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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유동성이 부동산, 주식을 넘어 '규제 무풍지대' 가상화폐 시장까지 흘러 들었다. 가상화폐 하루 거래량은 국내 주식시장 일 거래량을 뛰어 넘은지 오래다. 가격 변동성은 상상을 초월, '주식=안전자산'으로 불리게 할 정도가 됐다. 정부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급등과 MZ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은 코인 광풍을 가속화시켰다.
“카지노를 왜 가나요…손 안에 강원랜드가 있는데”
"회사는 시드머니(Seed money) 충전고, 월급날은 시드 충전일이 됐다. 불과 몇 시간만에 수백 퍼센트가 오르니 월급 모으는 것보다 코인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게 느껴진다”
“인터넷 또는 지인에게 정보를 얻어 알트코인 5개에 투자하고 있지만, 무슨 코인인지는 전혀 모른다”
'광기'가 지배하는 투기판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코인투자가 인기를 끄는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접근성'과 '속보성'. 주식과 다르게 365일 24시간, 매 초 단위로 거래가 이뤄진다. 1만원으로 삼성전자 주식은 못사도 가상화폐 시장에선 수 천 만원 대에 달하는 넘는 비트코인을 쪼개서 살 수 있다. 상한가·하한가에 대한 규제가 없고, 공매도와 같은 시장 안정화 대책도 없다. 마진콜 위험을 감수한다면 100배 레버리지 창출도 가능하다.
둘째는 1000%를 웃도는 기대수익률이다. 알트코인중 하나인 '아로와나 토큰'은 상장30분 만에 10만7500% 상승했다. 국내 한 가상화폐 거래소 상장코인 120여개 가운데 1/3의 연간 수익률이 모두 1000%를 넘긴 기록도 있다. 올 초 1코인당 약 9원에 불과하던 도지코인은 일론 머스크(Elon Musk) 효과로 몇개월만에 약7700%(700원)가 급등했다. 원조격인 비트코인이 작년 한 해 1000만원 초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 5~6배 가격이 뛰는데 걸리는 기간이 불과 반년이다.
자산증식 시장에서 소외된 20~30대에게 이런 특성은 적은 종잣돈으로 참여가능한 '패자부활전'의 장이 됐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올 1분기 코인투자 참여자 60%가 20~30대로 이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코인 가격의 합리적인 산출기준조차 전무한 점은 코인투자 시장을 '운빨'에 좌우되는 가장 공정하고 공평한(?) 시장으로 인식 되게 만들었다. 이에 '불침번매매' (10여명의 '조'를 짜서 24시간 불침번을 서며 코인가격 확인하고 공유), '뇌동매매' (지인의 투자를 그대로 추종), '관상매매' (코인 명칭만 보고 투자) 같은 웃어넘기기만은 힘든 행태들도 빈번히 벌어지고 됐다.
다만 '투전판' 같은 성격으로 인해 도박 중독을 상담·치료하던 심리상담센터엔 코인거래 중독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발길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최근 들어 코인 중독 증세로 상담을 원하는 환자가 늘었다”며 "처방법으로는 마치 담배를 끊게 하는 것처럼 입원시켜 핸드폰을 멀리 두게 하는 방법이 사용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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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하기 힘든 시장규모…알 수 없는 미래가치
암울한 사회현상과는 별개로, 가상화폐의 미래가치와 가능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규모'하나만큼은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비트코인은 전 세계 시가총액 6위인 페이스북(약 1000조원)을 추월했다. 뒤를 이은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약 500조원)을 넘었다. 도지코인도 백신 생산업체 모더나(약 80조원)를 추월하기도 했다.
‘돈의 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하나 둘 가상화폐 시장에 발을 들였다. 미국의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지난달 나스닥에 상장했다.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의 가격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헤지(Hedge) 할 수 있는 파생상품을 출시했고, JP모건도 올 하반기 일부 고객들을 대상으로 비트코인 펀드를 내놓겠다고 했다. UBS 또한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가상화폐 투자 상품을 출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자회사를 통해 비트코인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했다. 출시한 상품 중 하나는 비트코인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이다.
국내 주요 IT기업들도 오래 전부터 가상화폐 관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넥슨은 일본법인을 통해 1000억원 규모가 넘는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고, 카카오는 블록체인 기술을 보유한 계열사를 통해 가상화폐 클레이튼을 개발했다. 다날은 자회사를 통해 페이코인을 개발해 출시했고, 야놀자는 밀크코인의 서비스파트너 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는 물론 가상화폐 거래기관에 대한 투자도 이뤄졌다. 한화시스템은 리케에, 카카오는 두나무에, KB국민은행은 한국디지털에셋, 신한은행은 한국디지털수탁에 각각 투자했다.
가상화폐가 하나의 결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방침을 철회해서 논란이 됐지만 테슬라의 비트코인 결제는 가상화폐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글로벌 결제 대행업체 페이팔은 가상화폐 온라인 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매회사 소더비는 경매 낙찰대금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받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선 페이코인 등이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서점과 영화관 등에서 활용이 가능하고, 밀크코인은 야놀자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 어플에서 사용할 수 있다.
제도ㆍ시스템과 타협 혹은 규제 수용여부가 관건
그럼에도 불구, 가상화폐의 미래가치와 가능성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은 여전히 '투기성'이다. 이는 제도권 금융시스템이 가상화폐를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핵심요인이 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의 시세조종은 주식과 부동산 어느 영역을 막론하고 '중범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가상화폐만이 이 부분에서 어떠한 제약도 가해지지 않고 있다. 개념적으로만 보면 투자자산에 대한 명확한 실체, 그리고 투자에 대한 모범규준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기’라는 단어도 아직 적용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 선물 상품에 대해 투기성이 상당히 높은 투자라고 경고했다. JP모건의 한 전문가는 “소액투자자들이 주도하는 가상화폐 투자는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말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테슬라가 더 이상 가상화폐를 차량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머스크가 보유한 비트코인의 처분 가능성까지 시사하자 비트코인의 가격은 최근 들어 급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주식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테슬라의 주가가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국내 한 VC업체 관계자는 “한 때 '박상기의 난'으로 불리는 때가 있었지 않나. 당시에 투자한 2000만원이 200만원이 되기까지 5일도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항상 떠올린다”고 했다. 여기에 일부 코인 발행사들은 “발행을 늘린다” 또는 “소각한다”는 정보를 거짓으로 흘리기도 한다. 검증되지 않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먹튀’ 사건들은 너무도 유명하다.
당정청협의회에서도 가상화폐와 관련한 논의가 시작됐다. 주무 부처를 정하는 것 또한 논의의 대상이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부처가 담당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부턴 가상화폐 투자 수익을 기타 소득으로 분류해 세금을 부과한다. 다만 "과세하려면 자산임을 인정하고 보호해달라"는 요구에 대한 원칙도 마련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상화폐를 어떻게 법과 제도 내부로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밑그림조차 그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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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5월 18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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