행사가 올해 민간 금융사, 특히 일반 기업으로 확장됐다. 2019년과 2020년 일반기업은 각각 2개사 정도였지만, 올해 1분기에만 17개사가 발행했다. 증권사 등 일반 금융기관도 지난해 1개사에 불과했는데 올해 6개사가 발행했다.

    ESG채권 평가 시장도 커졌다. 1~2년 전만 해도 국내에선 발행 자체가 미미해 대부분 회계법인에서 발행 조건 충족 관련해 인증을 받는 정도였다. 2019년 국내에서 ESG채권 신규 인증 14건 중 9건이 삼정KPMG였고, 지난해는 20건 중 13건이 딜로이트안진이었다.

    지난해부터 신용평가사들이 ESG채권 인증 시장에 뛰어들면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한국신용평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ESG채권 인증 방법론을 발표한 뒤 인증 업무를 시작했고, 이어 12월 말 NICE신용평가와 올 초 한국기업평가가 각각 업무를 시작했다. 올해 1분기 기준 총 34건 신규인증에서 신용평가사 3사 인증이 21건으로 61.7%에 이른다.

    채권 및 기업 평가에 전문성이 있는 신평사들은 그린워싱(위장) 방지를 위해 ‘사후 평가’를 강점으로 내걸고 있다. ESG채권 등급도 기업 신용등급처럼 발행 시 등급을 매기고 추후 진행 정도 점검에 따라 등급 하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평가 시장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상반기 성적표를 받아 든 각 사는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분주한 분위기다. 통상 회사채 시장은 6월 정기평가 시즌 전인 상반기 발행이 많기 때문에 연간 성적의 척도가 된다. 올해도 4월 회사채 발행이 역대 최대였고, 5월은 기업 실적발표 등이 이어지며 발행이 다소 주춤해졌다.

    올해부터 본격 ESG채권 인증 사업을 시작한 국내 신평사들은 기업의 ESG 리스크 요소와 관련된 전반적인 리서치 강화를 준비하고 있다. 채권 뿐만 아니라 ESG 리스크 자체가 기업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에서다. 해외에서는 ESG가 이미 오랜 기간 발전해 온 개념이다 보니, 무디스와 S&P 등 국제 신평사들은 오래전부터 해외 ESG 평가 및 리서치 기관들을 인수하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ESG채권 인증 시장 확장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5월 기준으로 한신평이 총 27개 발행 인증을 했고, 한기평(11개)과 나신평(9개)이 각각 비슷한 규모로 인증을 진행했다. 현재 ESG채권 인증 업무는 건당 1000만~2000만원 수준으로 높지 않다보니 확실한 '수익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시장 확장이 필수다.

    현재까지는 우선 대부분 ‘최고 등급’을 충족하는 발행사 위주로만 발행이 이뤄졌다. 이에 등급 체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다만 등급의 필요성은 사후 평가를 위함이며, 초기 시장의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국내보다 1~2년 앞서있는 일본의 경우 초기 100% 1등급으로 발행된 바 있다. 업계에선 추후 기본 관리체계를 충족하는 2등급, 3등급 채권도 공익 측면에서 공공기금에서 수용해 시장이 확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회계법인들도 커진 ESG 시장에서 수익원 찾기에 한창이다. 딜로이트안진은 회계법인 중 처음으로 ESG채권 인증에서 사후 검증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안진은 2020년 초 삼정KPMG에서 이옥수 리스크자문본부 이사를 영입하면서 관련 팀도 옮겨왔고 ESG채권 인증 부문에서 회계법인 중 앞서고 있다.

    일각에선 회계법인의 채권 인증은 ‘발행 조건’ 충족 여부를 인증하는 것으로 신평사 평가와는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평가’ 업무가 컨설팅, 감사 등 회계펌의 다른 업무와의 이해상충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회계법인 측에서는 내부적인 법적 관리체계 구축 등 각 부문의 높은 독립성이 보장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회계법인들은 ESG 시장 ‘먹거리’에서 기업들의 ESG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다. ESG 경영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대기업을 막론하고 뭘 해야할 지 모르고 손을 놓고 있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보니 현재 상태 진단부터 경영체계 수립, 공시, 개선과제 도출, 적정 프로젝트 찾기, 비전 만들기 등 총체적인 전략컨설팅을 제공하겠단 것이다. SK 등 대기업들이 그룹사 차원에서  ESG를 추진하면서 건당 자문료도 10억원 이상으로 높다고 알려진다. 일부 회계법인에서는 내부적으로 채권 인증보다는 컨설팅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잡았다고도 전해진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법인에서 ESG채권 인증 업무는 미미한 수준이고 업무 자체가 보수가 크진 않아서 크게 드라이브를 걸거나 신평사랑 경쟁하는 구도는 아니다”라며 “아직까지 ESG채권이 너무 초기 단계고 시장이 급격히 커지다보니 당국 가이던스 틀이 마련되기 기다리는 상태인 가운데 시장 활성화와 높은 인증 수준을 위해서는 자정작용 등을 거쳐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